이쯤 되면 테러라고 부를 법도한데 미국 당국은 이번 사건을 ‘테러’라고 규정짓지 않았다.
조셉 롬바르도 라스베이거스 경찰청 치안담당관(the sheriff)은 2일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용의자인 스티븐 패독의 신념이 알려져 있지 않다”며 “현재 상황을 잘 통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연방법은 테러리즘을 “정치적 또는 사회적 목적을 위해, 정부나 시민을 위협하거나 사람이나 재산에 불법으로 군사력과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테러로 연관짓기에는 정치적 동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범행의 동기가 확실하지 않으면 당국은 어떤 사건을 공식적으로 테러라고 부를 수 없다. 테러라는 용어가 갖는 상징성이 크고, 수사진행 방향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최대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테러리즘 전문가인 브루스 호프만 조지타운대학 연구 디렉터는 “대형 총기 난사 사건을 테러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면서 “사건이 사람들의 공포나 불안을 낳았다 하더라도 테러 여부를 결정할 때 중요한 것은 정치적 동기”라고 말했다.
|
미국 경찰은 이른바 IS와 연관성을 낮게 평가하며 외로운 늑대에 의한 단독 범행에 무게를 두고 있다. 외로운 늑대란 전문 테러 단체 조직원이 아닌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특정 조직이나 이념이 아니라 정부에 대한 개인적 반감을 이유로 스스로 행동에 나선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네바다 주에서는 테러행위에 대해 “민간인 사망이나 중상을 목적으로 한 파괴, 강제, 폭력의 사용 또는 미수에 관한 모든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테러로 부를 여지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벌어진 참사에 테러라는 용어를 붙이는 일은 일관성이 없었다고 뉴스위크는 지적한다. 가령 지난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의 흑인교회에 총을 난사해 흑인 신도 9명이 사망했지만 테러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백인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청년 딜런 루프가 흑인교인을 대상으로 벌인 범죄로 종교적 테러로 볼 여지가 충분했다는 뜻이다.
특히 뉴스위크는 도널드 트럼프가 정치적 목적으로 테러라는 용어를 오락가락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후보자 시절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나이트클럽에서 총격과 인질극이 발생해 49명이 숨지고 58명이 부상하자 사건의 용의자가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이라는 점을 들어 “테러위협을 막으려면 무슬림 입국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이번 사건을 완전한 ‘악(pure evil)’이라고 규정하면서도 테러리즘이란 단어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수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용의자의 배경과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밝혀지는 대로 인식을 바꿀 수도 있다고 미국 매체인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