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귀금속 거리의 한 금은방 주인 A씨는 “금값이 미친 듯이 올라 손님이 뚝 끊겼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지난 40년간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해온 그는 “역대 가장 어렵다고 느끼고 있다”며 “작년에도 힘들었지만 올해 들어서는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금값에 ‘국내 귀금속 1번지’인 종로 귀금속 거리가 휘청이고 있다. 금 사재기 열풍으로 골드바 품귀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지만 이곳 상인들에겐 다른 세상 얘기다. 골드바는 마진이 낮아 팔아도 남는 게 없다. 정작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금반지나 금목걸이를 찾는 손님은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게 상인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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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귀금속 거리 점포 상인들은 하릴없이 창밖만 내다보거나 거리를 오가는 손님 한 명이라도 눈을 맞추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점포를 찾은 손님들은 대부분 금붙이 매입 시세를 물을 뿐 귀금속을 찾는 경우는 드물었다. 거리 점포 곳곳에는 ‘최고가 매입’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임대’ 안내문을 걸어둔 점포도 다수 눈에 띄었다.
20년째 금은방을 하고 있다는 B씨는 “금 시세가 오른다고 해서 우리 같은 소매 소상공인들에겐 호재가 아니다”며 “금값이 너무 비싸지니 예물이나 돌반지를 찾는 실수요자는 발길을 뚝 끊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하루종일 금반지나 금거북이를 팔기 위해 온 손님만 받았을 뿐 판매는 한 건도 없었다”며 “사실상 매출이 제로(0)”라고 호소했다.
금값이 더 오를 것으로 기대한 투자자들이 사재기에 나서면서 골드바 품귀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조폐공사와 시중은행이 골드바 판매를 일시 중단하면서 수요는 금은방으로 쏠리는 상황이다. 하지만 골드바나 순금은 완제품 형태로 납품되기 때문에 귀금속상들은 공임비 등 별도의 이윤을 얻기 어렵다.
7년 넘게 금은방을 운영 중인 C씨는 “금값이 오르면서 골드바를 찾는 손님은 조금 늘었는데 가게 사정은 더 나빠졌다”며 “금은방은 금반지나 금목걸이를 가공하는 데 드는 세공비가 주요 수입인데 골드바만 납품해다 파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골드바는 물량이 적기도 하지만 팔아봤자 손에 쥐는 게 몇천원뿐”이라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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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결혼 성수기를 앞두고 있지만 예물을 맞추려는 예비 신혼부부들의 모습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 결혼 건수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예물용 주얼리 수요가 늘었지만 정작 백화점 명품 주얼리만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게 상인들의 얘기다.
반면 국내 예물 주얼리 시장은 주춤하다.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주얼리 시장 규모는 8조 7732억원으로 전년 대비 13.5% 증가했다. 이중 수입 주얼리 시장 규모는 2조 7333억원(31.1%)으로 5년 전과 비교해 165%나 급증했다. 국산 예물 주얼리 시장은 7265억원으로 같은 기간 31.5% 감소했다.
A씨는 “작년에 결혼 건수가 늘었다는데 체감하기 어렵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해외 명품을 찾지 않느냐”며 “백화점에서는 수개월씩 기다려서 예물을 맞춘다고 하던데 우린 장사가 안 돼 가게를 내놓는 실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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