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절망에 빠진 자를 유혹하지 마라

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저자
  • 등록 2020-06-19 오전 5:00:00

    수정 2020-06-19 오전 5:00:00

정의란 높은 곳에 우뚝 솟아 있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생활 주변에 가까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부끄럽게 여기는 수오지심(羞惡之心)과 남의 잘잘못을 가리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정의의 원천이다. 남의 권리는 소중하게 여기면서 나의 의무를 다하려는 의지와 실천의 밑바탕이 정의감이다.
불의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일은 사리사욕, 당리당략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위한 차원이어야 한다. 정의를 지키는 길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역지사지 자세로 생각하면 금방 답이 나온다.

정의는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또는 의무로 공동체의식의 바탕을 이룬다. ‘탈무드’에서도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일은 관용이나 자비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 하고 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에서 서로를 지켜주는 일은 납세의무나 국방의무처럼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다. “힘이 정의다”라는 억지소리는 원칙 없는 약육강식 세계에서 살아야한다는 푸념이다. “정의는 힘이다”는 정의가 이겨야 된다는 당위성에 더하여 힘이 있어야 내 이웃을 더 많이 도울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1000가지 인간의 심리를 꿰뚫었다는 셰익스피어(W. Shakespeare)는 ‘로미오와 줄리엣’ 5막 3장에서 “절망에 빠진 자를 유혹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계상황에 이르러 어찌할 수 없는 사람들을 놀려대거나,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취하는 일은 인간의 길이 아니라는 뜻이다. 부모 슬하에서 놀아야 할 미성년 처자로서 남의 나라 전쟁터에 끌려가 짐승보다 못한 삶을 강요받았던 할머님들은 절망의 밑바닥에서 헤맸던 분들이다. 개인 소견으로는, 인류가 빚은 3대 죄악은 중세암흑시대 마녀사냥, 제3제국의 아우슈비츠 살육, 일제군국주의의 위안부 만행이다. 제 딸이 그렇게 되었다면, 그 보다 더한 지옥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단테(A. Dante)는 배신을 용서받지 못할 불의로 보았다. 신곡(神曲)의 마지막 부분 34곡을 보면 예수를 팔아먹은 유다, 자신들을 철석같이 믿어줬던 카이사르를 찌른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의 망령들은 지옥의 마지막에서 마왕 입에 머리를 물려서 신음소리만 낸다. 그들은 정의라는 가면을 쓰고 저를 믿어주는 주인을 배신했다. 정의의 이름으로 불의를 저지르는 ‘정의의 탈’을 과감하게 벗겨내는 일이 바로 정의를 지키는 길이다. 외국에서 법무부를 ‘정의부’(Ministry of Justice)라 부르는 까닭은 법은 정의를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뜻일 게다.

이웃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길이 정의다. 불의를 정의로 위장하거나 이웃을 속이면 잠시 넘어갈지는 몰라도 자기기만(self-deception) 행위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스스로 불행해진다.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일은 어떠한 위선자라 할지라도 가슴속에 남아 있는 회한의 응어리가 스멀대고 옴지락거리기 때문이다. 정의를 말로 부르짖지 말고 아무도 없는 건널목에서 신호를 지켜야 정의로운 자세다.

정의라는 말에는 각자 자신의 위치에 합당한 사회적 도리와 책임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자식들에게 열심히 노력하여 경쟁력을 갖추되, ‘네트워크’를 동원하거나 속임수로 남의 기회를 빼앗지 않도록 가르치는 일이 가장의 정의다. 더 좋은 상품을, 더 싼 가격으로, 더 빨리 공급해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일이 기업가의 정의다. 다원적 가치관을 조화시켜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고 서로 애정을 가지도록 솔선수범하는 노력이 지도자의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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