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남 김응열 기자] 검찰이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사건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대법원 상고를 강행하면서, ‘뉴삼성’ 경영 시계가 다시 멈춰섰다. 결론이 뒤집힐 가능성이 희박한 데도 검찰이 기계적으로 상고에 나섰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9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오는 18일 개최하는 이사회에서 이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건을 상정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달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이 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에 오를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는 의미다. 삼성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이사회 내부에서 이 회장과 관련한 논의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항소심에서 1심에 이어 무죄를 선고 받은 이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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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책임 경영 차원에서 등기이사 선임이 가능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1·2심이 모두 끝난 만큼 대법원에서 결론이 뒤집힐 여지는 희박하다는 분석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사실상 사법 리스크를 벗고 공격 경영의 선봉에 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검찰의 대법원 상고 강행으로 이는 ‘없던 일’이 됐다. 이 회장은 당분간 대외 활동 자제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도쿄선언 42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상고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삼성 안팎은 더 침통한 기류다. 1983년 2월 8일 당시 일본 도쿄에 머물던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은 반도체업계를 주도하던 미국과 일본의 비웃음 속에 “누가 뭐라고 해도 삼성은 반도체 사업을 해야 겠다”고 했다. 도쿄선언은 한국 기업사(史)에서 가장 극적인 ‘퀀텀점프’ 순간 중 하나로 꼽힌다.
재계 한 고위인사는 “대법원 판결까지는 수년이 더 걸릴 수 있다”며 “도쿄선언처럼 판을 흔들 만한 삼성의 과감한 투자가 멈출 수 있다는 점은 국가 경제 차원에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특히 인공지능(AI) 대전환기 들어 미국 빅테크들이 인수합병(M&A) 등을 이어가는 와중이어서, 추후 1~2년을 놓치면 삼성이 초일류의 지위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