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피나 바우쉬와 오랜 기간 작업해 온 무용수들이 자신의 경험을 젊은 무용수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우쉬의 작품을 자기 몸으로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곧 그의 유산을 미래로 이어가는 일이죠.”
한국인 최초이자 유일한 독일 탄츠테아터 부퍼탈 무용단원인 김나영(61)은 바우쉬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의미를 이같이 설명했다.
독일 현대 무용계의 거장 피나 바우쉬(1940~2009)의 대표작 ‘카네이션’은 오는 6일부터 9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14일부터 15일까지 세종예술의전당에서 관객을 만난다. 2000년 LG아트센터 개관작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돼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작품으로, 25년 만의 귀환이다.
 | | 독일 현대 무용계의 거장 피나 바우쉬의 ‘카네이션’(사진=LG아트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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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에서 김나영 리허설 어시스턴트는 “바우쉬는 무용수에게 단순히 움직임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를 던져주고 그 안에서 스스로 느끼고 표현하길 바랐다”며 “처음엔 낯설고 어려웠지만, 그 경험이 제 작업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서울예고에서 발레를 전공한 김나영은 세종대 재학 중 독일로 건너가 1996년 탄츠테아터 부퍼탈에 합류했다. 2000년 LG아트센터 서울 무대에는 무용수로 섰고, 이번에는 리허설 어시스턴트로 참여해 작품을 이끈다.
‘카네이션’은 1982년 초연 후 40년 넘게 전 세계 관객에게 사랑받아 온 작품이다. 바우쉬가 개척한 탄츠테아터(Tanztheater, 춤과 연극 요소를 결합한 현대무용 형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으로 꼽힌다. 칠레 안데스 산맥의 카네이션 들판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무대에는 약 9000송이의 카네이션이 깔린다. 카네이션이 뒤덮인 무대에서 무용수들이 꽃을 짓밟고 쓰러지며 행진하는 장면은 아름다움과 폭력이 공존하는 인간 사회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다니엘 지크하우스 예술감독은 “‘카네이션’에는 폭력과 권력의 작동 방식이 드러나는 장면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바우쉬는 자신의 해석을 관객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며 “그의 작품의 본질은 어떤 경계에도 갇히지 않는 무경계성에 있다”고 말했다.
 | | 독일 현대 무용계의 거장 피나 바우쉬의 ‘카네이션’(사진=LG아트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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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에는 1980년대부터 활동해온 기존 단원들과 2019년 이후 합류한 젊은 무용수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바우쉬 생전 함께 작업했던 안드레이 베진, 아이다 바이네리, 에디 마르티네즈, 김나영, 실비아 파리아스가 참여한다. 이 중 실비아를 제외한 네 명은 25년 전 ‘카네이션’의 한국 초연을 이끌었던 주역들이다.
에드워드 폴 마르티네스 리허설 디렉터는 “예술가로서 우리는 무대 위에 가장 진실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작품은 결국 우리의 삶과 현실을 반영하는 인간 관계의 이야기다. 무용수들이 스스로 본연의 모습을 무대에서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피나 바우쉬는 20세기 공연예술의 흐름을 바꿨다고 평가받는 현대무용계의 혁신적인 안무가다. 1973년 부퍼탈 시립극장 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단체명을 ‘탄츠테아터 부퍼탈’로 바꾸고 36년간 총 44편의 작품을 발표하며 무용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 | 다니엘 지크하우스 예술감독 및 운영총괄(왼쪽부터), 에드워드 폴 마르티네스 리허설 디렉터, 김나영 리허설 어시스턴트, 이현정 LG아트센터장(사진=LG아트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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