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이정훈의 마켓워치

  • [이정훈의 마켓워치]<34>스웨덴이 첫발 뗀 `녹색 양적완화`
    스테판 잉베스 릭스방크 총재[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내년 1월20일 제46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는 조 바이든 당선인이 취임 직후 시행할 1호 정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해버린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다시 가입하는 일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해서 바이든 차기 대통령은 `저(低)탄소, 친(親)환경 정책`을 잇달아 쏟아낼 예정입니다. 그로 인해 현 시점에서 전 세계 각 국가들은 탄소배출 저감과 신재생에너지 개발 등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비단 정부만이 아니죠. 각 국 중앙은행들도 기후변화라는 이슈가 가져올 정책 패러다임 변화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인 26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를 개최한 스웨덴 중앙은행인 릭스방크(Riksbank)는 획기적인 정책을 내놓습니다. 사실상의 `녹색 양적완화(Green QE)`가 그 것입니다.릭스방크는 이날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제로(0)로 동결하는 대신 자산매입 규모를 추가로 확대하는 부양책을 내놓았습니다. 이날 성명서에서 릭스방크는 “여름 이후 경제의 총수요가 빠른 회복세를 보였지만, 최근 코로나19 2차 대유행으로 인해 스웨덴 경제가 새로운 침체국면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자산매입 규모를 현행 5000억 크로나(SEK)에서 7000억 크로나로 확대하고 그 기한도 내년 말까지로 연장했습니다.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바로 릭스방크가 매입하기로 한 대상자산입니다. 릭스방크는 이렇게 자산매입 규모를 늘리면서 그 늘어난 자금으로 “국채뿐만 아니라 정부와 지방정부가 발행하는 그린본드(Green bond)도 함께 매입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린본드는 신재생에너지나 친환경 자동차 등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사업을 위해 발행되는 채권으로, 최근 7년간 7000억달러(원화 약 773조원) 이상 발행됐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규모가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울러 릭스방크는 스웨덴 기업들이 발행하는 회사채도 직접 매입하기로 했는데요. 릭스방크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제 기준과 규범을 준수하는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만을 매입 대상으로 할 것”이라고 적시했습니다.이를 완전한 의미의 `녹색 QE`라 부르긴 어려울 수 있겠지만, 사실상 첫 녹색 QE라 하기엔 큰 무리가 없을 겁니다. 녹색 QE는 다소 좁은 의미에서 그린본드를 주로 매입하는 방식이지만, 이를 확장하면 `기후 양적완화(Climate QE)`, 그리고 더 광범위하게는 `환경·사회·지배구조 양적완화(ESG QE)`로도 칭할 수 있습니다.사실 이 녹색 QE는 지금으로부터 근 1년 전인 지난해 9월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공식 제안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다분히 현실성이 떨어지는, 그래서 다소 이상적인 정책으로 읽히기도 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그 도입 시기가 빨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다른 중앙은행들도 릭스방크의 행보를 따라갈 가능성이 충분한 것으로 보이구요. 아마도 ECB가 가장 서두르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연도별 그린본드 발행액 (단위, 10억달러, 자료: 클라이밋 본드 이니셔티브)당시 라가르드 ECB 총재는 유럽의회 경제통화위원회에 출석해 “ECB는 특정 영역을 지원하는 것을 금지하는 시장중립성 원칙으로 인해 친환경 자산부터 브라운 자산(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기업이 발행한 채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산을 매입해서 보유하고 있다”면서도 “앞으로도 최소한 기후변화 위험성을 고려해 QE 과정에서 그린본드를 집중 매입하는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녹색 QE` 필요성을 주창한 것이죠.이처럼 선진국을 중심으로 중앙은행이 실행하는 QE에도 기후변화 요소를 고려하고 있는 것은 기후변화가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차 커질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데 따른 것입니다. 실제 글로벌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주요 20개국(G20)이 공동 설립한 금융안정위원회(FSB)는 수년 전부터 그 산하에 기후변화 재무정보 공개 태스크포스(TCFD)를 두고 기후변화가 금융시스템에 미칠 영향을 고민해 왔습니다. FSB를 이끄는 마크 카니 영란은행(BOE) 전 총재는 통화정책 고려 요인으로 기후변화를 포함하자고 각 중앙은행에 권고했습니다.다만 중앙은행이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 역할을 하는 것에 비판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양적완화 확대에 반대해 온 옌스 바이트만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는 녹색 QE로 인해 중앙은행의 돈 풀기를 제어하기 힘들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기후변화 대응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부에 맡길 일이며 중앙은행이 기후변화에 필요한 자금까지 대는 꼴이 된다면 그 독립성은 더 심각한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한발 더 나아가 기후변화는 단순히 녹색 QE가 아니더라도 투자자들에게 또다른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우선 영란은행의 케이스처럼 금융사들의 자산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영란은행은 이미 영국 내 7개 주요 은행과 보험사 등을 대상으로 기후변화 위험을 가정한 스트레스 테스트(건전성 조사)를 진행해 내년 상반기 첫 보고서 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최근엔 기후위기 시나리오도 3개 난이도로 세분화하는 등 테스트를 한층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죠. 기후변화에 대응이 미흡한 금융사들은 추가 자본 확충 등 불이익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영란은행은 프랑스ㆍ네덜란드 중앙은행과 함께 기후변화 위험을 논의하는 전 세계 중앙은행 및 감독당국 모임인 녹색금융협의체(NGFS) 출범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2017년 당시 8개였던 회원기구가 현재 54개로 늘어났고, 우리 한국은행도 이 기구에 가입해 있습니다. 이에 맞춰 ECB도 이미 지난달 “2022년부터는 기후변화에 따른 위험을 어떻게 회계상에 반영하는지를 보고 건전성을 심층적으로 평가하겠다”고 금융회사들에게 통보한 바 있습니다. 특히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 집권 하에서 이 같은 글로벌 트렌드에 무관심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까지도 이달초 내놓은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기후변화가 금융시장과 금융시스템 안정을 저해하는 위험요인이라고 적시하며 변화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더구나 바이든 당선인은 자신의 경제팀 핵심 요직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에 블랙록 출신으로 과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기후변화 특별고문이었던 브라이언 디스를 내정함으로써 앞으로 연준이 기후변화 대응에 관련해 보다 적극적 역할을 할 가능성도 충분해 보입니다.일반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9조달러(원화 약 114조원) 이상 자산을 관리하고 있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영국 최대 석유회사인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과 독일 자동차회사 폴크스바겐, 독일 국적항공사 루프트한자 등 유럽 대표 기업 36곳에 이달 초 서한을 보내 회계처리 과정에서 기후 리스크를 누락시키지 말 것을 주문했다고 합니다. 이들 투자자들은 서한에서 “회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후변화 리스크를 배제하는 것은 주주들의 투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라며 “더 나쁜 것은 이것이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때문에 앞으로 기후변화에 노출돼 있는 사업이나 투자 등을 기업들이 투명하게 공시해야 하는 날이 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기후변화라는 화두가 우리에게 던지는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이정훈 기자 2020.11.30
    스테판 잉베스 릭스방크 총재[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내년 1월20일 제46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는 조 바이든 당선인이 취임 직후 시행할 1호 정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해버린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다시 가입하는 일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해서 바이든 차기 대통령은 `저(低)탄소, 친(親)환경 정책`을 잇달아 쏟아낼 예정입니다. 그로 인해 현 시점에서 전 세계 각 국가들은 탄소배출 저감과 신재생에너지 개발 등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비단 정부만이 아니죠. 각 국 중앙은행들도 기후변화라는 이슈가 가져올 정책 패러다임 변화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인 26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를 개최한 스웨덴 중앙은행인 릭스방크(Riksbank)는 획기적인 정책을 내놓습니다. 사실상의 `녹색 양적완화(Green QE)`가 그 것입니다.릭스방크는 이날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제로(0)로 동결하는 대신 자산매입 규모를 추가로 확대하는 부양책을 내놓았습니다. 이날 성명서에서 릭스방크는 “여름 이후 경제의 총수요가 빠른 회복세를 보였지만, 최근 코로나19 2차 대유행으로 인해 스웨덴 경제가 새로운 침체국면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자산매입 규모를 현행 5000억 크로나(SEK)에서 7000억 크로나로 확대하고 그 기한도 내년 말까지로 연장했습니다.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바로 릭스방크가 매입하기로 한 대상자산입니다. 릭스방크는 이렇게 자산매입 규모를 늘리면서 그 늘어난 자금으로 “국채뿐만 아니라 정부와 지방정부가 발행하는 그린본드(Green bond)도 함께 매입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린본드는 신재생에너지나 친환경 자동차 등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사업을 위해 발행되는 채권으로, 최근 7년간 7000억달러(원화 약 773조원) 이상 발행됐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규모가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울러 릭스방크는 스웨덴 기업들이 발행하는 회사채도 직접 매입하기로 했는데요. 릭스방크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제 기준과 규범을 준수하는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만을 매입 대상으로 할 것”이라고 적시했습니다.이를 완전한 의미의 `녹색 QE`라 부르긴 어려울 수 있겠지만, 사실상 첫 녹색 QE라 하기엔 큰 무리가 없을 겁니다. 녹색 QE는 다소 좁은 의미에서 그린본드를 주로 매입하는 방식이지만, 이를 확장하면 `기후 양적완화(Climate QE)`, 그리고 더 광범위하게는 `환경·사회·지배구조 양적완화(ESG QE)`로도 칭할 수 있습니다.사실 이 녹색 QE는 지금으로부터 근 1년 전인 지난해 9월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공식 제안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다분히 현실성이 떨어지는, 그래서 다소 이상적인 정책으로 읽히기도 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그 도입 시기가 빨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다른 중앙은행들도 릭스방크의 행보를 따라갈 가능성이 충분한 것으로 보이구요. 아마도 ECB가 가장 서두르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연도별 그린본드 발행액 (단위, 10억달러, 자료: 클라이밋 본드 이니셔티브)당시 라가르드 ECB 총재는 유럽의회 경제통화위원회에 출석해 “ECB는 특정 영역을 지원하는 것을 금지하는 시장중립성 원칙으로 인해 친환경 자산부터 브라운 자산(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기업이 발행한 채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산을 매입해서 보유하고 있다”면서도 “앞으로도 최소한 기후변화 위험성을 고려해 QE 과정에서 그린본드를 집중 매입하는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녹색 QE` 필요성을 주창한 것이죠.이처럼 선진국을 중심으로 중앙은행이 실행하는 QE에도 기후변화 요소를 고려하고 있는 것은 기후변화가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차 커질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데 따른 것입니다. 실제 글로벌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주요 20개국(G20)이 공동 설립한 금융안정위원회(FSB)는 수년 전부터 그 산하에 기후변화 재무정보 공개 태스크포스(TCFD)를 두고 기후변화가 금융시스템에 미칠 영향을 고민해 왔습니다. FSB를 이끄는 마크 카니 영란은행(BOE) 전 총재는 통화정책 고려 요인으로 기후변화를 포함하자고 각 중앙은행에 권고했습니다.다만 중앙은행이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 역할을 하는 것에 비판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양적완화 확대에 반대해 온 옌스 바이트만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는 녹색 QE로 인해 중앙은행의 돈 풀기를 제어하기 힘들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기후변화 대응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부에 맡길 일이며 중앙은행이 기후변화에 필요한 자금까지 대는 꼴이 된다면 그 독립성은 더 심각한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한발 더 나아가 기후변화는 단순히 녹색 QE가 아니더라도 투자자들에게 또다른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우선 영란은행의 케이스처럼 금융사들의 자산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영란은행은 이미 영국 내 7개 주요 은행과 보험사 등을 대상으로 기후변화 위험을 가정한 스트레스 테스트(건전성 조사)를 진행해 내년 상반기 첫 보고서 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최근엔 기후위기 시나리오도 3개 난이도로 세분화하는 등 테스트를 한층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죠. 기후변화에 대응이 미흡한 금융사들은 추가 자본 확충 등 불이익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영란은행은 프랑스ㆍ네덜란드 중앙은행과 함께 기후변화 위험을 논의하는 전 세계 중앙은행 및 감독당국 모임인 녹색금융협의체(NGFS) 출범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2017년 당시 8개였던 회원기구가 현재 54개로 늘어났고, 우리 한국은행도 이 기구에 가입해 있습니다. 이에 맞춰 ECB도 이미 지난달 “2022년부터는 기후변화에 따른 위험을 어떻게 회계상에 반영하는지를 보고 건전성을 심층적으로 평가하겠다”고 금융회사들에게 통보한 바 있습니다. 특히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 집권 하에서 이 같은 글로벌 트렌드에 무관심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까지도 이달초 내놓은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기후변화가 금융시장과 금융시스템 안정을 저해하는 위험요인이라고 적시하며 변화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더구나 바이든 당선인은 자신의 경제팀 핵심 요직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에 블랙록 출신으로 과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기후변화 특별고문이었던 브라이언 디스를 내정함으로써 앞으로 연준이 기후변화 대응에 관련해 보다 적극적 역할을 할 가능성도 충분해 보입니다.일반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9조달러(원화 약 114조원) 이상 자산을 관리하고 있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영국 최대 석유회사인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과 독일 자동차회사 폴크스바겐, 독일 국적항공사 루프트한자 등 유럽 대표 기업 36곳에 이달 초 서한을 보내 회계처리 과정에서 기후 리스크를 누락시키지 말 것을 주문했다고 합니다. 이들 투자자들은 서한에서 “회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후변화 리스크를 배제하는 것은 주주들의 투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라며 “더 나쁜 것은 이것이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때문에 앞으로 기후변화에 노출돼 있는 사업이나 투자 등을 기업들이 투명하게 공시해야 하는 날이 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기후변화라는 화두가 우리에게 던지는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 [이정훈의 마켓워치]<33>연준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부활?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이번 제46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본격적으로 차기 조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방해공작을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법률 대리인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모든 투표의 합법성이 확인될 때까지 결과 승인을 보류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 곳 중부연방지법은 “추측에 근거한 제소”라며 이를 단호히 기각하고 말았습니다. 이리저리 할 수 있는 법적 조치를 취해봐도 소용이 없어지자 공화당은 이제 새 행정부를 귀찮게 구는 것 외에 달리 쓸 수 있는 카드가 없어 보입니다.지난 주말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이 총대를 멨습니다. 그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요청한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에서 회사채를 매입해주는 기업신용기구(CCF)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자금을 지원해주는 메인스트리트대출(MSL) 프로그램의 만기 연장을 거부하고, 올 연말에 종료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므누신 장관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코로나19 부양대책인 케어스 액트(CARES Act)에 의거해 만들어진 대출기구들이 제 설립 목표를 명확히 달성했다”면서 당초 에정됐던 12월31일까지 이를 정리한 뒤 재무부가 줬던 종잣돈 중 미집행분을 반납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연준은 애초에 “비상대출기구들이 여전히 취약한 경제에 지원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재무부 뜻에 따르기로 했습니다.연준의 유통시장 기업신용기구(SMCCF)의 실제 회사채 매입 추이므누신 장관 얘기처럼 시장이 안정된 건 사실입니다. 다만 코로나19가 다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만큼 이런 (심리적인) 안전판이 필요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 과감한 결단을 내린 건 어쩌면 바이든 행정부의 스텝을 꼬이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만 이로 인한 시장 혼란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을 통틀어 CCF는 7500억달러 규모인데, 지금까지 수개월 간 실제 매입이 이뤄진 건 10%도 채 안됩니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이 뒤를 받치고 있다는 후광효과만으로 실제 매입 없이도 시장이 안정됐다고 할 수 있지만요. MSL도 6000억달러라는 전체 재원 중 1%도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했구요. 그나마 최근 연준이 대출 기준을 25만달러에서 10만달러로 낮춘 뒤 대출규모가 약간 늘어나는 수준이었습니다.연준의 메인스트리트대출(MSL) 프로그램의 실제 집행 규모 및 총 재원 중 집행비율 추이결국 므누신 장관의 이런 조치에 그리 놀랄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개인적으로는 차기 재무 장관이나 연준으로 하여금 더욱 신속한 시장 대응을 준비하도록 하는 각성효과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호재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일단 앞으로 새롭게 임명될 차기 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이를 다시 시행할 수도 있습니다. 연준 역시 필요할 경우 이 공백 만큼 추가로 자산매입 규모를 늘리는 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다음달 14~15일(현지시간) 양 일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회의에서 연준은 최근 미국 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리스크나 이번 재무부 조치에 따른 영향을 감안해 즉각 자산매입 규모를 늘릴 지도 모릅니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최소한 향후 추가 매입 확대의 시그널을 줄 가능성은 높아 보입니다. 지난주 미 상무부가 발표한 10월 소매판매도 전월대비 0.3% 증가에 그쳐 최근 6개월 만에 가장 부진한 실적을 냈습니다.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미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재차 닫고 있다는 뜻이죠.이 상황에서 주목할 것은 최근 단기간 내에 10년만기 미 국채금리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고 장기와 단기 금리 간 차이(=스프레드)가 커지면서 채권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지고(=steepening) 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연준이 자산매입 규모를 확대하더라도 장기채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매수하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실제 과거 연준에서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바 있는 마이클 페롤리 JP모건 이코노미스트도 최근 한 인터뷰에서 “연준이 12월 FOMC 회의에서 매달 800억달러 규모인 국채매입 규모를 더 늘리면서 이 과정에서 보유채권의 만기를 장기화할 것”이라고 점친 바 있습니다. 이는 과거 연준이 양적완화가 한창 진행되던 지난 2011~2012년에 시행했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를 연상케 하는 조치죠.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는 연준이 단기채권을 매도하고 그 자금으로 장기채권을 매입함으로써, 채권 만기를 늘리고 채권수익률곡선을 평탄화(flattening)하는 전략입니다.연준은 과거 2011년과 2012년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시행한 바 있다. 당시 10년만기 국채금리는 안정됐고 제조업 경기도 다소 살아나는 모습이었다.지난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찰스 에반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 역시 “내년 봄까지 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추가로 자산매입 규모를 늘릴 수 있다”고 밝히면서 “보유채권 만기를 확대하는 것은 연준이 쓸 수 있는 정책수단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도입에 대한 힌트를 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연준의 추가 부양책은 최근 지지부진한 미 달러화 가치를 추가로 더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이는 최근 강세를 보이는 중국 위안화와 우리 원화 등 아시아 신흥국 통화 가치를 끌어 올려 이 지역에서의 외국인 매수세를 유입시키는 지렛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정훈 기자 2020.11.23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이번 제46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본격적으로 차기 조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방해공작을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법률 대리인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모든 투표의 합법성이 확인될 때까지 결과 승인을 보류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 곳 중부연방지법은 “추측에 근거한 제소”라며 이를 단호히 기각하고 말았습니다. 이리저리 할 수 있는 법적 조치를 취해봐도 소용이 없어지자 공화당은 이제 새 행정부를 귀찮게 구는 것 외에 달리 쓸 수 있는 카드가 없어 보입니다.지난 주말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이 총대를 멨습니다. 그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요청한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에서 회사채를 매입해주는 기업신용기구(CCF)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자금을 지원해주는 메인스트리트대출(MSL) 프로그램의 만기 연장을 거부하고, 올 연말에 종료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므누신 장관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코로나19 부양대책인 케어스 액트(CARES Act)에 의거해 만들어진 대출기구들이 제 설립 목표를 명확히 달성했다”면서 당초 에정됐던 12월31일까지 이를 정리한 뒤 재무부가 줬던 종잣돈 중 미집행분을 반납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연준은 애초에 “비상대출기구들이 여전히 취약한 경제에 지원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재무부 뜻에 따르기로 했습니다.연준의 유통시장 기업신용기구(SMCCF)의 실제 회사채 매입 추이므누신 장관 얘기처럼 시장이 안정된 건 사실입니다. 다만 코로나19가 다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만큼 이런 (심리적인) 안전판이 필요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 과감한 결단을 내린 건 어쩌면 바이든 행정부의 스텝을 꼬이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만 이로 인한 시장 혼란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을 통틀어 CCF는 7500억달러 규모인데, 지금까지 수개월 간 실제 매입이 이뤄진 건 10%도 채 안됩니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이 뒤를 받치고 있다는 후광효과만으로 실제 매입 없이도 시장이 안정됐다고 할 수 있지만요. MSL도 6000억달러라는 전체 재원 중 1%도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했구요. 그나마 최근 연준이 대출 기준을 25만달러에서 10만달러로 낮춘 뒤 대출규모가 약간 늘어나는 수준이었습니다.연준의 메인스트리트대출(MSL) 프로그램의 실제 집행 규모 및 총 재원 중 집행비율 추이결국 므누신 장관의 이런 조치에 그리 놀랄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개인적으로는 차기 재무 장관이나 연준으로 하여금 더욱 신속한 시장 대응을 준비하도록 하는 각성효과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호재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일단 앞으로 새롭게 임명될 차기 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이를 다시 시행할 수도 있습니다. 연준 역시 필요할 경우 이 공백 만큼 추가로 자산매입 규모를 늘리는 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다음달 14~15일(현지시간) 양 일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회의에서 연준은 최근 미국 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리스크나 이번 재무부 조치에 따른 영향을 감안해 즉각 자산매입 규모를 늘릴 지도 모릅니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최소한 향후 추가 매입 확대의 시그널을 줄 가능성은 높아 보입니다. 지난주 미 상무부가 발표한 10월 소매판매도 전월대비 0.3% 증가에 그쳐 최근 6개월 만에 가장 부진한 실적을 냈습니다.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미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재차 닫고 있다는 뜻이죠.이 상황에서 주목할 것은 최근 단기간 내에 10년만기 미 국채금리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고 장기와 단기 금리 간 차이(=스프레드)가 커지면서 채권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지고(=steepening) 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연준이 자산매입 규모를 확대하더라도 장기채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매수하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실제 과거 연준에서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바 있는 마이클 페롤리 JP모건 이코노미스트도 최근 한 인터뷰에서 “연준이 12월 FOMC 회의에서 매달 800억달러 규모인 국채매입 규모를 더 늘리면서 이 과정에서 보유채권의 만기를 장기화할 것”이라고 점친 바 있습니다. 이는 과거 연준이 양적완화가 한창 진행되던 지난 2011~2012년에 시행했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를 연상케 하는 조치죠.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는 연준이 단기채권을 매도하고 그 자금으로 장기채권을 매입함으로써, 채권 만기를 늘리고 채권수익률곡선을 평탄화(flattening)하는 전략입니다.연준은 과거 2011년과 2012년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시행한 바 있다. 당시 10년만기 국채금리는 안정됐고 제조업 경기도 다소 살아나는 모습이었다.지난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찰스 에반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 역시 “내년 봄까지 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추가로 자산매입 규모를 늘릴 수 있다”고 밝히면서 “보유채권 만기를 확대하는 것은 연준이 쓸 수 있는 정책수단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도입에 대한 힌트를 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연준의 추가 부양책은 최근 지지부진한 미 달러화 가치를 추가로 더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이는 최근 강세를 보이는 중국 위안화와 우리 원화 등 아시아 신흥국 통화 가치를 끌어 올려 이 지역에서의 외국인 매수세를 유입시키는 지렛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 [이정훈의 마켓워치]<32>사그라드는 美고용 회복의 불씨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여전히 실업자가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건 그 만큼 미국 경제가 코로나19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정부나 의회가 추가적인 재정부양이 필요하다는 호소를 듣지 못한다면 아마 (우리 경제는 그) 터널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경제 회복의 동력이 말라가고 있습니다.”미국 내 저명한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크리스 럽스키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둔화하고 있는 고용지표 개선에 대해 이처럼 비관적인 진단을 내놨습니다. 알다시피 국내총생산(GDP) 3분의2 가까이가 소비에 의해 만들어지는 미국 경제의 특성 상 고용경기는 가계의 가처분소득과 그에 따른 소비경기를 좌우하는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지난 2일(현지시간)에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9월 고용 보고서는 우울했습니다. 헤드라인 지표보다 세부 지표까지 부정적인 평가 일색이었는데요. 우선 고용 보고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헤드라인 지표인 비농업부문 취업자 수가 9월에 전월대비 66만1000개 늘어났습니다. 이는 85만개였던 시장 전망치에 비해 18만9000개나 모자란 수준이었습니다. 특히 비농업 취업자수는 6월 이후 석 달 연속으로 증가세가 꺾이고 있는데요. 6월에 사상 최대였던 480만개 증가를 기록한 뒤 7월 170만개, 8월 150만개 이어 이번에는 66만여개에 그친 겁니다. 이로써 미국 내 코로나19가 본격 창궐한 직후 3월에 140만개, 4월에 2080만개나 줄었던 취업자 수는 5월부터 9월까지 5개월 간 1140만개 일자리가 늘어나는데 그쳤습니다. 결국 코로나19 펜더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7개월 간 미국 내 비농업 취업자 수는 1090만개 정도가 줄었다는 얘기가 됩니다.미국의 월별 비농업 신규 취업자 수가 최근 3개월 간 매달 전월대비 줄고 있다.이처럼 취업자 수 증가세가 꺾이고 있는 것은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으면서 기업들의 가동률이 높아지긴 했지만 고용을 예전처럼 다시 늘릴 여유가 없는 상황입니다. 이번 9월만 해도 사람들의 왕래가 다소 살아나면서 소매업종에서 14만2000개, 헬스케어와 사회복지에서 10만8000개, 레저 및 병원에서 31만8000개의 취업자 수가 늘어났지만, 제조업 취업자 수는 6만6000개 증가에 그쳤습니다. 게다가 최근 취업자 증가를 주도해 온 정부부문에서도 재정을 풀어 임시직을 늘리는데 한계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 8월 취업자 수 서프라이즈는, 미국 정부가 10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센서스)를 위해 23만8000명에 이르는 조사원을 임시직으로 채용한 덕이었습니다. 그런데 센서스가 끝나자 9월에는 그 만큼 채용에 구멍이 생겼고, 당장 9월 정부부문 취업자 수는 21만6000개나 줄었습니다. 학교들도 등교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해고된 교사들의 빈 자리도 좀처럼 메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9월 실업률은 8.4에서 7.9%로 0.5%포인트나 개선되며 지난 4월 고점이던 14%대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까지 내려오긴 했습니다. 이는 8.2%였던 시장 전망치보다도 좋았구요. 그러나 실업률은 여전히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4.4%포인트나 높은 수준입니다. 특히 실업률 하락의 배후에는 구직활동을 포기한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9월 중 구직활동을 포기하면서 경제활동인구에서 빠진 사람 수가 무려 69만5000명이나 됐구요. 이 때문에 노동시장 참가율은 61.7%에서 61.4%로 오히려 0.3%포인트 하락했습니다. 구직활동이 줄어드는 실업자로 잡히는 사람 수가 줄어든 겁니다. 이처럼 고용시장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건 그 만큼 경기 회복이 강하지 않고 사람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실업자 통계도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9월 중 일시적으로 해고된 사람 수는 전월대비 150만명 줄어 460만명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전체 해고자 중 임시 해고 비율은 36%로, 이전 달의 45%보다 낮아졌습니다. 그만큼 영구 해고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 9월 중 영구 해고자 수는 34만5000개 늘어난 380만명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2월말에 비해 7개월 간 250만명 증가한 겁니다. 미국에서 일시적 해고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반면 영구적 해고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더구나 미국경제 내 고용 중 60~70%를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에서 이같은 영구 해고가 늘어나고 있다는 게 더 큰 충격입니다. 이는 500인 이하 임직원을 가진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고용 유지를 위한 정부가 지원했던 급여보호프로그램(PPP)이 8월 중순에 사실상 모두 소진되자 버티기 힘들어진 중소기업들이 일시 휴직이나 해고했던 인력을 영구 해고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고용 보고서에 비해 시의성이 높은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를 봐도 지난주 83만7000건을 기록하며 최근 몇 주간 100만건 아래로 내려오긴 했지만, 계절적 요인을 배제한 4주 이동평균으로는 개선 추세가 아주 완만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배달근로자 등 긱(Gig·임시직) 노동자나 자가고용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팬더믹실업보조(PUA) 신청도 다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발 나아가 최근 로열더치셀은 9000명 감원을 발표한데 이어 엑슨모빌과 셰브론, 코노코필립스 등도 대규모 감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에너지업계에서만 향후 1~2분기 내에 최소 10만명 이상 해고가 단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어메리칸에어라인과 유나이티드에어라인이 3만5000명 직원을 줄이기로 했고 디즈니도 테마파크 등에서 2만8000명에 이르는 대규모 감원 계획을 내놨습니다. 그 외에도 식당과 크루즈 선박회사, 소매, 방산업체 등도 해고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9월 지표에 아직 반영되지도 않았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미국에서의 고용 개선 모멘텀이 뚜렷하게 약화하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아울러 고용시장 여건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문제는 이런 고용 부진은 미국의 소비경기와 경제 성장까지도 훼손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 하반기부터 주 600달러에 이르는 특별 실업수당이 사라지면서 8월 미국 개인 소득은 전월대비 2.7%나 줄었습니다. 내구재 소비도 줄고 서비스업 회복세도 둔화하고 있습니다. 미국 개인 소득이 코로나19 팬더믹 전후로 급등락을 보이다 최근 다시 감소세로 돌아서고 있다.결국 정부부문에서 둔화하는 고용 창출을 되살리고 중소기업들의 영구 해고 확대를 막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앞으로도 재정부양을 지속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앞서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미국 정부가 경기 침체 초기에 특별 실업수당 지급과 개인과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 등을 통해 고용을 늘리는데 성공했지만, 이후 의회로부터 추가 재정부양책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해 재정지출을 줄인 탓에 살아나려뎐 고용경기의 불씨를 스스로 꺼뜨렸던 아픔이 있습니다.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냈던 캐런 다이넌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시 (행정부의) 초기 대응은 좋았지만, 경제가 필요로 했던 추가 부양엔 실패했다”며 “대규모 경기 침체기를 겪고 난 뒤 경기가 본격 회복하는데에는 평소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통화정책이 아닌 재정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합니다. 최근 미 하원 소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도 “경기가 회복되는 동안 더 많은 재정 지원이 필요하며, 그런 재정정책의 힘은 다른 어떤 것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며 “만약 연준과 의회가 함께 경제를 뒷받침한다면 경기 회복세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촉구했습니다. 로버트 S. 캐플란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지난주 “지난 금융위기를 통해 가파르게 올라간 실업률을 끌어 내리는데 상당한 시간과 힘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며 “지금이라도 서둘러 재정지원을 더 확대하고 연장한다면 (고용을 살려낼)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그러나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얼마 전 하원 다수당인 민주당은 2조2000억달러 규모의 추가 재정부양 패키지를 가결시켰지만,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1조6000억달러 이상의 재정 부양에는 동의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상원 공화당의 전향적인 자세가 없다면 11월3일 대통령 선거 이전에 타결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입니다. 지금이라도 미 의회가 추가 재정부양책에 합의한다면 미국인들에 대한 추가적인 직접 지원금(=긴급재난지원금)과 특별 실업수당 지급, 주정부와 지방정부 지원 및 기업 지원 확대 등을 현실화할 수 있을 겁니다. 이는 힘이 빠지고 있는 고용시장에 다시 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지만, 고용경기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입니다.
    이정훈 기자 2020.10.05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여전히 실업자가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건 그 만큼 미국 경제가 코로나19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정부나 의회가 추가적인 재정부양이 필요하다는 호소를 듣지 못한다면 아마 (우리 경제는 그) 터널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경제 회복의 동력이 말라가고 있습니다.”미국 내 저명한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크리스 럽스키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둔화하고 있는 고용지표 개선에 대해 이처럼 비관적인 진단을 내놨습니다. 알다시피 국내총생산(GDP) 3분의2 가까이가 소비에 의해 만들어지는 미국 경제의 특성 상 고용경기는 가계의 가처분소득과 그에 따른 소비경기를 좌우하는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지난 2일(현지시간)에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9월 고용 보고서는 우울했습니다. 헤드라인 지표보다 세부 지표까지 부정적인 평가 일색이었는데요. 우선 고용 보고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헤드라인 지표인 비농업부문 취업자 수가 9월에 전월대비 66만1000개 늘어났습니다. 이는 85만개였던 시장 전망치에 비해 18만9000개나 모자란 수준이었습니다. 특히 비농업 취업자수는 6월 이후 석 달 연속으로 증가세가 꺾이고 있는데요. 6월에 사상 최대였던 480만개 증가를 기록한 뒤 7월 170만개, 8월 150만개 이어 이번에는 66만여개에 그친 겁니다. 이로써 미국 내 코로나19가 본격 창궐한 직후 3월에 140만개, 4월에 2080만개나 줄었던 취업자 수는 5월부터 9월까지 5개월 간 1140만개 일자리가 늘어나는데 그쳤습니다. 결국 코로나19 펜더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7개월 간 미국 내 비농업 취업자 수는 1090만개 정도가 줄었다는 얘기가 됩니다.미국의 월별 비농업 신규 취업자 수가 최근 3개월 간 매달 전월대비 줄고 있다.이처럼 취업자 수 증가세가 꺾이고 있는 것은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으면서 기업들의 가동률이 높아지긴 했지만 고용을 예전처럼 다시 늘릴 여유가 없는 상황입니다. 이번 9월만 해도 사람들의 왕래가 다소 살아나면서 소매업종에서 14만2000개, 헬스케어와 사회복지에서 10만8000개, 레저 및 병원에서 31만8000개의 취업자 수가 늘어났지만, 제조업 취업자 수는 6만6000개 증가에 그쳤습니다. 게다가 최근 취업자 증가를 주도해 온 정부부문에서도 재정을 풀어 임시직을 늘리는데 한계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 8월 취업자 수 서프라이즈는, 미국 정부가 10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센서스)를 위해 23만8000명에 이르는 조사원을 임시직으로 채용한 덕이었습니다. 그런데 센서스가 끝나자 9월에는 그 만큼 채용에 구멍이 생겼고, 당장 9월 정부부문 취업자 수는 21만6000개나 줄었습니다. 학교들도 등교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해고된 교사들의 빈 자리도 좀처럼 메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9월 실업률은 8.4에서 7.9%로 0.5%포인트나 개선되며 지난 4월 고점이던 14%대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까지 내려오긴 했습니다. 이는 8.2%였던 시장 전망치보다도 좋았구요. 그러나 실업률은 여전히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4.4%포인트나 높은 수준입니다. 특히 실업률 하락의 배후에는 구직활동을 포기한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9월 중 구직활동을 포기하면서 경제활동인구에서 빠진 사람 수가 무려 69만5000명이나 됐구요. 이 때문에 노동시장 참가율은 61.7%에서 61.4%로 오히려 0.3%포인트 하락했습니다. 구직활동이 줄어드는 실업자로 잡히는 사람 수가 줄어든 겁니다. 이처럼 고용시장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건 그 만큼 경기 회복이 강하지 않고 사람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실업자 통계도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9월 중 일시적으로 해고된 사람 수는 전월대비 150만명 줄어 460만명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전체 해고자 중 임시 해고 비율은 36%로, 이전 달의 45%보다 낮아졌습니다. 그만큼 영구 해고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 9월 중 영구 해고자 수는 34만5000개 늘어난 380만명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2월말에 비해 7개월 간 250만명 증가한 겁니다. 미국에서 일시적 해고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반면 영구적 해고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더구나 미국경제 내 고용 중 60~70%를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에서 이같은 영구 해고가 늘어나고 있다는 게 더 큰 충격입니다. 이는 500인 이하 임직원을 가진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고용 유지를 위한 정부가 지원했던 급여보호프로그램(PPP)이 8월 중순에 사실상 모두 소진되자 버티기 힘들어진 중소기업들이 일시 휴직이나 해고했던 인력을 영구 해고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고용 보고서에 비해 시의성이 높은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를 봐도 지난주 83만7000건을 기록하며 최근 몇 주간 100만건 아래로 내려오긴 했지만, 계절적 요인을 배제한 4주 이동평균으로는 개선 추세가 아주 완만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배달근로자 등 긱(Gig·임시직) 노동자나 자가고용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팬더믹실업보조(PUA) 신청도 다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발 나아가 최근 로열더치셀은 9000명 감원을 발표한데 이어 엑슨모빌과 셰브론, 코노코필립스 등도 대규모 감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에너지업계에서만 향후 1~2분기 내에 최소 10만명 이상 해고가 단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어메리칸에어라인과 유나이티드에어라인이 3만5000명 직원을 줄이기로 했고 디즈니도 테마파크 등에서 2만8000명에 이르는 대규모 감원 계획을 내놨습니다. 그 외에도 식당과 크루즈 선박회사, 소매, 방산업체 등도 해고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9월 지표에 아직 반영되지도 않았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미국에서의 고용 개선 모멘텀이 뚜렷하게 약화하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아울러 고용시장 여건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문제는 이런 고용 부진은 미국의 소비경기와 경제 성장까지도 훼손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 하반기부터 주 600달러에 이르는 특별 실업수당이 사라지면서 8월 미국 개인 소득은 전월대비 2.7%나 줄었습니다. 내구재 소비도 줄고 서비스업 회복세도 둔화하고 있습니다. 미국 개인 소득이 코로나19 팬더믹 전후로 급등락을 보이다 최근 다시 감소세로 돌아서고 있다.결국 정부부문에서 둔화하는 고용 창출을 되살리고 중소기업들의 영구 해고 확대를 막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앞으로도 재정부양을 지속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앞서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미국 정부가 경기 침체 초기에 특별 실업수당 지급과 개인과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 등을 통해 고용을 늘리는데 성공했지만, 이후 의회로부터 추가 재정부양책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해 재정지출을 줄인 탓에 살아나려뎐 고용경기의 불씨를 스스로 꺼뜨렸던 아픔이 있습니다.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냈던 캐런 다이넌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시 (행정부의) 초기 대응은 좋았지만, 경제가 필요로 했던 추가 부양엔 실패했다”며 “대규모 경기 침체기를 겪고 난 뒤 경기가 본격 회복하는데에는 평소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통화정책이 아닌 재정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합니다. 최근 미 하원 소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도 “경기가 회복되는 동안 더 많은 재정 지원이 필요하며, 그런 재정정책의 힘은 다른 어떤 것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며 “만약 연준과 의회가 함께 경제를 뒷받침한다면 경기 회복세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촉구했습니다. 로버트 S. 캐플란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지난주 “지난 금융위기를 통해 가파르게 올라간 실업률을 끌어 내리는데 상당한 시간과 힘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며 “지금이라도 서둘러 재정지원을 더 확대하고 연장한다면 (고용을 살려낼)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그러나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얼마 전 하원 다수당인 민주당은 2조2000억달러 규모의 추가 재정부양 패키지를 가결시켰지만,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1조6000억달러 이상의 재정 부양에는 동의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상원 공화당의 전향적인 자세가 없다면 11월3일 대통령 선거 이전에 타결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입니다. 지금이라도 미 의회가 추가 재정부양책에 합의한다면 미국인들에 대한 추가적인 직접 지원금(=긴급재난지원금)과 특별 실업수당 지급, 주정부와 지방정부 지원 및 기업 지원 확대 등을 현실화할 수 있을 겁니다. 이는 힘이 빠지고 있는 고용시장에 다시 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지만, 고용경기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입니다.
  • [이정훈의 마켓워치]<31>유로존에 드리운 디플레이션 그림자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서의 디플레이션은 앞으로 몇 개월 간 더 이어질 것 같습니다.”지난주 유럽의회 금융위원회에 출석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이처럼 우려섞인 발언을 내놨습니다. “앞서 6월에 조금 더 높았던 디플레이션 리스크가 9월에는 후퇴할 것”이라고 했던 자신의 발언을 2주 만에 뒤집은 겁니다.디플레이션에 대한 라가르드 총재의 인식이 이렇게 바뀐 건 얼마 전에 유로스타트가 공개한 9월 소비자물가지수 통계 때문인데요. 이에 따르면 지난 9월 유로존의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대비 0.3% 하락했습니다. 이는 앞선 8월의 -0.2%보다 더 확대된 겁니다. 이는 에너지 가격이 8.2%나 하락한 영향이 컸습니다. 그러나 우려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음식료부문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도 9월에 전년동월대비 0.2% 하락한 것인데요. 이는 8월의 -0.4%에 비해 하락폭이 다소 줄긴 했지만, 유로존 근원 물가가 두 달 연속으로 마이너스(-)를 보인 건 지난 2016년 이후 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라가르드 총재는 유럽의회에서 “유로존 내에서의 경제활동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전력요금 인하와 유로화 강세, 독일에서의 한시적인 부가가치세(VAT) 인하 등이 물가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습니다. 1999년부터 현재까지의 유로존 헤드라인 소비자물가와 근원 물가 상승률 추이. 최근 두 물가는 2009년과 2014년, 2016년 수준의 하락세로 가고 있다.그의 말대로 최근 8~9월 이례적인 유로존 물가 하락에는 일시적인 요인이 크게 영향을 준 것이 사실입니다. 자동차 등 내구재 판매 위축으로 인해 독일 정부는 한시적으로 부가가치세를 낮췄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명품 판매가 많은 국가들은 여름휴가철을 맞아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단행했습니다. 이런 요인이 사라지는 10월부터는 물가가 다소 높아질 여지가 있어 보이긴 합니다.그러나 현재 ECB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광범위한 디플레이션 압력이 서비스업 전반에서의 물가 하락을 가져오고 있는 대목입니다. 실제 9월 유로존 서비스업 물가는 전년동월대비 0.5%나 하락했습니다. 코로나19가 급작스럽게 창궐했던 지난 2월에 기록한 -1.6% 이후 최악이었습니다. 관광산업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에서 항공료나 호텔 숙박비, 단체여행 비용 등이 줄줄이 내려가고 병원산업까지 침체로 가자 디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는 겁니다. 물론 일부 지역에서의 서비스업 물가가 다소 반등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최근 들어 유로존에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다시 증가하면서 몇몇 국가에서 다시 봉쇄령(락다운)이 내려지고 있는 만큼 우려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유로존에서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재차 V자형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특히 유로존에서의 디플레이션이 우려스러운 건 부채 디플레이션(debt deflation)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1930년대 미국 경제학자인 어빙 피셔가 미국 대공황을 설명하면서 구축한 이 이론에 따르면 부채가 많은 국가들이 디플레이션으로부터 더 큰 위험에 놓이게 된다는 겁니다. 디플레이션으로 물가가 하락하고 실질금리가 상승하면 채무 상환에 부담을 느낀 가계나 기업이 보유자산을 서둘러 매각하면서 자산가치가 떨어지고, 향후 비용이 더 낮아질 것을 염두에 둔 기업도 대출과 투자를 줄이게 되기 때문에 경제 침체도 장기화한다는 것이죠. 정부 측면에서도 세수가 줄어들고 부채를 일으킬 여건이 악화되면서 재정지출을 늘리기 어려워집니다. 지난 유로존 재정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대표되는 남유럽 국가들이 문제입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국가부채가 높고 금융시스템도 취약합니다. 디플레이션과 부채 디플레이션에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코로나19 재유행이 없다고 해도 올해 GDP가 -12.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 두 나라의 GDP대비 국가부채는 각각 120%, 150%에 이를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이렇다 보니 이제 ECB에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이라는 두 가지 정책목표(dual mandate)를 가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달리 ECB는 `중기적 물가 안정`이라는 하나의 통화정책 목표를 가지고 있다 보니 이같은 디플레이션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되는 것이죠. ECB의 정책목표인 중기적 물가 안정에서 `중기적`이라는 표현에는 구체적인 기간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물가 안정`에 대해서도 구체적 수치가 제공되진 않습니다만, ECB는 이에 대해 “2%에 근접하지만 그보다는 높지 않은 수준” 정도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현재 ECB 실무진은 올해 근원 인플레이션이 1.0%, 내년에 1.1%, 2022년에 1.3% 정도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결국 현재의 디플레이션 국면은 물론이고 2년 후까지 개선되지 않을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ECB는 보다 적극적인 통화부양정책에 나서야 할 상황입니다. 특히 최근 유로화 강세가 물가 하락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ECB도 인정하고 있는 만큼 통화부양으로 총수요를 높이는 한편 유로화 가치를 낮춰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단, 이런 조치가 유로존 은행들에게 더 큰 부담이 된다는 점이 변수입니다. 마이너스 금리로 인해 이미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고 코로나19 이후 늘어나는 부실여신(NPL)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은행들에게 악영향이 크지 않은 정책수단을 골라야 한다는 얘기죠. 그렇다면 최근에 있었던 ECB 고위 관계자들의 발언을 통해 향후 ECB가 취할 정책을 미리 전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인플레이션 목표가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2%에 근접하되 그보다 높지 않은 수준`이라는 게 덜 구체적이라는 것이죠. 라가르드 총재는 며칠 전 ECB 워처스 컨퍼런스에서 추가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유로존은 대중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더 잘 반영하는 방식으로 산출되는 인플레이션 목표를 가질 필요가 있다”며 물가 목표 변경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특히 라가르드 총재는 이 과정에서 연준이 최근 채택한 평균물가목표제(AIT)를 차용할 수 있다는 점도 시사했습니다. 그는 “신뢰할 수만 있자면 연준의 전략(=AIT)은 하한선에 근접한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도록 하는 통화정책 능력을 강화시켜줄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또 “`중기적 물가 안정`에서 `중기적`이라는 정의를 유연하게 함으로써 일시적 경제 충격 하에서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펴서 불필요하게 일자리와 경제 성장을 억누르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기적`이라는 기간을 길게 봐서 일시적인 인플레이션 상승을 감내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ECB의 대차대조표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올들어서는 기존 APP를 줄이면서 PEPP를 통해 자산 매입 규모를 늘리고 있다.다음으로는 ECB의 대차대조표를 더 확대하는 추가 자산매입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ECB는 이미 1조3500억유로 규모로 내년 6월까지 실행하기로 한 팬더믹긴급자산매입프로그램(PEPP)를 더 연장하고 더 확대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시기는 12월 정도로 점쳐집니다. 최근 물가 하락과 코로나19 재유행을 감안해 ECB 실무진이 경제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시기가 그 즈음이기 떄문입니다. ECB 통화정책회의는 연내에 10월29일과 12월10일 두 차례 더 남아 있습니다.루이 데 귄도스 ECB 부총재는 이번주 한 강연에서 “우리는 아직도 실탄이 소진되지 않았다”며 “만약 필요하다면 PEPP를 추가로 조정(=연장 또는 확대)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는 당장 조치를 취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ECB는 PEPP를 처음 도입하면서 매주 200억유로 이상씩 자산을 매입하다 6월부터 그 규모를 줄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재유행과 경제지표 부진이 이어지자 지난주 160억유로로 매입규모를 늘렸고, 아직 7900억유로가 남아있어 내년 6월말까지 매주 200억유로씩 자산을 더 살 수 있습니다.끝으로 기준금리는 추가로 인하하지 않는 대신에 목표물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 III)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우리 정책수단들은 상호 보완적입니다. 마이너스 금리와 TLTRO를 보면 TLTRO 금리를 낮춤으로써 실제 마이너스 금리로 은행들에게 신용(대출)을 공급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은행 수익성을 악화시키지 않으면서도 시중에 대출을 늘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ECB가 앞으로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인플레이션 목표 변경과 연준 방식을 차용한 평균물가목표제 도입, PEPP 추가 확대, TLTRO III 규모 확대 등인데요. 지금으로써는 어느 수단을 먼저 꺼낼 지 짐작하긴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과거에도 ECB의 주요한 정책 변화를 발표했던 ECB 연례 경제정책컨퍼런스에서 라가르드 총재가 결정적 힌트를 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매년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개최되는 ECB 연례 경제정책컨퍼런스는 올해는 11월 11~12일 양일 간 열립니다.
    이정훈 기자 2020.10.03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서의 디플레이션은 앞으로 몇 개월 간 더 이어질 것 같습니다.”지난주 유럽의회 금융위원회에 출석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이처럼 우려섞인 발언을 내놨습니다. “앞서 6월에 조금 더 높았던 디플레이션 리스크가 9월에는 후퇴할 것”이라고 했던 자신의 발언을 2주 만에 뒤집은 겁니다.디플레이션에 대한 라가르드 총재의 인식이 이렇게 바뀐 건 얼마 전에 유로스타트가 공개한 9월 소비자물가지수 통계 때문인데요. 이에 따르면 지난 9월 유로존의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대비 0.3% 하락했습니다. 이는 앞선 8월의 -0.2%보다 더 확대된 겁니다. 이는 에너지 가격이 8.2%나 하락한 영향이 컸습니다. 그러나 우려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음식료부문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도 9월에 전년동월대비 0.2% 하락한 것인데요. 이는 8월의 -0.4%에 비해 하락폭이 다소 줄긴 했지만, 유로존 근원 물가가 두 달 연속으로 마이너스(-)를 보인 건 지난 2016년 이후 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라가르드 총재는 유럽의회에서 “유로존 내에서의 경제활동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전력요금 인하와 유로화 강세, 독일에서의 한시적인 부가가치세(VAT) 인하 등이 물가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습니다. 1999년부터 현재까지의 유로존 헤드라인 소비자물가와 근원 물가 상승률 추이. 최근 두 물가는 2009년과 2014년, 2016년 수준의 하락세로 가고 있다.그의 말대로 최근 8~9월 이례적인 유로존 물가 하락에는 일시적인 요인이 크게 영향을 준 것이 사실입니다. 자동차 등 내구재 판매 위축으로 인해 독일 정부는 한시적으로 부가가치세를 낮췄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명품 판매가 많은 국가들은 여름휴가철을 맞아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단행했습니다. 이런 요인이 사라지는 10월부터는 물가가 다소 높아질 여지가 있어 보이긴 합니다.그러나 현재 ECB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광범위한 디플레이션 압력이 서비스업 전반에서의 물가 하락을 가져오고 있는 대목입니다. 실제 9월 유로존 서비스업 물가는 전년동월대비 0.5%나 하락했습니다. 코로나19가 급작스럽게 창궐했던 지난 2월에 기록한 -1.6% 이후 최악이었습니다. 관광산업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에서 항공료나 호텔 숙박비, 단체여행 비용 등이 줄줄이 내려가고 병원산업까지 침체로 가자 디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는 겁니다. 물론 일부 지역에서의 서비스업 물가가 다소 반등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최근 들어 유로존에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다시 증가하면서 몇몇 국가에서 다시 봉쇄령(락다운)이 내려지고 있는 만큼 우려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유로존에서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재차 V자형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특히 유로존에서의 디플레이션이 우려스러운 건 부채 디플레이션(debt deflation)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1930년대 미국 경제학자인 어빙 피셔가 미국 대공황을 설명하면서 구축한 이 이론에 따르면 부채가 많은 국가들이 디플레이션으로부터 더 큰 위험에 놓이게 된다는 겁니다. 디플레이션으로 물가가 하락하고 실질금리가 상승하면 채무 상환에 부담을 느낀 가계나 기업이 보유자산을 서둘러 매각하면서 자산가치가 떨어지고, 향후 비용이 더 낮아질 것을 염두에 둔 기업도 대출과 투자를 줄이게 되기 때문에 경제 침체도 장기화한다는 것이죠. 정부 측면에서도 세수가 줄어들고 부채를 일으킬 여건이 악화되면서 재정지출을 늘리기 어려워집니다. 지난 유로존 재정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대표되는 남유럽 국가들이 문제입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국가부채가 높고 금융시스템도 취약합니다. 디플레이션과 부채 디플레이션에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코로나19 재유행이 없다고 해도 올해 GDP가 -12.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 두 나라의 GDP대비 국가부채는 각각 120%, 150%에 이를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이렇다 보니 이제 ECB에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이라는 두 가지 정책목표(dual mandate)를 가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달리 ECB는 `중기적 물가 안정`이라는 하나의 통화정책 목표를 가지고 있다 보니 이같은 디플레이션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되는 것이죠. ECB의 정책목표인 중기적 물가 안정에서 `중기적`이라는 표현에는 구체적인 기간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물가 안정`에 대해서도 구체적 수치가 제공되진 않습니다만, ECB는 이에 대해 “2%에 근접하지만 그보다는 높지 않은 수준” 정도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현재 ECB 실무진은 올해 근원 인플레이션이 1.0%, 내년에 1.1%, 2022년에 1.3% 정도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결국 현재의 디플레이션 국면은 물론이고 2년 후까지 개선되지 않을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ECB는 보다 적극적인 통화부양정책에 나서야 할 상황입니다. 특히 최근 유로화 강세가 물가 하락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ECB도 인정하고 있는 만큼 통화부양으로 총수요를 높이는 한편 유로화 가치를 낮춰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단, 이런 조치가 유로존 은행들에게 더 큰 부담이 된다는 점이 변수입니다. 마이너스 금리로 인해 이미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고 코로나19 이후 늘어나는 부실여신(NPL)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은행들에게 악영향이 크지 않은 정책수단을 골라야 한다는 얘기죠. 그렇다면 최근에 있었던 ECB 고위 관계자들의 발언을 통해 향후 ECB가 취할 정책을 미리 전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인플레이션 목표가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2%에 근접하되 그보다 높지 않은 수준`이라는 게 덜 구체적이라는 것이죠. 라가르드 총재는 며칠 전 ECB 워처스 컨퍼런스에서 추가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유로존은 대중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더 잘 반영하는 방식으로 산출되는 인플레이션 목표를 가질 필요가 있다”며 물가 목표 변경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특히 라가르드 총재는 이 과정에서 연준이 최근 채택한 평균물가목표제(AIT)를 차용할 수 있다는 점도 시사했습니다. 그는 “신뢰할 수만 있자면 연준의 전략(=AIT)은 하한선에 근접한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도록 하는 통화정책 능력을 강화시켜줄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또 “`중기적 물가 안정`에서 `중기적`이라는 정의를 유연하게 함으로써 일시적 경제 충격 하에서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펴서 불필요하게 일자리와 경제 성장을 억누르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기적`이라는 기간을 길게 봐서 일시적인 인플레이션 상승을 감내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ECB의 대차대조표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올들어서는 기존 APP를 줄이면서 PEPP를 통해 자산 매입 규모를 늘리고 있다.다음으로는 ECB의 대차대조표를 더 확대하는 추가 자산매입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ECB는 이미 1조3500억유로 규모로 내년 6월까지 실행하기로 한 팬더믹긴급자산매입프로그램(PEPP)를 더 연장하고 더 확대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시기는 12월 정도로 점쳐집니다. 최근 물가 하락과 코로나19 재유행을 감안해 ECB 실무진이 경제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시기가 그 즈음이기 떄문입니다. ECB 통화정책회의는 연내에 10월29일과 12월10일 두 차례 더 남아 있습니다.루이 데 귄도스 ECB 부총재는 이번주 한 강연에서 “우리는 아직도 실탄이 소진되지 않았다”며 “만약 필요하다면 PEPP를 추가로 조정(=연장 또는 확대)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는 당장 조치를 취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ECB는 PEPP를 처음 도입하면서 매주 200억유로 이상씩 자산을 매입하다 6월부터 그 규모를 줄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재유행과 경제지표 부진이 이어지자 지난주 160억유로로 매입규모를 늘렸고, 아직 7900억유로가 남아있어 내년 6월말까지 매주 200억유로씩 자산을 더 살 수 있습니다.끝으로 기준금리는 추가로 인하하지 않는 대신에 목표물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 III)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우리 정책수단들은 상호 보완적입니다. 마이너스 금리와 TLTRO를 보면 TLTRO 금리를 낮춤으로써 실제 마이너스 금리로 은행들에게 신용(대출)을 공급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은행 수익성을 악화시키지 않으면서도 시중에 대출을 늘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ECB가 앞으로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인플레이션 목표 변경과 연준 방식을 차용한 평균물가목표제 도입, PEPP 추가 확대, TLTRO III 규모 확대 등인데요. 지금으로써는 어느 수단을 먼저 꺼낼 지 짐작하긴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과거에도 ECB의 주요한 정책 변화를 발표했던 ECB 연례 경제정책컨퍼런스에서 라가르드 총재가 결정적 힌트를 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매년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개최되는 ECB 연례 경제정책컨퍼런스는 올해는 11월 11~12일 양일 간 열립니다.
  • [이정훈의 마켓워치]<30>첫 TV토론, 미국 대선 판도 어떻게
    11월3일 대선에서 맞붙는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TV 토론 자체로 주식시장이 즉각 어떠한 반응을 보이진 않겠지만, 토론 이후에 나올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시장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통상 토론에서 이긴 후보 쪽이 2%포인트 정도의 지지율을 갖고 간다는 경험칙이 있다 보니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더 벌어지거나 좁혀질 수 있습니다.”리버프런트 인베스트먼트그룹에서 선임 시장 전략가로 활약하고 있는 레베카 펠턴은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전망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내 여러 기관들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평균 7%포인트 정도 앞서고 있습니다. 만약 첫 토론에서 바이든이 지지율 2%포인트를 가져간다면 트럼프 측에 10%포인트 가까이 앞설 수 있구요. 반면 트럼프가 우세하다면 양 측 간 격차는 5%포인트 안쪽으로 좁혀질 수 있다는 얘깁니다.미국 현지시간으로 29일부터 시작되는 올 대통령선거 TV 토론은 예년보다 적은 단 세 차례만 치러지는데다 코로나19로 인해 현장 유세가 불가능하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 중요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특히 오랜 방송 출연 경험으로 인해 무대에 강한 체질인 트럼프 현 대통령으로서는 이번 토론이 상대적으로 열세인 대선 판세를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밖에 없습니다.일단 전국 지지율에서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에게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제 미국 대선은 휠씬 더 복잡해서 전국 지지율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선 지난 2016년 대선만 봐도 그랬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트럼프 현 대통령보다 전국에서 300만표 가까이 더 많은 표를 얻었지만 실제 선거인단에서는 트럼프가 우위를 점해 백악관의 주인이 됐습니다.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경합주)에서의 승리 덕이었습니다. 현재 스윙 스테이트에서의 지지율을 보면 바이든이 앞서 있긴 해도 트럼프와의 격차는 전국 지지율 격차에 비해 훨씬 더 좁혀져 있습니다.바이든과 트럼프 후보 간 전국 지지율 격차에 비해 스윙 스테이트에서의 지지율 격차는 훨씬 더 적은 편이다.미국 내에서 대중적 지명도가 높은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와 같은 모델에서는 바이든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확률을 거의 80%로 점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선까지는 여전히 한 달 이상 남아 있고 그 사이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다 보니 현재 민간 베팅사이트에서는 바이든 후보의 승리 확률을 54% 정도로 보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아울러 대선 외에도 상원 투표 판세도 중요합니다. 의회의 지지가 없을 경우 대통령은 여러 이슈에서 손발이 묶일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실제 지난 2018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에서의 다수당 지위를 빼앗긴 후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후반부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상원이 어느 당에게 넘어갈지는 아직 불투명하긴 합니다. 각 주는 100석의 상원에서 두 석씩을 나눠 가지는데요. 올해 투표에서는 총 100석 중 35석에 이르는 상원의원을 새로 뽑게 됩니다. 현재 공화당은 상원에서 53대 47로 6석의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이번 투표에서 새로 선출되는 35석 중 23석은 현재 공화당이 차지하고 있고 12석은 민주당 차지인 만큼 다수당을 유지하기 위해 공화당이 의석 수를 지켜야 할 부담이 훨씬 더 큰 상황입니다.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에 이어 상원까지 다수당이 될 확률이 가장 높게 점쳐지고 있다.현재 민간 전망기관인 리얼클리어폴리틱스(RealClearPolitics)는 이번 선거 이후 민주당이 최소 46석을 확실히 확보할 것이고 공화당도 동일한 46석을 확보할 것으로 점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8석을 어떤 당이 가져가느냐가 관건인데, 민간 베팅사이트에 따르면 민주당이 다수당이 될 확률이 55% 정도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결국 백악관의 주인이 누가 되느냐와 상원 다수당을 어느 쪽이 차지하느냐에 따라 시나리오는 크게 3가지로 나눠 볼 수 있겠습니다. 전망기관들이 가장 높은 40% 정도의 확률로 점치는 시나리오는 바이든이 대선에서 승리하고 민주당이 상원에서도 다수당이 되는 쪽입니다. 이 경우 바이든과 민주당은 내년 초 대규모 재정부양 패키지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렇게 풀리는 재정지출은 주택시장과 사회 안전망, 헬스케어 등에서의 투자 확대에 집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이렇게 늘어나는 재정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인하했던 법인세율과 소득세율 등을 줄줄이 다시 인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 같은 세율 인상은 주식시장에 일부 압박요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세율 인상이 주로 고소득층을 타깃으로 이뤄진다고 해도 법인세율과 배당 및 자본소득세율 인상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증시 타격은 불가피합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재정부양책으로 인해 세율 인상에 따른 충격은 어느 정도 상쇄될 수 있겠습니다. 무역정책에 있어서 바이든과 민주당은 중국에 대한 강경노선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유럽에 대한 압박은 완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과의 대결을 위해 유럽연합(EU)과의 관계를 복원하고, 이런 공조를 통해 중국에 맞설 것으로 보입니다. 외교정책에 있어서는 바이든이 트럼프에 비해 훨씬 예측 가능한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렇다 보니 바이든이 대통령이 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 시절보다는 더 안정적인 글로벌 교역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보이며 이는 달러화 공급 확대에 따른 달러화 약세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시장금리는 큰 영향이 없겠지만,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재정부양으로 인해 장기금리가 올라가며 채권수익률 곡선이 가팔라질 수 있습니다. 반면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하고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을 유지할 가능성은 30% 정도로 점쳐지는데요. 트럼프가 연임한다면 추가적인 세금 경감과 규제 완화에 치중하겠지만, 법인세율 등은 이미 낮아질 만큼 낮아져 있고 추가 규제 완화 여력도 크지 않을 겁니다. 더구나 하원에서 다수당을 점하고 있는 민주당이 계속 발목을 잡을 수 있구요. 재정정책에서는 지금처럼 추가 부양에는 다소 소극적일 수 있습니다. 결국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불확실성 해소로 인해 초기에는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가 되살아 날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인 수혜는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오히려 미국 내에서 민주당의 훼방으로 인해 취할 수 있는 정책에 한계가 있다 보니 대외정책이나 무역정책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중국 등과의 무역분쟁을 더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예측 불가능성으로 인해 위험자산 선호가 제한될 것이고, 글로벌 교역 회복도 제한되면서 달러화는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끝으로 바이든이 백악관의 주인이 되면서 공화당이 상원에서 다수당을 유지하는 가능성이 20% 정도로 가장 낮은데요. 이 경우 제한적인 추가 재정부양책에 합의할 가능성이 있지만 세율 인상이나 추가 재정지출 확대 등은 상원 내 공화당에 막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하는 만큼 대선을 앞둔 불확실성으로 인해 과거에도 대선 직전 10월부터 뉴욕증시는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여 왔습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10월부터 뉴욕증시는 과거보다 더 부진할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그동안 대선 전 조정을 받은 증시는 대선 이후 불확실성이 걷히면서 반등하곤 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뉴욕증시는 늘 대선 투표가 있는 날 저녁이 되면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연방대법원이 플로리다주에서의 재검표 중단 결정을 내리기까지 무려 한 달이나 걸렸던 지난 2000년 대선에서도 앨 고어 후보는 투표 당일 저녁에 선거에서의 패배를 사실상 받아 들였습니다. 반면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에서 패할 경우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시장에 큰 불확실성이 될 겁니다.1960년 이후 미국 대선을 보면 선거 전에 S&P500지수가 조정을 보이다 선거 이후 재차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특히 초기 개표에서 우위를 점할 경우 그동안 우편투표의 신뢰성을 심하게 깎아 내렸던 트럼프로서는 결과에 불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투표용지가 든 우편물은 선거 당일 날 저녁이나 밤 늦게 도착해 주로 후반부에 개표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6년 대선에서는 총 투표의 4분의1 정도가 우편투표에 의해 이뤄졌는데요, 올해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그 비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투표가 접전으로 갈수록 트럼프가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은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사후에 공석인 대법관 자리에 보수 성향의 코니 배럿을 앉히려고 하면서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 악감정이 쌓이고 있다는 점도 변수입니다. 앞서 지난 2016년 당시 상원을 장악하고 있던 공화당은 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선임한 대법관에 대한 표결을 거부했었는데요. 그랬던 공화당이 패스트트랙 절차까지 이용해 대선 이전에 배럿 대법관 후보자 지명을 강행 처리하려 하고 있습니다.이에 맞서 민주당은 공화당이 배럿 대법관의 지명을 강행할 경우 대선 이후 어떠한 협상에도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주요 법안들이 처리하기 위해서는 상원에서 적어도 60석 이상을 확보해야 하는데, 지금도 53석에 불과한 공화당 입장에서는 민주당 협조 없이는 어떤 법안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죠. 더구나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상원 내 다수당을 점할 경우 단순 과반만 되도 주요 법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규정 변경을 추진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렇게 되면 바이든이 승리하지 않아도 상원 다수당만 확보하면 민주당은 사실상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쥘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민주당이 상원에서 다수당을 점하게 된다면 트럼프보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는 게 증시에는 더 유리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최근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미국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최고운영책임자(COO) 5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이 중 70%가 “코로나19로 인해 늘어난 정부 지출로 인해 누가 대선에서 승리하든지 법인세율이 인상될 것”이라고 답했다고도 합니다. 미국인들이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비율이 최근 크게 높아지고 있다.또 하나 관심을 끄는 정책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무역정책인데요. 이 역시 누가 대선에서 이기든 미·중 관계는 현 상황을 유지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실제 퓨리서치센터가 올 3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미국인들의 73%가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적극적인 대중국정책에 대해서도 초당적인 지지를 보였구요. 이렇다 보니 바이든이 대선에서 승리해도 현재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유지하면서 중국 기업에 대한 규제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다만 두 나라 관계에 다소 변화가 올 순 있습니다. 바이든은 트럼프에 비해 더 예측 가능하고 중국에 대한 자세에 일관성을 가지고 있으니 지금까지와는 달리 불확실성의 수위가 낮아질 수 있습니다. 이는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뜻이구요. 아울러 바이든은 실용적이라 유럽을 활용하는 전략으로 중국을 압박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냉랭했던 폰 데 라이언 EU 집행위원장이 최근 미국과의 공조에 높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는 부분도 바이든을 염두에 둔 행보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이정훈 기자 2020.09.29
    11월3일 대선에서 맞붙는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TV 토론 자체로 주식시장이 즉각 어떠한 반응을 보이진 않겠지만, 토론 이후에 나올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시장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통상 토론에서 이긴 후보 쪽이 2%포인트 정도의 지지율을 갖고 간다는 경험칙이 있다 보니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더 벌어지거나 좁혀질 수 있습니다.”리버프런트 인베스트먼트그룹에서 선임 시장 전략가로 활약하고 있는 레베카 펠턴은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전망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내 여러 기관들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평균 7%포인트 정도 앞서고 있습니다. 만약 첫 토론에서 바이든이 지지율 2%포인트를 가져간다면 트럼프 측에 10%포인트 가까이 앞설 수 있구요. 반면 트럼프가 우세하다면 양 측 간 격차는 5%포인트 안쪽으로 좁혀질 수 있다는 얘깁니다.미국 현지시간으로 29일부터 시작되는 올 대통령선거 TV 토론은 예년보다 적은 단 세 차례만 치러지는데다 코로나19로 인해 현장 유세가 불가능하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 중요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특히 오랜 방송 출연 경험으로 인해 무대에 강한 체질인 트럼프 현 대통령으로서는 이번 토론이 상대적으로 열세인 대선 판세를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밖에 없습니다.일단 전국 지지율에서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에게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제 미국 대선은 휠씬 더 복잡해서 전국 지지율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선 지난 2016년 대선만 봐도 그랬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트럼프 현 대통령보다 전국에서 300만표 가까이 더 많은 표를 얻었지만 실제 선거인단에서는 트럼프가 우위를 점해 백악관의 주인이 됐습니다.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경합주)에서의 승리 덕이었습니다. 현재 스윙 스테이트에서의 지지율을 보면 바이든이 앞서 있긴 해도 트럼프와의 격차는 전국 지지율 격차에 비해 훨씬 더 좁혀져 있습니다.바이든과 트럼프 후보 간 전국 지지율 격차에 비해 스윙 스테이트에서의 지지율 격차는 훨씬 더 적은 편이다.미국 내에서 대중적 지명도가 높은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와 같은 모델에서는 바이든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확률을 거의 80%로 점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선까지는 여전히 한 달 이상 남아 있고 그 사이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다 보니 현재 민간 베팅사이트에서는 바이든 후보의 승리 확률을 54% 정도로 보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아울러 대선 외에도 상원 투표 판세도 중요합니다. 의회의 지지가 없을 경우 대통령은 여러 이슈에서 손발이 묶일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실제 지난 2018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에서의 다수당 지위를 빼앗긴 후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후반부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상원이 어느 당에게 넘어갈지는 아직 불투명하긴 합니다. 각 주는 100석의 상원에서 두 석씩을 나눠 가지는데요. 올해 투표에서는 총 100석 중 35석에 이르는 상원의원을 새로 뽑게 됩니다. 현재 공화당은 상원에서 53대 47로 6석의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이번 투표에서 새로 선출되는 35석 중 23석은 현재 공화당이 차지하고 있고 12석은 민주당 차지인 만큼 다수당을 유지하기 위해 공화당이 의석 수를 지켜야 할 부담이 훨씬 더 큰 상황입니다.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에 이어 상원까지 다수당이 될 확률이 가장 높게 점쳐지고 있다.현재 민간 전망기관인 리얼클리어폴리틱스(RealClearPolitics)는 이번 선거 이후 민주당이 최소 46석을 확실히 확보할 것이고 공화당도 동일한 46석을 확보할 것으로 점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8석을 어떤 당이 가져가느냐가 관건인데, 민간 베팅사이트에 따르면 민주당이 다수당이 될 확률이 55% 정도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결국 백악관의 주인이 누가 되느냐와 상원 다수당을 어느 쪽이 차지하느냐에 따라 시나리오는 크게 3가지로 나눠 볼 수 있겠습니다. 전망기관들이 가장 높은 40% 정도의 확률로 점치는 시나리오는 바이든이 대선에서 승리하고 민주당이 상원에서도 다수당이 되는 쪽입니다. 이 경우 바이든과 민주당은 내년 초 대규모 재정부양 패키지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렇게 풀리는 재정지출은 주택시장과 사회 안전망, 헬스케어 등에서의 투자 확대에 집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이렇게 늘어나는 재정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인하했던 법인세율과 소득세율 등을 줄줄이 다시 인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 같은 세율 인상은 주식시장에 일부 압박요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세율 인상이 주로 고소득층을 타깃으로 이뤄진다고 해도 법인세율과 배당 및 자본소득세율 인상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증시 타격은 불가피합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재정부양책으로 인해 세율 인상에 따른 충격은 어느 정도 상쇄될 수 있겠습니다. 무역정책에 있어서 바이든과 민주당은 중국에 대한 강경노선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유럽에 대한 압박은 완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과의 대결을 위해 유럽연합(EU)과의 관계를 복원하고, 이런 공조를 통해 중국에 맞설 것으로 보입니다. 외교정책에 있어서는 바이든이 트럼프에 비해 훨씬 예측 가능한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렇다 보니 바이든이 대통령이 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 시절보다는 더 안정적인 글로벌 교역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보이며 이는 달러화 공급 확대에 따른 달러화 약세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시장금리는 큰 영향이 없겠지만,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재정부양으로 인해 장기금리가 올라가며 채권수익률 곡선이 가팔라질 수 있습니다. 반면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하고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을 유지할 가능성은 30% 정도로 점쳐지는데요. 트럼프가 연임한다면 추가적인 세금 경감과 규제 완화에 치중하겠지만, 법인세율 등은 이미 낮아질 만큼 낮아져 있고 추가 규제 완화 여력도 크지 않을 겁니다. 더구나 하원에서 다수당을 점하고 있는 민주당이 계속 발목을 잡을 수 있구요. 재정정책에서는 지금처럼 추가 부양에는 다소 소극적일 수 있습니다. 결국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불확실성 해소로 인해 초기에는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가 되살아 날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인 수혜는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오히려 미국 내에서 민주당의 훼방으로 인해 취할 수 있는 정책에 한계가 있다 보니 대외정책이나 무역정책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중국 등과의 무역분쟁을 더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예측 불가능성으로 인해 위험자산 선호가 제한될 것이고, 글로벌 교역 회복도 제한되면서 달러화는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끝으로 바이든이 백악관의 주인이 되면서 공화당이 상원에서 다수당을 유지하는 가능성이 20% 정도로 가장 낮은데요. 이 경우 제한적인 추가 재정부양책에 합의할 가능성이 있지만 세율 인상이나 추가 재정지출 확대 등은 상원 내 공화당에 막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하는 만큼 대선을 앞둔 불확실성으로 인해 과거에도 대선 직전 10월부터 뉴욕증시는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여 왔습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10월부터 뉴욕증시는 과거보다 더 부진할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그동안 대선 전 조정을 받은 증시는 대선 이후 불확실성이 걷히면서 반등하곤 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뉴욕증시는 늘 대선 투표가 있는 날 저녁이 되면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연방대법원이 플로리다주에서의 재검표 중단 결정을 내리기까지 무려 한 달이나 걸렸던 지난 2000년 대선에서도 앨 고어 후보는 투표 당일 저녁에 선거에서의 패배를 사실상 받아 들였습니다. 반면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에서 패할 경우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시장에 큰 불확실성이 될 겁니다.1960년 이후 미국 대선을 보면 선거 전에 S&P500지수가 조정을 보이다 선거 이후 재차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특히 초기 개표에서 우위를 점할 경우 그동안 우편투표의 신뢰성을 심하게 깎아 내렸던 트럼프로서는 결과에 불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투표용지가 든 우편물은 선거 당일 날 저녁이나 밤 늦게 도착해 주로 후반부에 개표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6년 대선에서는 총 투표의 4분의1 정도가 우편투표에 의해 이뤄졌는데요, 올해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그 비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투표가 접전으로 갈수록 트럼프가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은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사후에 공석인 대법관 자리에 보수 성향의 코니 배럿을 앉히려고 하면서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 악감정이 쌓이고 있다는 점도 변수입니다. 앞서 지난 2016년 당시 상원을 장악하고 있던 공화당은 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선임한 대법관에 대한 표결을 거부했었는데요. 그랬던 공화당이 패스트트랙 절차까지 이용해 대선 이전에 배럿 대법관 후보자 지명을 강행 처리하려 하고 있습니다.이에 맞서 민주당은 공화당이 배럿 대법관의 지명을 강행할 경우 대선 이후 어떠한 협상에도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주요 법안들이 처리하기 위해서는 상원에서 적어도 60석 이상을 확보해야 하는데, 지금도 53석에 불과한 공화당 입장에서는 민주당 협조 없이는 어떤 법안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죠. 더구나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상원 내 다수당을 점할 경우 단순 과반만 되도 주요 법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규정 변경을 추진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렇게 되면 바이든이 승리하지 않아도 상원 다수당만 확보하면 민주당은 사실상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쥘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민주당이 상원에서 다수당을 점하게 된다면 트럼프보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는 게 증시에는 더 유리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최근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미국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최고운영책임자(COO) 5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이 중 70%가 “코로나19로 인해 늘어난 정부 지출로 인해 누가 대선에서 승리하든지 법인세율이 인상될 것”이라고 답했다고도 합니다. 미국인들이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비율이 최근 크게 높아지고 있다.또 하나 관심을 끄는 정책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무역정책인데요. 이 역시 누가 대선에서 이기든 미·중 관계는 현 상황을 유지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실제 퓨리서치센터가 올 3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미국인들의 73%가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적극적인 대중국정책에 대해서도 초당적인 지지를 보였구요. 이렇다 보니 바이든이 대선에서 승리해도 현재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유지하면서 중국 기업에 대한 규제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다만 두 나라 관계에 다소 변화가 올 순 있습니다. 바이든은 트럼프에 비해 더 예측 가능하고 중국에 대한 자세에 일관성을 가지고 있으니 지금까지와는 달리 불확실성의 수위가 낮아질 수 있습니다. 이는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뜻이구요. 아울러 바이든은 실용적이라 유럽을 활용하는 전략으로 중국을 압박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냉랭했던 폰 데 라이언 EU 집행위원장이 최근 미국과의 공조에 높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는 부분도 바이든을 염두에 둔 행보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 [이정훈의 마켓워치]<29>`닥터코퍼` 오작동? 구리값은 왜 뛸까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원소기호 `Cu`인 구리(Copper)는 경제학 박사 학위(Ph.D. in economics)를 가진 금속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리를 굳이 `닥터 코퍼(Dr. Copper)`라고 부르죠. 그런데 인간도 따기 힘든 경제학 박사 학위를 대체 구리는 어떻게 갖게 된 걸까요. 무르고 전성과 연성이 있으며 열과 전기 전도성이 뛰어난 구리는 전기와 열을 잘 전달하는 도체라 전선이나 난방용 배관으로 이용되는 것은 물론 건축과 금속합금, 선박 등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중요한 산업용 재료입니다. 실제 구리개발협회(CDA)에 따르면 전체 구리 중 65%가 전기분야, 25%는 산업분야, 나머지 10%가 운송과 그 외 분야에 각각 쓰입니다. 이렇다 보니 구리값은 향후 경기 사이클을 진단해주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로 꼽히며, 이것이 바로 구리에게 박사 학위를 씌워준 계기가 된 겁니다. 실제 ABN암로가 지난 2014년 구리값과 글로벌 경제활동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봤더니 미국과 유럽, 중국에서의 지역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구리값과 매우 강한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 이를 테면 구리를 사겠다는 주문이 줄거나 취소가 는다면 가격이 떨어지죠. 그리곤 이 구리값 하락은 경기가 침체국면으로 가고 있다는 걸 말해 줍니다. 반대로 구리 주문이 늘고 가격이 덩달아 상승한다면 이는 경기가 탄탄해지고 산업에서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산업적 측면에서 본다면 구리의 가장 큰 수요처는 전기 추진체와 각종 의료기기, 신재생에너지 시스템, 초전도 나노탄소 등 신성장산업이고, 또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등지의 인프라산업입니다. 그래서 구리의 수요는 신산업이든 전통산업이든 글로벌 경제 성장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겁니다. 또 구리값 역시 글로벌 경제 성장이나 성장 기대에 따라 변하게 됩니다.코로나19 팬데믹으로 추락했던 구리값이 거침없는 회복세를 보이며 파운드당 3달러를 넘어서고 있다.그렇다면 올 들어,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전 세계적 대유행) 이후 구리값은 어떤 흐름을 보이고 있을까요.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급격히 위축된 경제활동의 복원력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 우리 앞에 놓인 길을 이 `닥터 코퍼`에게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합니다.지난 2018년 여름 파운드당 3.3달러까지 치솟았던 구리값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긴축정책 앞에 힘을 쓰지 못한 채 하락세를 이어갔고, 작년 하반기에 다소 반등했어도 올 초를 2.8달러 정도에서 출발했었습니다. 그러나 연초부터 코로나19가 중국과 동아시아, 유럽 등지를 넘어 미국까지 덮치자 구리값은 급전직하 하고 말았습니다.연준이 무제한 양적완화를 발표했던 지난 3월23일 연저점인 2.17달러를 찍었죠. 그리고 그 나흘 뒤인 3월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총 2조달러 규모의 코로나19 재정부양 패키지법(CARES Act)에 서명하자 현재 3.06달러까지 올랐습니다. 단순히 V자형이 아닌, 폭이 아주 좁은 V자형 회복으로, 현재 구리값은 지난 2018년 6월 이후 2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최근 구리값이 금에 비해 더 큰 폭으로 오르고 있고, 그로 인해 미 국채 금리와도 다소 디커플링 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이렇게 구리값 상승이 빠르게 나타났다는 것 뿐 아니라 여기서 주목할 대목이 하나 더 나오는데요. 구리는 여러 산업에 활용되는 필수재라는 점에서 위험자산 선호를 반영하고 있구요. 그래서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광물이라는 점입니다. 자연스럽게 둘 중 어느 쪽 가격이 더 쎈지 보면 현재의 경기나 시장 내 위험자산 선호 정도를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또한 금값대비 구리값 비율을 구하면 그 값이 미 국채금리와 뚜렷한 동행성을 보인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금값에 비해 구리값이 더 강하다면 이는 향후 경기 회복 기대가 더 커 시장 내 위험자산 선호가 더 강하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미 국채금리는 위로 올라갈 것이라는 얘기죠. 흥미롭게도 최근 시장 모습이 바로 이 예에 딱 들어 맞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닥터 코퍼`는 지금 미국이나 글로벌 경제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는 뜻인데요. 과연 그럴까요. 일단 구리값이 이렇게 강한 상승세를 타는데 가장 큰 힘이 된 건 아무래도 글로벌 달러화 약세 때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 지난 3월 중순에 102.8까지 올라갔던 달러인덱스는 현재 93.0선까지 내려와 불과 6개월 사이에 10%나 추락했습니다. 달러로 거래되는 원자재의 특성 상 이같은 달러 약세는 구리를 포함한 광물금속 가격의 상대적 상승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알루미늄을 비롯한 다른 광물금속에 비해 구리값 상승세가 더 가파른 것은 비단 달러 약세 뿐 아니라 수급상 요인도 함께 작용하고 있습니다. 공급 측면에서 구리가 귀해지고 있다는 게 호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세계 2위 구리 생산국인 페루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최근 수개월 간 필수인력만 투입하면서 광산에서의 채굴량이 크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올들어 7월까지만 생산량이 전년대비 최대 25% 줄었다는 추산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다른 최대 생산국인 칠레는 구리값이 뛰자 생산을 늘리려 하는데도 생산인력 확보가 쉽지 않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이에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올해 구리 생산량이 지난 2016년 이후 4년만에 최저수준이 될 것으로 점치고 있습니다. 주요 국가에서의 산업용 금속 생산량이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다.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코로나19 쇼크로 칠레와 페루의 자국내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광산업체들도 어려움이 커지면서 채굴을 위한 추가적인 자본 투자지출이 줄어 내년까지도 공급량이 회복되기 어렵다는 겁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올해 115만톤 정도 줄어든 구리 생산량이 내년이면 어느 정도 회복되겠지만, 칠레 추키카마타 등 여러 구리 광산개발 프로젝트가 멈춰 있거나 지연되고 있어 공급량이 확연히 늘긴 어려울 듯 합니다. 현재 BoA는 내년에도 글로벌 구리 공급량이 수요대비 6%, 18만8000톤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이런 가운데 코로나19를 일찍 얻어맞은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이 회복세를 타면서 구리를 비롯한 산업용 금속 수입을 늘리고 있는 것이 수요 측면에서의 가격 상승을 촉발시키고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중국은 전 세계 구리 소비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인데요. 그래서 구리값은 중국 경제흐름과도 밀접한 연동성을 가집니다. 이에 착안한 에릭 놀랜드 CME그룹 집행이사 겸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는 구리값이 중국 총리인 리커창의 이름을 따서 만든 리커창지수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중국 내 은행 융자(대출)와 철도화물 규모, 전기 생산을 합쳐 블룸버그가 만든 보완적인 실물경제지표가 바로 리커창지수인데요. 최근 중국 국내총생산(GDP) 하락과 별개로 이 지수는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 5개월 연속 상승하며 경기 확장 판단의 기준이 되는 50선을 넘어선 중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에도 선행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GDP 성장률이 큰 폭으로 하락한 가운데서도 최근 리커창지수가 빠르게 반등하고 있다.이처럼 제조업이 회복돼 이 분야 신규 수주가 늘어나면 원자재 수요도 늘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중국은 올들어 상반기에만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4만톤 이상 많은 구리를 수입했습니다. 같은 기간 작년 수준인 철광석, 50% 줄어든 철스크랩(고철) 수입량을 감안해 로이터 등 서구권 언론에서 “중국 정부가 향후 구리값 회복을 예상해 실제 수요보다 훨씬 많은 구리를 사재기해 재고량을 늘리고 있다”고도 지적할 정도입니다. 최근 중국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 구리를 비롯한 산업용 금속 가격이 더 뛸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진 않지만, 얼마 전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쇼크에서의 교훈과 미국과의 관계 악화 등으로 인해 향후 에너지와 산업용 금속, 농산물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비축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조치는 내년부터 2025년까지 5개년에 걸쳐 진행될 것이고, 그 대상은 원유와 구리, 알루미늄, 텅스텐 등이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이를 종합해볼 때 구리를 비롯한 산업용 필수 금속 가격은 좀더 상승할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7~8월에 이미 역대 최대치에 육박한 중국에서의 수입이 앞으로도 가파르게 늘지는 좀더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달러화도 추가 하락보다는 횡보양상을 보이고 있구요. 이런 가운데 남아메리카에서의 코로나19가 더 악화하지만 않는다면 공급도 바닥을 찍고 완만하게나마 회복될 수도 있을 겁니다. 주요 5대 산업용 금속 가격이 글로벌 수출규모에 비해 조금 더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이제 다시 글의 첫머리에서 언급했던 `닥터 코퍼`로서의 구리의 경기 진단 기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한 마디로, 현재 구리값 상승은 글로벌 경제가 가진 펀더멘털에 비해 앞서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현재의 글로벌 경기를 진단하는 구리의 신호체계가 약간 오작동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회복되고 있는 북반부 경제 상황이 수요 증가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남반구 상황이 공급 감소로 이어져 구리값이 이중으로 수혜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이렇게 본다면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구리의 경기 진단 기능은 분명히 약화돼 있습니다. 즉, 구리값과 경기와의 동행성이 약해졌다는 건데요. 그렇다고 해서 구리의 경기 전망 기능까지도 부정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아주 강해진 않아도 구리값이 경기에 선행성은 보일 수 있다는 얘깁니다. 코로나19가 서서히 진정되면서 구리값은 차츰 투기적인 수요가 주는 대신 인플레이션 기대에 따른 수요가 받쳐줄 것이고, 그럴 경우 구리의 경기 선행성은 보다 뚜렷해질 수 있을 겁니다.
    이정훈 기자 2020.09.19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원소기호 `Cu`인 구리(Copper)는 경제학 박사 학위(Ph.D. in economics)를 가진 금속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리를 굳이 `닥터 코퍼(Dr. Copper)`라고 부르죠. 그런데 인간도 따기 힘든 경제학 박사 학위를 대체 구리는 어떻게 갖게 된 걸까요. 무르고 전성과 연성이 있으며 열과 전기 전도성이 뛰어난 구리는 전기와 열을 잘 전달하는 도체라 전선이나 난방용 배관으로 이용되는 것은 물론 건축과 금속합금, 선박 등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중요한 산업용 재료입니다. 실제 구리개발협회(CDA)에 따르면 전체 구리 중 65%가 전기분야, 25%는 산업분야, 나머지 10%가 운송과 그 외 분야에 각각 쓰입니다. 이렇다 보니 구리값은 향후 경기 사이클을 진단해주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로 꼽히며, 이것이 바로 구리에게 박사 학위를 씌워준 계기가 된 겁니다. 실제 ABN암로가 지난 2014년 구리값과 글로벌 경제활동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봤더니 미국과 유럽, 중국에서의 지역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구리값과 매우 강한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 이를 테면 구리를 사겠다는 주문이 줄거나 취소가 는다면 가격이 떨어지죠. 그리곤 이 구리값 하락은 경기가 침체국면으로 가고 있다는 걸 말해 줍니다. 반대로 구리 주문이 늘고 가격이 덩달아 상승한다면 이는 경기가 탄탄해지고 산업에서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산업적 측면에서 본다면 구리의 가장 큰 수요처는 전기 추진체와 각종 의료기기, 신재생에너지 시스템, 초전도 나노탄소 등 신성장산업이고, 또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등지의 인프라산업입니다. 그래서 구리의 수요는 신산업이든 전통산업이든 글로벌 경제 성장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겁니다. 또 구리값 역시 글로벌 경제 성장이나 성장 기대에 따라 변하게 됩니다.코로나19 팬데믹으로 추락했던 구리값이 거침없는 회복세를 보이며 파운드당 3달러를 넘어서고 있다.그렇다면 올 들어,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전 세계적 대유행) 이후 구리값은 어떤 흐름을 보이고 있을까요.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급격히 위축된 경제활동의 복원력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 우리 앞에 놓인 길을 이 `닥터 코퍼`에게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합니다.지난 2018년 여름 파운드당 3.3달러까지 치솟았던 구리값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긴축정책 앞에 힘을 쓰지 못한 채 하락세를 이어갔고, 작년 하반기에 다소 반등했어도 올 초를 2.8달러 정도에서 출발했었습니다. 그러나 연초부터 코로나19가 중국과 동아시아, 유럽 등지를 넘어 미국까지 덮치자 구리값은 급전직하 하고 말았습니다.연준이 무제한 양적완화를 발표했던 지난 3월23일 연저점인 2.17달러를 찍었죠. 그리고 그 나흘 뒤인 3월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총 2조달러 규모의 코로나19 재정부양 패키지법(CARES Act)에 서명하자 현재 3.06달러까지 올랐습니다. 단순히 V자형이 아닌, 폭이 아주 좁은 V자형 회복으로, 현재 구리값은 지난 2018년 6월 이후 2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최근 구리값이 금에 비해 더 큰 폭으로 오르고 있고, 그로 인해 미 국채 금리와도 다소 디커플링 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이렇게 구리값 상승이 빠르게 나타났다는 것 뿐 아니라 여기서 주목할 대목이 하나 더 나오는데요. 구리는 여러 산업에 활용되는 필수재라는 점에서 위험자산 선호를 반영하고 있구요. 그래서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광물이라는 점입니다. 자연스럽게 둘 중 어느 쪽 가격이 더 쎈지 보면 현재의 경기나 시장 내 위험자산 선호 정도를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또한 금값대비 구리값 비율을 구하면 그 값이 미 국채금리와 뚜렷한 동행성을 보인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금값에 비해 구리값이 더 강하다면 이는 향후 경기 회복 기대가 더 커 시장 내 위험자산 선호가 더 강하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미 국채금리는 위로 올라갈 것이라는 얘기죠. 흥미롭게도 최근 시장 모습이 바로 이 예에 딱 들어 맞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닥터 코퍼`는 지금 미국이나 글로벌 경제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는 뜻인데요. 과연 그럴까요. 일단 구리값이 이렇게 강한 상승세를 타는데 가장 큰 힘이 된 건 아무래도 글로벌 달러화 약세 때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 지난 3월 중순에 102.8까지 올라갔던 달러인덱스는 현재 93.0선까지 내려와 불과 6개월 사이에 10%나 추락했습니다. 달러로 거래되는 원자재의 특성 상 이같은 달러 약세는 구리를 포함한 광물금속 가격의 상대적 상승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알루미늄을 비롯한 다른 광물금속에 비해 구리값 상승세가 더 가파른 것은 비단 달러 약세 뿐 아니라 수급상 요인도 함께 작용하고 있습니다. 공급 측면에서 구리가 귀해지고 있다는 게 호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세계 2위 구리 생산국인 페루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최근 수개월 간 필수인력만 투입하면서 광산에서의 채굴량이 크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올들어 7월까지만 생산량이 전년대비 최대 25% 줄었다는 추산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다른 최대 생산국인 칠레는 구리값이 뛰자 생산을 늘리려 하는데도 생산인력 확보가 쉽지 않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이에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올해 구리 생산량이 지난 2016년 이후 4년만에 최저수준이 될 것으로 점치고 있습니다. 주요 국가에서의 산업용 금속 생산량이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다.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코로나19 쇼크로 칠레와 페루의 자국내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광산업체들도 어려움이 커지면서 채굴을 위한 추가적인 자본 투자지출이 줄어 내년까지도 공급량이 회복되기 어렵다는 겁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올해 115만톤 정도 줄어든 구리 생산량이 내년이면 어느 정도 회복되겠지만, 칠레 추키카마타 등 여러 구리 광산개발 프로젝트가 멈춰 있거나 지연되고 있어 공급량이 확연히 늘긴 어려울 듯 합니다. 현재 BoA는 내년에도 글로벌 구리 공급량이 수요대비 6%, 18만8000톤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이런 가운데 코로나19를 일찍 얻어맞은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이 회복세를 타면서 구리를 비롯한 산업용 금속 수입을 늘리고 있는 것이 수요 측면에서의 가격 상승을 촉발시키고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중국은 전 세계 구리 소비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인데요. 그래서 구리값은 중국 경제흐름과도 밀접한 연동성을 가집니다. 이에 착안한 에릭 놀랜드 CME그룹 집행이사 겸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는 구리값이 중국 총리인 리커창의 이름을 따서 만든 리커창지수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중국 내 은행 융자(대출)와 철도화물 규모, 전기 생산을 합쳐 블룸버그가 만든 보완적인 실물경제지표가 바로 리커창지수인데요. 최근 중국 국내총생산(GDP) 하락과 별개로 이 지수는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 5개월 연속 상승하며 경기 확장 판단의 기준이 되는 50선을 넘어선 중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에도 선행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GDP 성장률이 큰 폭으로 하락한 가운데서도 최근 리커창지수가 빠르게 반등하고 있다.이처럼 제조업이 회복돼 이 분야 신규 수주가 늘어나면 원자재 수요도 늘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중국은 올들어 상반기에만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4만톤 이상 많은 구리를 수입했습니다. 같은 기간 작년 수준인 철광석, 50% 줄어든 철스크랩(고철) 수입량을 감안해 로이터 등 서구권 언론에서 “중국 정부가 향후 구리값 회복을 예상해 실제 수요보다 훨씬 많은 구리를 사재기해 재고량을 늘리고 있다”고도 지적할 정도입니다. 최근 중국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 구리를 비롯한 산업용 금속 가격이 더 뛸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진 않지만, 얼마 전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쇼크에서의 교훈과 미국과의 관계 악화 등으로 인해 향후 에너지와 산업용 금속, 농산물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비축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조치는 내년부터 2025년까지 5개년에 걸쳐 진행될 것이고, 그 대상은 원유와 구리, 알루미늄, 텅스텐 등이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이를 종합해볼 때 구리를 비롯한 산업용 필수 금속 가격은 좀더 상승할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7~8월에 이미 역대 최대치에 육박한 중국에서의 수입이 앞으로도 가파르게 늘지는 좀더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달러화도 추가 하락보다는 횡보양상을 보이고 있구요. 이런 가운데 남아메리카에서의 코로나19가 더 악화하지만 않는다면 공급도 바닥을 찍고 완만하게나마 회복될 수도 있을 겁니다. 주요 5대 산업용 금속 가격이 글로벌 수출규모에 비해 조금 더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이제 다시 글의 첫머리에서 언급했던 `닥터 코퍼`로서의 구리의 경기 진단 기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한 마디로, 현재 구리값 상승은 글로벌 경제가 가진 펀더멘털에 비해 앞서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현재의 글로벌 경기를 진단하는 구리의 신호체계가 약간 오작동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회복되고 있는 북반부 경제 상황이 수요 증가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남반구 상황이 공급 감소로 이어져 구리값이 이중으로 수혜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이렇게 본다면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구리의 경기 진단 기능은 분명히 약화돼 있습니다. 즉, 구리값과 경기와의 동행성이 약해졌다는 건데요. 그렇다고 해서 구리의 경기 전망 기능까지도 부정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아주 강해진 않아도 구리값이 경기에 선행성은 보일 수 있다는 얘깁니다. 코로나19가 서서히 진정되면서 구리값은 차츰 투기적인 수요가 주는 대신 인플레이션 기대에 따른 수요가 받쳐줄 것이고, 그럴 경우 구리의 경기 선행성은 보다 뚜렷해질 수 있을 겁니다.
  • [이정훈의 마켓워치]<28>채권수익률곡선은 다시 가팔라질까
    워싱턴D.C에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본부 건물[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채권수익률곡선(yield curve·일드커브)이 아무런 소용 없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역설적으로 이 수익률곡선의 예언능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향후 경기를 가늠하는 선행지표로서의 신뢰도가 오히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재무부에서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뒤 현재는 PGIM 픽스트인컴에서 일하는 네이선 시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주장하며 수익률곡선의 경기 예측력을 너무 맹신하지 말라는 당부를 했습니다.그의 얘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만약 단기금리가 상대적으로 더 오르고 장기금리가 내려와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다고 하면 다들 머지 않아 경기 침체(recession)가 올 것이라며 호들갑을 떤다. 그러면 연준은 통화정책을 다소 느슨하게 가져가고, 이 덕에 금융시장 여건이 완화돼 수익률곡선 역전과 경기 침체와의 관계가 사라져 버린다`는 겁니다.사실 이와 유사한 일이 올 6월 초에도 있었습니다. 미국 내 주요 도시들의 락다운이 일시에 해제되자 장기금리가 더 빠르게 뛰며 2년과 10년만기 국채 간 스프레드(=금리 차이)가 지난 2018년 2월 이후 2년 4개월여 만에 최대폭으로 벌어지는 일이 있었죠. 이를 두고 `앞으로 경기가 V자형 회복을 보일 수도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장기금리가 본격적으로 뛸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더랬습니다. 알다시피 장-단기 금리 차이는 경기선행지표 구성요소일 정도로 경기 방향성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인데요. 일반적으로는 장-단기 금리 차이가 벌어지는 건 향후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 들여집니다. 통상 인플레이션이 뛸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거나, 그로 인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거나 위험자산 선호가 높아져 채권 보유심리가 약해지면 장기금리는 오르기 마련입니다. 특히 단기보다 장기금리가 더 오른다는 건 경기가 좋아지고 총수요가 살아나 인플레이션이 뛸 때 나타나곤 하죠. 그러자 그 다음 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주재했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우리 솔직해지자”며 “연준의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미국 경제와 고용이 가야할 길은 멀다”라는 냉정한 발언을 내놓습니다. 그도 모자라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여러 정책수단을 검토하고 있고, 수익률곡선관리(YCC)도 그 중 하나”라고 밝혔죠. 그 덕에 장-단기 금리 차이는 곧바로 좁혀지면서 수익률곡선의 기울기도 금세 다시 평탄해졌습니다. (☞6월13일 기사: [이정훈의 마켓워치]<9>파월은 어쩌다 증시에 찬물 끼얹었나)파월 의장이 이렇게 YCC라는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고 천명한 뒤 한동안 미 국채시장에서 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지는 일은 없었는데요. 8월에 공개된 7월 FOMC 의사록을 통해 정책위원들이 당시 회의에서 YCC의 부작용과 문제점을 한껏 성토한 것이 알려지고서야 수익률곡선은 다시 아래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죽어 버린 듯 했던 수익률곡선이 최근 다시 꿈틀대고 있습니다. 이제 시기상 4분기(10~12월) 진입을 앞두고서 수익률곡선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슈퍼 플랫(Super flat)` 상태에서 오래 머물렀던 만큼 다소 가팔라지는(steepen)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긴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 보면 당시 미 국채 2-5년물 구간을 중심으로 수익률곡선이 역전되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이를 두고 당시 월가에서는 향후 경기 침체에 대한 시그널이 온 것이냐 아니냐 논쟁이 나름 뜨겁게 벌어졌었는데요. 미 국채 2년과 5년, 2년과 10년물 간 스프레드(=금리 차이) 추이특히나 당시 경기 침체를 점칠 만한 뚜렷한 징후가 전혀 없을 만큼 미국 내 거시경제지표는 양호했었죠. 이런 상황에서 5년물 금리가 2년물 아래로 내려갔다는 건, 앞으로 2년물 금리가 내려가야 하고 이를 위해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려야할 지 모른다는 시그널이 반영돼 있었으니 말이죠. 흥미로운 건, 이 당시 역전된 2-5년물 수익률곡선이 코로나19 팬데믹(전 세계적 대유행)을 예견하진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1년이 지난 뒤 (코로나19로 인해) 나타난 실제 경기 침체를 예고했다는 점입니다.그 때와 비교해 지금 나름 긍정적인 건, 국채 2-5년물 구간이 역전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반면 부정적인 건 이 구간이 거의 플랫(flat)해져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스프레드는 10~12bp 정도를 오가고 있습니다. 연준이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쓸 생각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 더이상 기준금리가 내려갈 수 없다는 전제 하에서 보면 아주 근소한 차이로 좁혀져 있는 셈입니다. 수익률곡선이 이렇게 평탄하게 유지되고 있었던 건, 기본적으로 채권시장이 연준의 정책 스탠스를 충실히 반영해온 결과물이라고 봅니다. 즉, 연준은 적어도 2022년까지는 기준금리를 올릴 의도가 전혀 없음을 누차 확인시켜줬으니 단기물 금리가 위로 올라갈 일은 없겠죠. 또한 연준은 YCC 도입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으면서 5년물 이상 금리가 급작스럽게 위로 움직이는 것도 차단해 왔습니다.그러나 이제 연준의 YCC 도입에 대한 기대치가 크게 낮아진 상황이라 5년 이상 구간에서는 수익률곡선이 스티프닝 쪽으로 갈 수 있을 겁니다. 현재 5-10년물 간 스프레드는 40bp 수준이고 10-30년 스프레드도 거의 비슷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진다는 건, 향후 시장금리가 반등할 것이라는 얘기고, 이는 미국 경제가 더디지만 최소한 더블딥(Double dip)으로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익률곡선이 스티프닝으로 갈 수 있는 이유는 어떤 것들이 될까요. 미국 경제지표에 대한 기대치가 빠르게 높아지는데도 연준의 정책 효과로 인해 10년-2년 스프레드는 크게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스프레드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일단 연준이 평균물가목표제(AIT)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높여 장기금리를 위로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AIT는 최대한의 고용이 달성될 수 있도록,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으로 연준 목표인 2%를 웃돌더라도 이를 인내하겠다는 정책입니다. 이는 미국 경제가 코로나19 충격으로부터 더 서둘러 빠져나올 수 있는 기회를 높여줄 겁니다. 이 때 (실물경제지표가 살아나는) 그 반대급부로 치러야할 비용이 바로 인플레이션이 됩니다.지난 5월에 락다운 조치가 미국 전역에 내려지면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 기준으로 전년동월대비 -0.1%까지 내려갔던 미국 인플레이션이 7월에는 +1.0%로 회복됐는데요. 간밤에 발표된 근원 CPI는 1.7%까지 상승폭을 키웠습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 상승폭이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앞으로의 인플레이션을 기대하는 눈높이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시장참가자들의 기대 인플레이션을 보여주는 지표로 흔히 브레이크이븐 레이트(BIR·Breakeven Inflation Rate)를 사용하는데요. 이는 일반적인 국채와 물가연동국채(TIPS) 간 수익률 차이입니다. 쿠폰금리는 고정돼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그에 따라 원금 지급액이 늘어나도록 설계된 TIPS 금리가 일반 국채금리보다 더 빠르게 오른다는 게 인플레 기대심리가 높다는 뜻이기 때문이죠. 바로 이 10년만기 미 국채의 BIR은 지난 3월에 0.55%까지 내려갔다가 현재 1.70%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 국채를 비롯한 연준의 자산 매입규모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금리 상승이 나타날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연준은 올 봄 이후처럼 정신없이 자산을 매입해왔지만 과거 고점이던 지난 2014년에 비해서는 전체 국채규모대비 낮은 국채 보유비중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4년 당시엔 연준이 제로금리 정책을 썼어도 10년물 국채 금리는 2%가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10년물 금리는 0.6%대까지 내려와 있어 연준으로서도 적극적 국채 매입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미 전체 국채시장 중 연준이 보유하고 있는 국채 비중이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급증하다가 최근 완만해졌다. 이는 2014년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다.이와 함께 미 정부가 발행하는 적자국채 규모가 늘어나면서 장기금리가 상승압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 최근에도 10년과 20년, 30년만기 국채 발행을 위한 입찰이 있을 때마다 낙찰금리가 시장에서의 유통금리보다 다소 높아지는 부진한 결과로 인해 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지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요. 지난 2분기에 2조7530억달러라는 역대 최대규모의 적자국채를 발행했던 미 재무부는 3분기에도 9470억달러 어치 국채를 찍어 냈습니다. 이는 앞서 5월에 발표한 금액보다 2700억달러 더 많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추가 재정부양책이 합의될 경우 연말과 내년 초 쯤 또 한 번의 국채 물량폭탄이 채권시장에 몰아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렇게 시장금리가 위로 올라가고 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질 때 증시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하는 대목인데요. 사실 이는 금리 상승이나 장-단기 금리 차 확대 폭과 속도에 따라 달라질텐데요. 불안해지는 상황을 연준이 제어한다고 본다면 증시에는 비교적 우호적 영향을 줄 듯 합니다. 일단 시세흐름을 주도하던 대표 성장주들의 높은 밸류에이션은 다소 조정쪽으로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저금리에 싼 값에 회사채를 찍어 그 돈으로 자사주 매입과 배당 등에 쏟아 부었던 기업들의 주가가 비싸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반면 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진다는 건 향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대목이라 그동안 소외 받던 경기민감주가 다시 살아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리플레이션(reflation) 기대가 커진다면 이는 이머징마켓이 강해질 수 있는 위험선호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머징 자산 매력이 높아질 수 있고, 원자재 값이 뛰면서 자원이 많은 이머징 국가 경제가 회복세로 갈 수 있기 때문이죠. 나스닥을 비롯한 뉴욕증시가 조정을 받을 떄 이머징 증시가 대안으로 주목받을 수 있습니다.
    이정훈 기자 2020.09.12
    워싱턴D.C에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본부 건물[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채권수익률곡선(yield curve·일드커브)이 아무런 소용 없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역설적으로 이 수익률곡선의 예언능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향후 경기를 가늠하는 선행지표로서의 신뢰도가 오히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재무부에서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뒤 현재는 PGIM 픽스트인컴에서 일하는 네이선 시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주장하며 수익률곡선의 경기 예측력을 너무 맹신하지 말라는 당부를 했습니다.그의 얘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만약 단기금리가 상대적으로 더 오르고 장기금리가 내려와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다고 하면 다들 머지 않아 경기 침체(recession)가 올 것이라며 호들갑을 떤다. 그러면 연준은 통화정책을 다소 느슨하게 가져가고, 이 덕에 금융시장 여건이 완화돼 수익률곡선 역전과 경기 침체와의 관계가 사라져 버린다`는 겁니다.사실 이와 유사한 일이 올 6월 초에도 있었습니다. 미국 내 주요 도시들의 락다운이 일시에 해제되자 장기금리가 더 빠르게 뛰며 2년과 10년만기 국채 간 스프레드(=금리 차이)가 지난 2018년 2월 이후 2년 4개월여 만에 최대폭으로 벌어지는 일이 있었죠. 이를 두고 `앞으로 경기가 V자형 회복을 보일 수도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장기금리가 본격적으로 뛸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더랬습니다. 알다시피 장-단기 금리 차이는 경기선행지표 구성요소일 정도로 경기 방향성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인데요. 일반적으로는 장-단기 금리 차이가 벌어지는 건 향후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 들여집니다. 통상 인플레이션이 뛸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거나, 그로 인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거나 위험자산 선호가 높아져 채권 보유심리가 약해지면 장기금리는 오르기 마련입니다. 특히 단기보다 장기금리가 더 오른다는 건 경기가 좋아지고 총수요가 살아나 인플레이션이 뛸 때 나타나곤 하죠. 그러자 그 다음 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주재했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우리 솔직해지자”며 “연준의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미국 경제와 고용이 가야할 길은 멀다”라는 냉정한 발언을 내놓습니다. 그도 모자라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여러 정책수단을 검토하고 있고, 수익률곡선관리(YCC)도 그 중 하나”라고 밝혔죠. 그 덕에 장-단기 금리 차이는 곧바로 좁혀지면서 수익률곡선의 기울기도 금세 다시 평탄해졌습니다. (☞6월13일 기사: [이정훈의 마켓워치]<9>파월은 어쩌다 증시에 찬물 끼얹었나)파월 의장이 이렇게 YCC라는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고 천명한 뒤 한동안 미 국채시장에서 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지는 일은 없었는데요. 8월에 공개된 7월 FOMC 의사록을 통해 정책위원들이 당시 회의에서 YCC의 부작용과 문제점을 한껏 성토한 것이 알려지고서야 수익률곡선은 다시 아래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죽어 버린 듯 했던 수익률곡선이 최근 다시 꿈틀대고 있습니다. 이제 시기상 4분기(10~12월) 진입을 앞두고서 수익률곡선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슈퍼 플랫(Super flat)` 상태에서 오래 머물렀던 만큼 다소 가팔라지는(steepen)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긴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 보면 당시 미 국채 2-5년물 구간을 중심으로 수익률곡선이 역전되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이를 두고 당시 월가에서는 향후 경기 침체에 대한 시그널이 온 것이냐 아니냐 논쟁이 나름 뜨겁게 벌어졌었는데요. 미 국채 2년과 5년, 2년과 10년물 간 스프레드(=금리 차이) 추이특히나 당시 경기 침체를 점칠 만한 뚜렷한 징후가 전혀 없을 만큼 미국 내 거시경제지표는 양호했었죠. 이런 상황에서 5년물 금리가 2년물 아래로 내려갔다는 건, 앞으로 2년물 금리가 내려가야 하고 이를 위해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려야할 지 모른다는 시그널이 반영돼 있었으니 말이죠. 흥미로운 건, 이 당시 역전된 2-5년물 수익률곡선이 코로나19 팬데믹(전 세계적 대유행)을 예견하진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1년이 지난 뒤 (코로나19로 인해) 나타난 실제 경기 침체를 예고했다는 점입니다.그 때와 비교해 지금 나름 긍정적인 건, 국채 2-5년물 구간이 역전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반면 부정적인 건 이 구간이 거의 플랫(flat)해져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스프레드는 10~12bp 정도를 오가고 있습니다. 연준이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쓸 생각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 더이상 기준금리가 내려갈 수 없다는 전제 하에서 보면 아주 근소한 차이로 좁혀져 있는 셈입니다. 수익률곡선이 이렇게 평탄하게 유지되고 있었던 건, 기본적으로 채권시장이 연준의 정책 스탠스를 충실히 반영해온 결과물이라고 봅니다. 즉, 연준은 적어도 2022년까지는 기준금리를 올릴 의도가 전혀 없음을 누차 확인시켜줬으니 단기물 금리가 위로 올라갈 일은 없겠죠. 또한 연준은 YCC 도입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으면서 5년물 이상 금리가 급작스럽게 위로 움직이는 것도 차단해 왔습니다.그러나 이제 연준의 YCC 도입에 대한 기대치가 크게 낮아진 상황이라 5년 이상 구간에서는 수익률곡선이 스티프닝 쪽으로 갈 수 있을 겁니다. 현재 5-10년물 간 스프레드는 40bp 수준이고 10-30년 스프레드도 거의 비슷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진다는 건, 향후 시장금리가 반등할 것이라는 얘기고, 이는 미국 경제가 더디지만 최소한 더블딥(Double dip)으로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익률곡선이 스티프닝으로 갈 수 있는 이유는 어떤 것들이 될까요. 미국 경제지표에 대한 기대치가 빠르게 높아지는데도 연준의 정책 효과로 인해 10년-2년 스프레드는 크게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스프레드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일단 연준이 평균물가목표제(AIT)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높여 장기금리를 위로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AIT는 최대한의 고용이 달성될 수 있도록,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으로 연준 목표인 2%를 웃돌더라도 이를 인내하겠다는 정책입니다. 이는 미국 경제가 코로나19 충격으로부터 더 서둘러 빠져나올 수 있는 기회를 높여줄 겁니다. 이 때 (실물경제지표가 살아나는) 그 반대급부로 치러야할 비용이 바로 인플레이션이 됩니다.지난 5월에 락다운 조치가 미국 전역에 내려지면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 기준으로 전년동월대비 -0.1%까지 내려갔던 미국 인플레이션이 7월에는 +1.0%로 회복됐는데요. 간밤에 발표된 근원 CPI는 1.7%까지 상승폭을 키웠습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 상승폭이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앞으로의 인플레이션을 기대하는 눈높이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시장참가자들의 기대 인플레이션을 보여주는 지표로 흔히 브레이크이븐 레이트(BIR·Breakeven Inflation Rate)를 사용하는데요. 이는 일반적인 국채와 물가연동국채(TIPS) 간 수익률 차이입니다. 쿠폰금리는 고정돼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그에 따라 원금 지급액이 늘어나도록 설계된 TIPS 금리가 일반 국채금리보다 더 빠르게 오른다는 게 인플레 기대심리가 높다는 뜻이기 때문이죠. 바로 이 10년만기 미 국채의 BIR은 지난 3월에 0.55%까지 내려갔다가 현재 1.70%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 국채를 비롯한 연준의 자산 매입규모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금리 상승이 나타날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연준은 올 봄 이후처럼 정신없이 자산을 매입해왔지만 과거 고점이던 지난 2014년에 비해서는 전체 국채규모대비 낮은 국채 보유비중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4년 당시엔 연준이 제로금리 정책을 썼어도 10년물 국채 금리는 2%가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10년물 금리는 0.6%대까지 내려와 있어 연준으로서도 적극적 국채 매입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미 전체 국채시장 중 연준이 보유하고 있는 국채 비중이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급증하다가 최근 완만해졌다. 이는 2014년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다.이와 함께 미 정부가 발행하는 적자국채 규모가 늘어나면서 장기금리가 상승압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 최근에도 10년과 20년, 30년만기 국채 발행을 위한 입찰이 있을 때마다 낙찰금리가 시장에서의 유통금리보다 다소 높아지는 부진한 결과로 인해 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지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요. 지난 2분기에 2조7530억달러라는 역대 최대규모의 적자국채를 발행했던 미 재무부는 3분기에도 9470억달러 어치 국채를 찍어 냈습니다. 이는 앞서 5월에 발표한 금액보다 2700억달러 더 많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추가 재정부양책이 합의될 경우 연말과 내년 초 쯤 또 한 번의 국채 물량폭탄이 채권시장에 몰아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렇게 시장금리가 위로 올라가고 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질 때 증시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하는 대목인데요. 사실 이는 금리 상승이나 장-단기 금리 차 확대 폭과 속도에 따라 달라질텐데요. 불안해지는 상황을 연준이 제어한다고 본다면 증시에는 비교적 우호적 영향을 줄 듯 합니다. 일단 시세흐름을 주도하던 대표 성장주들의 높은 밸류에이션은 다소 조정쪽으로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저금리에 싼 값에 회사채를 찍어 그 돈으로 자사주 매입과 배당 등에 쏟아 부었던 기업들의 주가가 비싸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반면 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진다는 건 향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대목이라 그동안 소외 받던 경기민감주가 다시 살아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리플레이션(reflation) 기대가 커진다면 이는 이머징마켓이 강해질 수 있는 위험선호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머징 자산 매력이 높아질 수 있고, 원자재 값이 뛰면서 자원이 많은 이머징 국가 경제가 회복세로 갈 수 있기 때문이죠. 나스닥을 비롯한 뉴욕증시가 조정을 받을 떄 이머징 증시가 대안으로 주목받을 수 있습니다.
  • [이정훈의 마켓워치]<27>AIT에 치솟은 유로, ECB의 선택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9월 첫 거래가 시작된 런던 외환시장. 오전부터 유로를 사겠다는 매수 거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근래 미 달러화가 워낙 약하긴 했지만 시장에서는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1유로=1.20달러`는 어느 정도 버팀목이 될 것으로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단숨에 이 선이 일시적으로 무너지자 시장은 충격에 빠졌죠. 이날 1유로가 1.20달러를 넘어선 건 지난 2018년 5월 이후 2년 하고도 넉 달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7월 한 달 동안만 유로화가 달러화대비 7%나 절상된 상태였다 보니 8월에는 절상속도가 다소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던 게 사실이었죠. 그러나 8월에도 유로는 달러대비 1.4%나 올라 넉 달 연속으로 월간 절상세를 이어갔습니다. 문제는 이러고도 모자랐는지 선물시장에서 투기세력들은 달러를 팔고 유로를 사겠다는 순매수포지션을 역사상 최고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급기야 8월 말 잭슨홀 미팅에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유연한 형태의 평균물가목표제(AIT·Average Inflation Targeting)` 도입을 언급한데다 9월1일 유로존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 2016년 5월 이후 약 4년 만에 가장 낮은 전년동월대비 0.2% 하락을 기록하자 `더 이상 주저할 것 없다`는 듯이 유로화는 1.20달러 선을 단숨에 뚫어버린 것이죠. 8월부터 9월 초까지의 유로-달러환율 동향. 9월1일 장 초반에 1유로=1.20달러선이 일시적으로 뚫렸다.그러자 필립 레인 유럽중앙은행(ECB) 수석이코노미스트가 구두개입에 나서며 유로값을 인위적으로 떨어 뜨렸습니다. 레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우리는 유로화 환율에 대해 특정 타깃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유로-달러환율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유로환율은 통화정책에 중요한 변수이며, 이에 관해 (ECB가) 무엇인가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모든 중앙은행들이 그렇지만, 중앙은행 뱅커들이 특정한 시장가격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언급하는 건 금기에 가까운 일입니다. ECB 위원들도 유로존 경제 전반에 대해 평가나 진단을 내리면서 우회적으로 환율 문제를 건드는 경우는 있지만, 이처럼 유로환율 문제를 꼭 집어 얘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어쨌든 이날의 시장 개입은 ECB가 이제부터 유로-달러환율 동향을 공개적으로 예의주시하겠다는 예고이며, 1유로가 1.20달러를 넘어갈 경우 유로존 경제가 `고통의 문턱`에 들어설 것이라는 자기 고백과 같은 것이었습니다.사실 21년간 단일 유로화를 써오고 있는 유로존은 주기적으로 유로화 강세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유로화가 1.20달러를 넘어선 건, 유로존 경제가 한참 살아나는 반면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불 붙긴 시작한 지난 2017년이었습니다. 당시에도 통화정책을 담당하던 브느와 꾀레 ECB 집행이사가 선봉장이 돼 유로값을 낮추기 위한 구두 개입에 나섰습니다. 특히 당시 총재였던 마리오 드라기는 유로화 강세가 만들어 내는 유로존 내 인플레이션 하락과 타이트한 금융여건으로 인해 양적완화를 멈추지 못하고 더 늘려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었습니다. 드라기 당시 총재는 “교역가중환율 기준으로 유로화가 너무 강해지면서 낮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심각한 우려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유로화 강세로) 분기 인플레이션이 0.5%포인트씩 낮아지면 자산매입 규모를 추가로 7000억유로씩 늘려야 한다”는 산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앞선 2017년과 마찬가지로, ECB는 연준의 AIT에 맞서 유로화 강세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당장 10일(현지시간)에 열리는 통화정책회의에서 ECB는 드라기 전 총재의 셈법대로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PEPP)을 비롯한 자산매입 규모를 더 늘릴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상황입니다. 미국과 유로존 금융여건지수 추이. ECB가 PEPP를 시행한 이후에도 두 지역에서의 금융여건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최근 ECB 통화정책회의 의사록을 보면 위원들은 “미국의 금융여건은 지속적으로 완화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유로존에서는 PEPP와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라는 바주카포가 동시에 가동되고 있는데도 그다지 완화적이지 않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합니다. 사실 지난 6월 이후 뉴욕증시 주요 지수들은 꾸준한 상승랠리를 이어갔지만, 유로존 대표지수인 유로스톡스50지수는 횡보 양상을 보였죠. ECB도 연준과 마찬가지로 돈 풀기를 계속했지만, 대규모 유동성 확대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이처럼 미국과 유로존에서 금융여건 차이를 큰 것은 미국 경제지표가 유로존에 비해 3~4개월 이상 앞서 회복되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실제 금융여건과 실제 구매관리자지수(PMI) 지표는 일정한 시차를 두고 움직이는 경향성이 보이고 있습니다. 국채시장도 마찬가집니다. 미국 국채시장에서 일드커브가 최대 200bp까지 가팔리지는(=스티프닝)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데요, 이 역시 향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유로존보다는 미국에서 더 강할 수 있다는 시장의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이런 가운데 파월 의장이 AIT를 도입하겠다고 했으니 두 지역 간 갭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죠. 미국의 경우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이 최근 5~10년간 평균 1.60~1.65% 수준에서 움직여 왔는데요. 만약 AIT를 도입한다면 앞으로 5~10년간 평균 근원 PCE 물가지수 상승률이 2.35~2.40%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미국과 유로존, 일본의 5년 만기 국채의 실질금리(명목금리-인플레이션). 일본이 월등히 높은 가운데 상대적으로 낮았던 유로존 실질금리가 반등하며 미국과 격차를 좁히고 있다.일단 이번주 ECB 회의에서 주목할 점은 ECB 실무진이 유로존 인플레이션 전망을 얼마나 하향 조정하느냐입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계속 높이려는 정책을 쓰는데, 유로존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반등하지 못한다면 유로존의 실질금리가 더 높아져 유로화 강세를 더 부추길 수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ECB로서도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쓸 수 있는 실탄이 부족하지만, 연준의 AIT 도입은 ECB로 하여금 통화부양의 강도를 미국과 맞추도록 강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확실하게 유로화 절상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이지만, 현재 유로존 예금금리가 마이너스(-)0.5%인 상황에서 금리를 더 내리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도 현재 시장은 내년 9월까지 기준금리가 10bp(0.01%포인트) 더 인하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만약 라가르드 총재가 유로화 강세의 부정적 영향을 언급한다면 이 기대치는 더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보다 현실적인 건 아무래도 비전통적 부양 수단인데요. 현재 1조3500억유로 규모인 PEPP를 내년 중반 이후까지 연장하고 그 규모를 더 늘릴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PEPP를 늘린다고 해서 유로존 금융여건이 완화된다는 자신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 경우 기대 인플레를 끌어 올리고 유로화를 낮추는 역할을 어느 정도 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전체 규모를 늘리기 전이라도 PEPP의 자산매입 속도를 우선 늘릴 수도 있을 겁니다. 실제 지난 5월에 452억유로였던 PEPP의 자산매입 규모는 7월에 249억유로, 8월에 198억유로로 줄어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울러 ECB 주요 인사들이 나서 반복적으로 구두 개입 등을 통해 시장 내 과열심리를 달래는데 치중하는 일도 병행할 겁니다. 이 같은 조치들이 현실화한다면 유로화는 다시 달러대비 약세 기조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다만 상상하긴 싫지만, 이런 조치로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지난 2008년 달러대비 엔화 가치가 너무 뛰자 일본은행(BOJ)도 어쩔 수 없이 강한 통화부양 조치를 내놨지만, 실효성 없이 만성적인 디플레이션 기조만 만들어 냈던 경험이 있습니다. ECB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이정훈 기자 2020.09.06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9월 첫 거래가 시작된 런던 외환시장. 오전부터 유로를 사겠다는 매수 거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근래 미 달러화가 워낙 약하긴 했지만 시장에서는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1유로=1.20달러`는 어느 정도 버팀목이 될 것으로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단숨에 이 선이 일시적으로 무너지자 시장은 충격에 빠졌죠. 이날 1유로가 1.20달러를 넘어선 건 지난 2018년 5월 이후 2년 하고도 넉 달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7월 한 달 동안만 유로화가 달러화대비 7%나 절상된 상태였다 보니 8월에는 절상속도가 다소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던 게 사실이었죠. 그러나 8월에도 유로는 달러대비 1.4%나 올라 넉 달 연속으로 월간 절상세를 이어갔습니다. 문제는 이러고도 모자랐는지 선물시장에서 투기세력들은 달러를 팔고 유로를 사겠다는 순매수포지션을 역사상 최고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급기야 8월 말 잭슨홀 미팅에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유연한 형태의 평균물가목표제(AIT·Average Inflation Targeting)` 도입을 언급한데다 9월1일 유로존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 2016년 5월 이후 약 4년 만에 가장 낮은 전년동월대비 0.2% 하락을 기록하자 `더 이상 주저할 것 없다`는 듯이 유로화는 1.20달러 선을 단숨에 뚫어버린 것이죠. 8월부터 9월 초까지의 유로-달러환율 동향. 9월1일 장 초반에 1유로=1.20달러선이 일시적으로 뚫렸다.그러자 필립 레인 유럽중앙은행(ECB) 수석이코노미스트가 구두개입에 나서며 유로값을 인위적으로 떨어 뜨렸습니다. 레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우리는 유로화 환율에 대해 특정 타깃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유로-달러환율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유로환율은 통화정책에 중요한 변수이며, 이에 관해 (ECB가) 무엇인가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모든 중앙은행들이 그렇지만, 중앙은행 뱅커들이 특정한 시장가격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언급하는 건 금기에 가까운 일입니다. ECB 위원들도 유로존 경제 전반에 대해 평가나 진단을 내리면서 우회적으로 환율 문제를 건드는 경우는 있지만, 이처럼 유로환율 문제를 꼭 집어 얘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어쨌든 이날의 시장 개입은 ECB가 이제부터 유로-달러환율 동향을 공개적으로 예의주시하겠다는 예고이며, 1유로가 1.20달러를 넘어갈 경우 유로존 경제가 `고통의 문턱`에 들어설 것이라는 자기 고백과 같은 것이었습니다.사실 21년간 단일 유로화를 써오고 있는 유로존은 주기적으로 유로화 강세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유로화가 1.20달러를 넘어선 건, 유로존 경제가 한참 살아나는 반면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불 붙긴 시작한 지난 2017년이었습니다. 당시에도 통화정책을 담당하던 브느와 꾀레 ECB 집행이사가 선봉장이 돼 유로값을 낮추기 위한 구두 개입에 나섰습니다. 특히 당시 총재였던 마리오 드라기는 유로화 강세가 만들어 내는 유로존 내 인플레이션 하락과 타이트한 금융여건으로 인해 양적완화를 멈추지 못하고 더 늘려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었습니다. 드라기 당시 총재는 “교역가중환율 기준으로 유로화가 너무 강해지면서 낮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심각한 우려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유로화 강세로) 분기 인플레이션이 0.5%포인트씩 낮아지면 자산매입 규모를 추가로 7000억유로씩 늘려야 한다”는 산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앞선 2017년과 마찬가지로, ECB는 연준의 AIT에 맞서 유로화 강세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당장 10일(현지시간)에 열리는 통화정책회의에서 ECB는 드라기 전 총재의 셈법대로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PEPP)을 비롯한 자산매입 규모를 더 늘릴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상황입니다. 미국과 유로존 금융여건지수 추이. ECB가 PEPP를 시행한 이후에도 두 지역에서의 금융여건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최근 ECB 통화정책회의 의사록을 보면 위원들은 “미국의 금융여건은 지속적으로 완화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유로존에서는 PEPP와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라는 바주카포가 동시에 가동되고 있는데도 그다지 완화적이지 않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합니다. 사실 지난 6월 이후 뉴욕증시 주요 지수들은 꾸준한 상승랠리를 이어갔지만, 유로존 대표지수인 유로스톡스50지수는 횡보 양상을 보였죠. ECB도 연준과 마찬가지로 돈 풀기를 계속했지만, 대규모 유동성 확대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이처럼 미국과 유로존에서 금융여건 차이를 큰 것은 미국 경제지표가 유로존에 비해 3~4개월 이상 앞서 회복되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실제 금융여건과 실제 구매관리자지수(PMI) 지표는 일정한 시차를 두고 움직이는 경향성이 보이고 있습니다. 국채시장도 마찬가집니다. 미국 국채시장에서 일드커브가 최대 200bp까지 가팔리지는(=스티프닝)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데요, 이 역시 향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유로존보다는 미국에서 더 강할 수 있다는 시장의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이런 가운데 파월 의장이 AIT를 도입하겠다고 했으니 두 지역 간 갭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죠. 미국의 경우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이 최근 5~10년간 평균 1.60~1.65% 수준에서 움직여 왔는데요. 만약 AIT를 도입한다면 앞으로 5~10년간 평균 근원 PCE 물가지수 상승률이 2.35~2.40%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미국과 유로존, 일본의 5년 만기 국채의 실질금리(명목금리-인플레이션). 일본이 월등히 높은 가운데 상대적으로 낮았던 유로존 실질금리가 반등하며 미국과 격차를 좁히고 있다.일단 이번주 ECB 회의에서 주목할 점은 ECB 실무진이 유로존 인플레이션 전망을 얼마나 하향 조정하느냐입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계속 높이려는 정책을 쓰는데, 유로존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반등하지 못한다면 유로존의 실질금리가 더 높아져 유로화 강세를 더 부추길 수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ECB로서도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쓸 수 있는 실탄이 부족하지만, 연준의 AIT 도입은 ECB로 하여금 통화부양의 강도를 미국과 맞추도록 강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확실하게 유로화 절상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이지만, 현재 유로존 예금금리가 마이너스(-)0.5%인 상황에서 금리를 더 내리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도 현재 시장은 내년 9월까지 기준금리가 10bp(0.01%포인트) 더 인하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만약 라가르드 총재가 유로화 강세의 부정적 영향을 언급한다면 이 기대치는 더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보다 현실적인 건 아무래도 비전통적 부양 수단인데요. 현재 1조3500억유로 규모인 PEPP를 내년 중반 이후까지 연장하고 그 규모를 더 늘릴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PEPP를 늘린다고 해서 유로존 금융여건이 완화된다는 자신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 경우 기대 인플레를 끌어 올리고 유로화를 낮추는 역할을 어느 정도 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전체 규모를 늘리기 전이라도 PEPP의 자산매입 속도를 우선 늘릴 수도 있을 겁니다. 실제 지난 5월에 452억유로였던 PEPP의 자산매입 규모는 7월에 249억유로, 8월에 198억유로로 줄어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울러 ECB 주요 인사들이 나서 반복적으로 구두 개입 등을 통해 시장 내 과열심리를 달래는데 치중하는 일도 병행할 겁니다. 이 같은 조치들이 현실화한다면 유로화는 다시 달러대비 약세 기조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다만 상상하긴 싫지만, 이런 조치로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지난 2008년 달러대비 엔화 가치가 너무 뛰자 일본은행(BOJ)도 어쩔 수 없이 강한 통화부양 조치를 내놨지만, 실효성 없이 만성적인 디플레이션 기조만 만들어 냈던 경험이 있습니다. ECB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 [이정훈의 마켓워치]<26>파월이 꺼내든 평균물가목표제(AIT)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현재의 사이클을 멈춰 세우고자 합니다.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연간 2%)를 밑도는 건 경제에 심각한 위험이 됩니다. (따라서) 앞으로 연준은 고용시장을 강하게 촉진시키는데 크게 집중할 것입니다.”지난 27일(현지시간) 각국 중앙은행장들의 연례회의인 잭슨홀미팅 기조연설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앞으로의 연준 통화정책 변화를 이 같이 천명했습니다. 이번 연례회의의 큰 주제가 `향후 10년의 길을 묻다: 통화정책에 대한 영향`이었으니, 파월 의장의 이 얘기는 적어도 미국 경제가 코로나19의 충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시기까지 연준 통화정책이 어떻게 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가이던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이날 이후 귀가 따갑게 들었겠지만, 파월 의장이 언급한 건 한 마디로 `유연한 형태의 평균물가목표제(AIT·Average Inflation Targeting)`입니다. 이어 그 연설 직후 연준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부연자료가 파월이 말한 AIT에 대한 가장 정확한 설명이 될 듯 한데요. 연준은 AIT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계속해서 2% 목표를 밑도는 기간 이후에는 물가가 일정기간(some time) 동안 2%를 완만하게(moderately)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하는 통화정책으로 수정한다”라구요. 연준이 2% 물가목표를 제시한 이후 실제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가 2%를 넘은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AIT에서는 과거에 물가가 2%를 밑돌았던 시기를 포함해 기간 평균으로 물가를 관리하겠다는 것이다.여기서 핵심은 파월이 말한 `유연한 형태`입니다. AIT를 도입하는데, 그 운용은 기계적이고 엄격하지 않게, 유연하게 하겠다는 겁니다. 어떻게 유연하게 하겠다는 걸까요. 연준의 설명을 감안하면,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를 넘어서도록 놔두겠지만 그 기간은 아주 길진 않은 `일정기간`이라고 못 받았구요. 특히 2%를 잠시 넘어서더라도 그 상승세가 너무 급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완만하게` 넘어서는 것만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겠다는 겁니다. 여기서 최근의 연준 통화정책 변천사를 대략 짚어보고 넘어 가는 게 이해를 도울 듯해서 잠시 시계를 41년 전인 1979년으로 돌려 보겠습니다. 당시는 오일쇼크로 인해 미국 경제가 고(高)물가, 저(低)성장이 겹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허덕였습니다. 이에 지미 카터 대통령은 폴 볼커를 연준 의장으로 앉혔습니다. 볼커 의장은 높은 물가를 때려잡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는 통화정책을 도입했습니다. 연 12%에 달하던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최고 20%까지 올리는 극단적 처방을 내렸죠.그러다 지난 2006년 취임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극복한 뒤 서서히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했는데요. 이 때 시장 충격을 줄이려다보니 연준 통화정책 결정을 보다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바꿔야 했습니다. 2012년 1월 버냉키 의장은 물가관리 목표치를 처음으로 연간 2%라는 수치로 제시했습니다. 이는 `향후 인플레이션이 연간 2%가 넘을 것으로 예상할 때 미리 기준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겠다`는 약속이었죠. 여기서 중요한 건, 인플레이션을 `예상할 때`, `미리` 통화정책을 쓴다는 겁니다. 이와 비교하면 파월의 AIT는 근본적인 정책의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볼커가 만든 `엄격한 물가 안정 위주의 통화정책`이 41년 만에 폐기된 것이고, 버냉키가 세운 `2% 목표가 예상될 때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통화정책`도 바꿔버린 것이니까요. 연준의 듀얼 멘데이트. 인플레를 2% 목표 이내로 유지하면서 실업률을 현재 추정하는 자연실업률인 4.1~4.2% 정도로 유지한다는 것이다.한 마디로, AIT는 지속적으로 너무 낮은 인플레이션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인플레가 일시적으로 2% 목표를 넘어도 용인할 수 있다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는 겁니다. 특히 중요한 건, 지금까지는 앞으로 몇년 간의 단기, 중기 물가 전망을 보고 인플레이션 여부를 판단했다면, 앞으로는 과거 물가지표까지도 정책의 결정요소로 반영하겠다는 얘깁니다.그렇다면 파월 의장과 연준은 왜 이런 변화를 감행하기로 한 걸까요. 그건 한 마디로,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부터 유로존 재정위기,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이어지는 잇딴 위기로 노동시장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음을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아는 연준의 이중 정책목표(dual mandate)는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입니다. 연준 표현으로는 `안정적인 물가와 최대한의 지속가능한 고용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경제여건을 촉진시키는 것`입니다. 말이 좋아 이중 정책목표이지, 이 둘을 동시에 달성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연준은 물가안정실업률(NAIRU)이란 지표를 애용해 왔습니다. NAIRU는 물가가 너무 오르거나 떨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수준의 이상적 실업률을 뜻합니다. 즉 인플레를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을 만큼의 실업률이고, 사실상의 완전고용 수준에서도 유지된다고 해서 자연실업률이라고도 하죠. 현재 이 수치는 4.1~4.2%라는 게 연준의 판단입니다. 디롱-서머스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내 인플레이션은 GDP 갭과 실업률 갭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여기서 실업률 갭을 판단하는 지표가 유휴노동력이다.이는 기본적으로 필립스곡선(Phillip`s curve)이라는 개념에서 비롯된 건데요. 영국 경제학자인 필립스는 실업률과 화폐임금 상승률 사이에 매우 안정적인 함수관계가 있다는 걸 모델로 제시합니다. 간단히 말해 이런 뜻입니다. 경제가 좋아져 실업률이 낮아지면 임금이 오르고 그로 인해 물가 상승률이 높아진다는 겁니다. 물론 그 반대도 성립하구요. 이 때문에 기존에 연준은 실업률이 낮아지기 시작하면 긴장하기 시작하죠. 혹여나 이 낮아진 실업률이 2% 목표를 넘어서는 인플레이션을 야기할까 봐서요. 그래서 NAIRU라는 지표를 예의주시하는 것이죠. 그런데 실상은 달랐습니다. 연준이 2% 목표를 제시한 지난 2012년 이후 연준이 목표로 삼는 물가지표인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상승률이 2%를 넘어선 건 두어 차례 손에 꼽을 정도였죠. 특히 2018년부터 실업률이 NAIRU에 도달했다는 관측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상황에서도 인플레는 위로 튀지 않았죠. 이처럼 필립스곡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이를 폐기하자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문제는 노동시장에서의 `유휴노동력(Slack)`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정설입니다. 연준 판단도 그렇구요. 유휴노동력이란 노동시장에 나와 있으면서도 생산활동에 동원되지 못해 놀고 있는 노동력을 말합니다. 이런 유휴노동력이 많다는 건, 실업률이 낮아져도 근로자들의 실제 임금 인상률이 크게 높아지지 않다는 것이고, 이는 물가 상승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 변화에 맞춰 연준은 앞으로 통화정책을 짤 때 NAIRU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실업률이 물가를 자극하는 힘이 떨어졌기 때문이죠. 대신 유휴노동력이 얼마나 해소되는지를 살피겠다는 겁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때 1000만명까지 늘어난 미국 내 유휴노동력은 코로나19 이전에도 100만명 가까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6개월 간 직장에 돌아가지 못하고 영구 실직한 미국인이 벌써 340만명에 이르니 유휴노동력은 다시 급증했을 것이고, 이를 해소하는 데에는 또다시 수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그 시점을 일러야 2022년 말 또는 2023년 이후까지로 보고 있습니다. 결국 이 시점까지 인플레이션이 상당히 큰 폭으로 일어나도록 연준은 통화량을 계속 늘리는 전략을 쓸 것입니다. 단, 변수는 파월 의장이 말한 `유연한`이라는 대목입니다. 그런 큰 폭의 인플레이션을 어디까지 허용해줄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연준이 평균적인 물가 상승률을 측정하는 기간이 얼마인가가 핵심이 될 겁니다. 그 논의가 이번 9월 FOMC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코로나19 영향만 생각하면 3년 정도 평균을 내도 되겠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물가 상황까지 감안한다면 10년까지 길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 기간이 길수록 연준의 통화부양도 길어질 수 있습니다.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동안 유휴노동력(=실업률 갭)이 물가 상승을 가로 막았다면 2014년부터 경기가 살아나면서 달러화 강세가 인플레를 억제해오고 있다. 다만 올들어서는 다시 유휴노동력 영향이 커졌다.그렇다고 해서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위험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기저효과를 감안해야 겠지만, 그래도 최근 미국 내에서 근원 PCE물가가 꿈틀대는 모습을 보이면서 장기 국채금리가 위로 올라가고 있으니 말이죠. 실제 하버연구소에 따르면 근래 낮은 인플레이션은 유휴노동력과 달러화 강세가 지속적으로 반복하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달러화 강세가 크게 누그러진 상황에서는 유휴노동력이 적당히 줄어들면 다시 인플레이션이 거세질 수 있다는 위험도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물가 상승률이 2%를 일시적으로 넘더라도 그 양상이 가파르게 나타난다면 언제든 금리 인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게 연준의 스탠스일 듯 합니다. 연준의 유연한 AIT 도입은 분명 달라진 경제여건에 대한 능동적 대응이며 근본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디테일을 봐야 한다는 겁니다. 여전히 이를 언제 도입할지, 물가 상승률 평균을 판단하는 기간을 몇 년으로 부여할지, 어떤 형태의 인플레 오버슈팅까지는 인내할 것인지 등이 불확실합니다. 다만 미 의회에서의 추가 재정부양 합의가 계속해서 늦춰지고 있다는 점에서 연준의 AIT 도입이 예상보단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또한 과거 테이퍼링 텐터럼(=긴축 발작)이라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연준으로서는 이번 대규모 통화부양책에서 발을 빼는 출구전략 역시 매우 장기간에 걸쳐 신중하게 진행할 겁니다.
    이정훈 기자 2020.09.05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현재의 사이클을 멈춰 세우고자 합니다.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연간 2%)를 밑도는 건 경제에 심각한 위험이 됩니다. (따라서) 앞으로 연준은 고용시장을 강하게 촉진시키는데 크게 집중할 것입니다.”지난 27일(현지시간) 각국 중앙은행장들의 연례회의인 잭슨홀미팅 기조연설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앞으로의 연준 통화정책 변화를 이 같이 천명했습니다. 이번 연례회의의 큰 주제가 `향후 10년의 길을 묻다: 통화정책에 대한 영향`이었으니, 파월 의장의 이 얘기는 적어도 미국 경제가 코로나19의 충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시기까지 연준 통화정책이 어떻게 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가이던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이날 이후 귀가 따갑게 들었겠지만, 파월 의장이 언급한 건 한 마디로 `유연한 형태의 평균물가목표제(AIT·Average Inflation Targeting)`입니다. 이어 그 연설 직후 연준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부연자료가 파월이 말한 AIT에 대한 가장 정확한 설명이 될 듯 한데요. 연준은 AIT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계속해서 2% 목표를 밑도는 기간 이후에는 물가가 일정기간(some time) 동안 2%를 완만하게(moderately)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하는 통화정책으로 수정한다”라구요. 연준이 2% 물가목표를 제시한 이후 실제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가 2%를 넘은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AIT에서는 과거에 물가가 2%를 밑돌았던 시기를 포함해 기간 평균으로 물가를 관리하겠다는 것이다.여기서 핵심은 파월이 말한 `유연한 형태`입니다. AIT를 도입하는데, 그 운용은 기계적이고 엄격하지 않게, 유연하게 하겠다는 겁니다. 어떻게 유연하게 하겠다는 걸까요. 연준의 설명을 감안하면,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를 넘어서도록 놔두겠지만 그 기간은 아주 길진 않은 `일정기간`이라고 못 받았구요. 특히 2%를 잠시 넘어서더라도 그 상승세가 너무 급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완만하게` 넘어서는 것만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겠다는 겁니다. 여기서 최근의 연준 통화정책 변천사를 대략 짚어보고 넘어 가는 게 이해를 도울 듯해서 잠시 시계를 41년 전인 1979년으로 돌려 보겠습니다. 당시는 오일쇼크로 인해 미국 경제가 고(高)물가, 저(低)성장이 겹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허덕였습니다. 이에 지미 카터 대통령은 폴 볼커를 연준 의장으로 앉혔습니다. 볼커 의장은 높은 물가를 때려잡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는 통화정책을 도입했습니다. 연 12%에 달하던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최고 20%까지 올리는 극단적 처방을 내렸죠.그러다 지난 2006년 취임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극복한 뒤 서서히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했는데요. 이 때 시장 충격을 줄이려다보니 연준 통화정책 결정을 보다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바꿔야 했습니다. 2012년 1월 버냉키 의장은 물가관리 목표치를 처음으로 연간 2%라는 수치로 제시했습니다. 이는 `향후 인플레이션이 연간 2%가 넘을 것으로 예상할 때 미리 기준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겠다`는 약속이었죠. 여기서 중요한 건, 인플레이션을 `예상할 때`, `미리` 통화정책을 쓴다는 겁니다. 이와 비교하면 파월의 AIT는 근본적인 정책의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볼커가 만든 `엄격한 물가 안정 위주의 통화정책`이 41년 만에 폐기된 것이고, 버냉키가 세운 `2% 목표가 예상될 때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통화정책`도 바꿔버린 것이니까요. 연준의 듀얼 멘데이트. 인플레를 2% 목표 이내로 유지하면서 실업률을 현재 추정하는 자연실업률인 4.1~4.2% 정도로 유지한다는 것이다.한 마디로, AIT는 지속적으로 너무 낮은 인플레이션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인플레가 일시적으로 2% 목표를 넘어도 용인할 수 있다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는 겁니다. 특히 중요한 건, 지금까지는 앞으로 몇년 간의 단기, 중기 물가 전망을 보고 인플레이션 여부를 판단했다면, 앞으로는 과거 물가지표까지도 정책의 결정요소로 반영하겠다는 얘깁니다.그렇다면 파월 의장과 연준은 왜 이런 변화를 감행하기로 한 걸까요. 그건 한 마디로,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부터 유로존 재정위기,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이어지는 잇딴 위기로 노동시장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음을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아는 연준의 이중 정책목표(dual mandate)는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입니다. 연준 표현으로는 `안정적인 물가와 최대한의 지속가능한 고용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경제여건을 촉진시키는 것`입니다. 말이 좋아 이중 정책목표이지, 이 둘을 동시에 달성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연준은 물가안정실업률(NAIRU)이란 지표를 애용해 왔습니다. NAIRU는 물가가 너무 오르거나 떨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수준의 이상적 실업률을 뜻합니다. 즉 인플레를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을 만큼의 실업률이고, 사실상의 완전고용 수준에서도 유지된다고 해서 자연실업률이라고도 하죠. 현재 이 수치는 4.1~4.2%라는 게 연준의 판단입니다. 디롱-서머스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내 인플레이션은 GDP 갭과 실업률 갭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여기서 실업률 갭을 판단하는 지표가 유휴노동력이다.이는 기본적으로 필립스곡선(Phillip`s curve)이라는 개념에서 비롯된 건데요. 영국 경제학자인 필립스는 실업률과 화폐임금 상승률 사이에 매우 안정적인 함수관계가 있다는 걸 모델로 제시합니다. 간단히 말해 이런 뜻입니다. 경제가 좋아져 실업률이 낮아지면 임금이 오르고 그로 인해 물가 상승률이 높아진다는 겁니다. 물론 그 반대도 성립하구요. 이 때문에 기존에 연준은 실업률이 낮아지기 시작하면 긴장하기 시작하죠. 혹여나 이 낮아진 실업률이 2% 목표를 넘어서는 인플레이션을 야기할까 봐서요. 그래서 NAIRU라는 지표를 예의주시하는 것이죠. 그런데 실상은 달랐습니다. 연준이 2% 목표를 제시한 지난 2012년 이후 연준이 목표로 삼는 물가지표인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상승률이 2%를 넘어선 건 두어 차례 손에 꼽을 정도였죠. 특히 2018년부터 실업률이 NAIRU에 도달했다는 관측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상황에서도 인플레는 위로 튀지 않았죠. 이처럼 필립스곡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이를 폐기하자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문제는 노동시장에서의 `유휴노동력(Slack)`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정설입니다. 연준 판단도 그렇구요. 유휴노동력이란 노동시장에 나와 있으면서도 생산활동에 동원되지 못해 놀고 있는 노동력을 말합니다. 이런 유휴노동력이 많다는 건, 실업률이 낮아져도 근로자들의 실제 임금 인상률이 크게 높아지지 않다는 것이고, 이는 물가 상승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 변화에 맞춰 연준은 앞으로 통화정책을 짤 때 NAIRU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실업률이 물가를 자극하는 힘이 떨어졌기 때문이죠. 대신 유휴노동력이 얼마나 해소되는지를 살피겠다는 겁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때 1000만명까지 늘어난 미국 내 유휴노동력은 코로나19 이전에도 100만명 가까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6개월 간 직장에 돌아가지 못하고 영구 실직한 미국인이 벌써 340만명에 이르니 유휴노동력은 다시 급증했을 것이고, 이를 해소하는 데에는 또다시 수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그 시점을 일러야 2022년 말 또는 2023년 이후까지로 보고 있습니다. 결국 이 시점까지 인플레이션이 상당히 큰 폭으로 일어나도록 연준은 통화량을 계속 늘리는 전략을 쓸 것입니다. 단, 변수는 파월 의장이 말한 `유연한`이라는 대목입니다. 그런 큰 폭의 인플레이션을 어디까지 허용해줄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연준이 평균적인 물가 상승률을 측정하는 기간이 얼마인가가 핵심이 될 겁니다. 그 논의가 이번 9월 FOMC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코로나19 영향만 생각하면 3년 정도 평균을 내도 되겠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물가 상황까지 감안한다면 10년까지 길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 기간이 길수록 연준의 통화부양도 길어질 수 있습니다.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동안 유휴노동력(=실업률 갭)이 물가 상승을 가로 막았다면 2014년부터 경기가 살아나면서 달러화 강세가 인플레를 억제해오고 있다. 다만 올들어서는 다시 유휴노동력 영향이 커졌다.그렇다고 해서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위험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기저효과를 감안해야 겠지만, 그래도 최근 미국 내에서 근원 PCE물가가 꿈틀대는 모습을 보이면서 장기 국채금리가 위로 올라가고 있으니 말이죠. 실제 하버연구소에 따르면 근래 낮은 인플레이션은 유휴노동력과 달러화 강세가 지속적으로 반복하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달러화 강세가 크게 누그러진 상황에서는 유휴노동력이 적당히 줄어들면 다시 인플레이션이 거세질 수 있다는 위험도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물가 상승률이 2%를 일시적으로 넘더라도 그 양상이 가파르게 나타난다면 언제든 금리 인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게 연준의 스탠스일 듯 합니다. 연준의 유연한 AIT 도입은 분명 달라진 경제여건에 대한 능동적 대응이며 근본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디테일을 봐야 한다는 겁니다. 여전히 이를 언제 도입할지, 물가 상승률 평균을 판단하는 기간을 몇 년으로 부여할지, 어떤 형태의 인플레 오버슈팅까지는 인내할 것인지 등이 불확실합니다. 다만 미 의회에서의 추가 재정부양 합의가 계속해서 늦춰지고 있다는 점에서 연준의 AIT 도입이 예상보단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또한 과거 테이퍼링 텐터럼(=긴축 발작)이라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연준으로서는 이번 대규모 통화부양책에서 발을 빼는 출구전략 역시 매우 장기간에 걸쳐 신중하게 진행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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