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0억원어치 팔아치운 아트부산…운영·관리는 허점[아트&머니]

'아트부산 2022' 폐막
채지민·이희준 등 80년대 작가 첫날 완판
RM 효과 김희수, 개막 3시간만 솔드아웃
젊은 MZ작가, 미술시장 주요작가군 부상
관람객 10만2천명, 매출 760억원 달했으나
개막 전 대표해임 주최측, 운영허점 곳곳
  • 등록 2022-05-16 오전 12:01:00

    수정 2022-05-16 오전 11:39:44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연 ‘아트부산 2022’의 전경. 갤러리현대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이 로버트 인디애나의 입체작품 ‘1부터 0까지’(10개의 숫자·1978∼2003) 등을 둘러보고 있다. 엔데믹 덕에 나들이 나선 관람객까지 겹쳐 전시장은 내내 북적였으나, 작품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뛰고 달리며 난타전 직전까지 갔던 예전 아트페어 전경은 연출되지 않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부산=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살 작품이 없네.” 빠른 걸음으로 곁을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트부산 2022’가 열린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 삼삼오오 함께 이동하는 관람객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은 때론 정확한 ‘진단’이 되기도 한다. 사실이 그랬다. ‘딱히 살 작품이 없었다’는 말이 맞더란 뜻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었다. 하나는 중저가작품, 가격으로 볼 때 몇백만원대부터 몇천만원대까지의 작품은 첫날부터 동나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었던’ 터. 다른 하나는, 그 외에 남은 작품이라곤 수십억대를 단 것들이라 보통의 관람객이나 컬렉터가 찜 한번 하기도 버거울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러니 ‘살 작품이 없네’란 푸념이 터질 수밖에.

‘아트부산 2022’가 폐막했다.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나흘간 부산을 달군 제11회 미술장터에는 10만 2000여명의 관람객이 찾아 북적였다. 133개 갤러리(국내 101개, 해외 32개)가 5000여점을 내놓은 이번 아트페어에서 “관람객들이 사들인 미술품은 760억원어치”라고 아트부산 측은 전했다. 이로써 지난해 ‘아트부산 2021’에서 기록한 ‘관람객 8만여명, 작품판매액 350억원’을 넘겨, 엔데믹 덕에 나들이 인파까지 겹치면서 여전히 식지 않은 미술시장의 광풍을 증명한 셈이다.

‘아트부산 2022’의 학고재갤러리 전경. 앞쪽에 작가 정영주의 ‘저녁 105’(2021·왼쪽)가 걸렸다. 100호 규모의 이 작품은 첫날 5200만원에 팔렸다. 뒤로 김현식 작가의 노란색 입체회화 ‘현-선 피스트(玄-Sun Feast·2022, 80×80×7㎝·오른쪽)가 보인다. 9점 연작은 단 한 명의 컬렉터가 사갔다. 한 점당 2200만원씩 모두 2억원 상당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올해 ‘아트부산 2022’의 분위기라면 단연 중저가 가격군을 형성한 ‘젊은 작가’와 그들의 가치를 먼저 알아보는 ‘젊은 컬렉터’의 부상이다. 이른바 MZ세대인 20∼30대를 중심으로 40대인 작가·컬렉터의 활약이 도드라졌단 얘기다. 이는 지난해부터 미술시장의 판도 변화를 이끌어온 젊은 컬렉터가 ‘칼을 쥔’ 위치에 섰다는 동시에, 이젠 그들의 전폭적인 호응을 얻은 젊은 작가들이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주요 작가군’으로 떴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중저가 젊은 작가 거래 활발, 고가 유명작가는 주춤

덕분에 ‘팔릴 만한 작가’의 작품들은 일찌감치 ‘완판’ 대열에 들어섰다. 아뜰리에아키에선 대표작가 채지민(39)과 정성준(41)의 작품을 첫날 모두 ‘털었다’. 채 작가는 ‘그건 내 알 바가 아님’(It’s Not My Business·2022) 등 50호 2점을 600만원씩에, 100호 2점을 1100만원씩에 파는 등 5점을 완판했다. 정 작가는 ‘와우! 결국에는’(Wow! Finally!·2022) 등 20호 600만원, 100호 2800만원 등 6점을 모두 팔았다.

‘아트부산 2022’의 아뜰리에아키 전경. 앞쪽으로 작가 정성준의 ‘어떻게 느낄지 내가 결정할 거고, 오늘은 행복할 거고’(I’ll Decide How I Fell, I’ll Be Happy Today·2022·왼쪽)와 ‘와우! 결국에는’(Wow! Finally!·2022)이 나란히 걸렸다. 각각 2800만원과 600만원에 팔려나가는 등 정 작가의 작품 6점은 모두 첫날 완판됐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선화랑에서 출품한 작가 이영지(47)의 14점도 ‘솔드아웃’을 신고했다. 하얀 새가 등장해 사람에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는 그림으로 인기가 높은 작가는 그중 20호 크기 9점(600만원)을 비롯해 첫날에만 13점을 컬렉터의 손에 들려보냈다.

갤러리애프터눈이 단 한 명의 작가 김희수(38)의 작품 121점만으로 채운 부스에선 ‘즐거운 비명’이 터졌다. 방탄소년단 RM이 샀다고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탄 작가의 작품이 첫날 개막 3시간 만에 ‘완판’을 알리면서 갤러리에 2억여원의 실적을 쥐여준 덕이다. 50만원 상당의 드로잉 100점과 호당 30만원인 캔버스화 21점 등이 순식간에 동났다. 갤러리 측은 “주로 3040 컬렉터가 대거 방문해 남김없이 사갔다”고 말했다.

‘아트부산 2022’의 선화랑 전경. 향불작가 이길우의 작품(‘끈적한, 갈증해소’ 2021, ‘날고 싶은 새’ 2020)들 사이로 작가 이영지의 ‘모든 오늘이 너였으면 해’(2022) 등 20호 크기 9점이 보인다. 특히 이영지 작가는 첫날 600만원씩에 판 9점 등을 비롯해 14점 모두를 완판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희준(34) 작가의 크고 작은 회화 7점도 ‘싹쓸이’ 대열에 섰다. 개막 첫날 ‘오픈 5분 만에 완판’이란 신기록을 쓴 이 작가의 작품들은 국제갤러리에 걸렸는데, 작은 그림 ‘플로팅 플로어 No 16’(Floating Floor No. 16·2022) 등은 200∼300만원씩에, 대작 ‘청동여인상’(Bronze Woman·2021)은 4000만원에 팔려나갔다.

‘팔릴 만한 작가’들에는 젊은 작가만 있진 않았다.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공식 특별전 초대작가로 나서 주목을 받은 작가 전광영(78)은 붉은색 120호 ‘집합’(Aggregation 15-DE087)을 2억 2000만원에 파는 등, 갤러리조은에 건 4점 모두를 판매했다. 또 국제갤러리에서 출품한 유영국(86)의 ‘워크’(1990)는 15억원에, 하종현(87)의 ‘접합 09-010’(2009)은 7억 7000만원에, 아시아 최대 갤러리로 꼽히는 홍콩의 탕컨템포러리아트는 중국작가 자오자오의 ‘하늘’(Sky·2021)을 8000만원대에 새 주인에게 넘겼다.

‘아트부산 2022’의 갤러리조은 전경.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공식 특별전 초대작가로 나서 주목을 받은 작가 전광영(78)은 붉은색 120호 ‘집합’(Aggregation 15-DE087)은 연신 관람객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작품은 2억 2000만원에 팔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반면 쿠사마 야요이의 60억원대 ‘호박’ 부조작품,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40억원대 회화작품, 파블로 피카소의 50억원대 회화작품, 로버트 인디애너의 30억원대 입체작품 등은 판매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미술관급 전시로 눈길…닷새 전 대표 해임 ‘애매한 사유’

굳이 작품을 사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전체적으로 ‘볼거리 많은’ 장터의 역할은 톡톡히 했다. 군데군데 마련한 ‘미술관급 전시’가 그거다. 그중 아시아미술시장에 처음 진출했다는 미국 그레이갤러리가 ‘특별전’ 형식으로 들고 나온 데이비드 호크니의 가로 8.7m 대작 ‘전시풍경’(2018) 앞은 ‘아트부산’을 찾은 거의 모든 관람객이 들른 핫플레이스가 됐다. 국내 갤러리바톤이 내놓은 김보희의 가로 5.2m ‘투워즈’(Towards·2021), 유려한 몸짓의 학을 형상화해 전시장 초입부터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이상수의 ‘플라밍고’(Flamingo·2022), 프랑스 다국적 화랑인 오페라갤러리가 전시한 앤서니 제임스의 입체작품 ‘12면체 솔라 블랙’(2019) 등이 인기를 끌었다.

‘아트부산 2022’의 오페라갤러리 전경. 프랑스 다국적 화랑인 오페라갤러리가 전시한 앤서니 제임스의 입체작품 ‘12면체 솔라 블랙’(2019) 앞에 관람객들이 오래 머물렀다. LED 조명과 유리 등이 뿜어내는 신비한 빛을 만든 작품은 아트페어 속 ‘미술관급 전시’ 중 하나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아트부산 2022’에서 갤러리바톤이 ‘특별전’ 형식으로 전시한 작가 김보희의 가로 5.2m ‘투워즈’(Towards·2021)에도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하지만 아트부산 주최측이 빚은 운영상 허점은 곳곳에 드러났다. 이미 한 달 이전부터 ‘아트부산 2022’의 얼굴마담 격으로 홍보됐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575만달러(약 70억원)짜리 ‘퍼플 레인지’(Purple Range·1966)가 결국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 주최측은 이에 관한 어떤 설명이나 해명도 내놓질 않았다. 대신 ‘대타로 나선’ 피카소의 ‘남자의 얼굴과 앉아 있는 누드’(1964)가 400만달러(약 51억원)를 달고 관람객을 맞을 뿐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자료라 할 관람객 수를 집계한 과정도 석연치 않다. 아트부산 측은 12일 1만 2000명, 13일 2만 5000명, 14일 3만 5000명, 15일 3만명 등으로 방문한 관람객 수를 합산했다. 하지만 첫날 12일에는 VVIP 프리뷰(1200장)와 VIP(4500장) 프리뷰만 있었던 터. 티켓 1매당 동반 1인이 입장해 단 1인의 결원이 없었다고 해도 1만 1400명만 입장할 수 있었던 거다. 결과는 둘 중 하나로 추정할 수밖에. 발표내용을 웃도는 티켓 발매가 있었던지, 계산을 부풀렸던지.

아트부산은 개막 닷새 전 돌연 변원경 대표이사를 해임하는 초강수로 구설에 올랐다. 이미 제작한 도록에 인쇄한 대표이사의 인사말을 가리고 운영진 명단 등에서도 이름을 삭제하는 등 ‘흔적 지우기’로 ‘대표 없음’을 알리기 바빴다. 하지만 역시 해임사유 등에 관해선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 외에 공식적인 언급이 없어 아트페어가 끝난 지금까지도 억측만 만들어내고 있다.

‘아트부산 2022’에서 미국 그레이갤러리가 내놓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시풍경’(2018). 870×270㎝ 규모의 작품 앞은 ‘아트부산’을 찾은 거의 모든 관람객이 들른 핫플레이스가 됐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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