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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의 개인소비지출(PCE) 물가가 거의 31년 만에 가장 큰 폭 치솟았다. 글로벌 공급망 대란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공포가 극에 달하는 가운데 나온 수치다. 일각에서는 1980년대 초 같은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도래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10월 미국 PCE 물가, 5% 폭등
24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올해 10월 PCE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5.0% 상승했다. 지난 1990년 11월(5.1%) 이후 거의 31년 만의 최고치다. 지난 6월 이후 넉달간 4.0%→4.1%→4.2%→4.4%로 4%대에서 움직였다가, 5%대 레벨로 올라온 것이다.
PCE 물가는 오일쇼크가 경제를 강타한 1974년과 1980년 당시 두 자릿수까지 치솟았다가 안정화했고, 다시 1990년 10월 5.2%까지 폭등했다. 이때 이후로는 줄곧 2.5% 아래에서 움직였다.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PCE 물가가 지금보다 더 오른다면, 사실상 1980년대 초 당시 초인플레이션 시대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에너지 가격은 1년 전보다 30.2% 폭등했다. 내구재(8.8%)와 비내구재(6.8%) 역시 치솟았다. 식료품 가격은 4.8% 올랐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PCE 가격지수는 1년 전과 비교해 4.1% 뛰었다. 이 역시 1991년 1월(4.2%) 이후 거의 31년 만에 가장 높았다. 근원 물가는 1983년 9월(5.1%) 이후 5%대 레벨로 오른 적이 없다. 근원 물가도 1980년대 닥쳤던 인플레이션 파고에 근접한 셈이다.
또다른 주요 지표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노동부 집계를 보면, 올해 10월 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6.2%다. 1990년 12월(6.3%) 이후 최고치다. 월가에서는 7%대 진입이 딴 세상 얘기가 아니라는 관측이 있다. 1982년 2월(7.6%) 이후 볼 수 없던 수준이다.
미시건대 집계 기대인플레 4.9%
이뿐만 아니다. 이날 나온 미시건대 소비자심리지수 확정치 내 향후 12개월 기대인플레이션은 4.9%로 나타났다. 2008년 이후 가장 높다. 기대인플레이션은 미래의 물가 심리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과거 물가 지표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의 물가가 예상보다 치솟고 있는 건 글로벌 공급망 대란이 지속하는 와중에 코로나19 사태로 억눌렸던 소비가 폭발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 연휴가 몰린 연말로 갈수록 물가는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연방준비제도(Fed)가 추후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 속도를 올리는 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연준은 올해 11~12월에 한해 월 150억달러씩 채권 매입을 축소하는 테이퍼링을 실시하기로 했는데, 내년부터는 매입량을 더 많이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준금리 인상 시기도 빨라질 수 있다.
특히 PCE 물가는 연준이 통화정책을 할 때 참고한다는 점에서 주목도가 크다. 연준은 경제 전망을 할 때 CPI가 아닌 PCE 전망치를 내놓는다. 연준의 물가 목표치는 연 2.0%다. 미시건대 기대인플레이션 역시 통화정책의 본질이 안정적인 기대인플레이션 관리라는 점에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