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기업 사냥꾼'과 '오너 리스크'가 맞붙었을 때

  • 등록 2021-09-01 오전 4:00:00

    수정 2021-09-01 오전 4:00:00

[이데일리 조해영 기자] 여전히 사모펀드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 멀게는 론스타가 있었고 가까이는 라임이 있었다. 둘 다 정확히는 사모펀드 가운데 헤지펀드에 속하고, 그래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와 이 사건들은 무관하지만 어쨌거나 이미지는 강력하다. 물론 PEF 운용사들 역시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하고 가치를 높여 판다는 이유로 기업 사냥꾼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남양유업 본사 입구의 간판 (사진=연합뉴스)
국내 주요 PEF 운용사 가운데 한 곳인 한앤컴퍼니(한앤코)가 소송전에 돌입했다. 남양유업(003920) 지분을 인수하기로 하고 오너 일가와 주식매매계약까지 체결했지만, 상대방이 사전 상의 없이 주주총회를 거래종결일 이후로 연기하고 거래종결장소에서 나타나지 않는 ‘노쇼(No show)’를 했다는 주장이다.

이뿐 아니라 매도인 측이 계약서에는 없던, 오너 일가를 위한 무리한 요구조건을 한앤코에 내걸며 거래계약의 이행을 거부하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돌아와 원래 약속대로 계약에 성실히 임하라는 게 한앤코가 내건 소송의 골자다. 한앤코는 입장문에서 “언제든 계약이행을 결심하면 거래가 종결되고 소송도 자동 종료된다”고 퇴로를 열어뒀다.

기업사냥꾼이 PEF 운용사의 부정적 수식어였다면, 남양유업 앞에 붙었던 부정적 수식어는 ‘오너 리스크’다. 자사 유제품인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허위광고를 낸 ‘불가리스 사태’가 결정적이기는 했으나 남양유업은 이전에도 대리점 갑질 사건에 따른 불매운동 같은 농도 짙은 오너 리스크에 노출됐던 기업이다.

이 때문에 한앤코가 남양유업 지분을 인수한다는 소식이 들린 후 남양유업의 주가는 올랐다. PEF 운용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도, 지금의 오너 일가가 아닌 누군가가 남양유업이라는 기업을 탈바꿈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일 것이다.

홍원식 회장은 이번 거래를 깰 생각이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오너 일가의 실제 행보는 다르다. 법무법인을 선임하는가 하면, 회삿돈 유용 의혹이 불거지면서 물러났던 2세가 주식매매계약 체결 직전 복귀하기도 했다. 홍 회장 역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던 다짐과 달리 최근까지 회사에 출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이든 PEF 운용사든, 자본시장에 참여하는 주체들은 ‘상호 신뢰’라는 가치에 합의하고 출발선에 선다. 남양유업은 “한앤코가 제소를 언론에 공표하면서 계약상 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해 유감”이라고 밝혔지만, 그에 앞서 약속을 깨며 사태를 촉발한 책임은 남양유업에 있다는 사실을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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