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藝인] 벌거숭이 이 사내는 왜 돌밭을 그리 뛰어다녔을까

갤러리현대 '아임 낫 어 스톤' 전의 박현기
백남준 잇는 '한국 비디오아트 선구자'
20년 걸친 기념비적 대표작 집중 조명
"돌로써 인간과 자연 연결하는 매개자"
설치·퍼포먼스 등 실험적 작품 쏟아내
돌밭·돌탑…출품작10점 작품세계 망라
  • 등록 2021-05-18 오전 3:30:00

    수정 2021-05-18 오전 5:29:44

박현기가 1983년 대구 수화랑 개인전에서 돌무더기를 늘어놓은 작품 ‘무제’(1983) 위에서 펼친 퍼포먼스(왼쪽). 2021년 서울 갤러리현대가 작가 없는 공간을 그대로 재현했다. 이번 전시테마인 ‘아임 낫 어 스톤’(I’m Not a Stone)은 당시 작가의 몸에 쓴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전시에 나온 영상 중 한 장면을 다시 촬영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벌거숭이 사내가 크고 작은 돌무더기 사이를 겅중겅중 뛰어다닌다. 그러다 멈춰서더니 돌을 내려다본다. 그도 잠시, 돌 틈에 웅크렸다가 엎드렸다가 훌렁 누워 버리기도 한다. ‘기인의 수련’ 장면을 몰래 훔쳐본 듯하달까. 그런데 사내의 움직임을 따라 얼핏얼핏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있다. 등과 배에 낙서하듯 써놓은 그것은 ‘아임 낫 어 스톤’(I’m Not a Stone). ‘나는 돌이 아니다’란다. 그래, 우린 당신이 돌이 아닌 줄은 알겠는데, 돌이 구르는 듯한 당신의 이 행위는 도대체 뭔지.

1983년 대구의 수화랑. 관람객도 없는 전시장에서 나체로 오로지 돌들과 조우한 이 사내는 박현기(1942∼2000)다. 백남준(1932∼2006)의 뒤를 잇는 ‘한국 비디오아트 선구자’로 꼽히는 바로 그다. 38년 전 이날의 ‘기행 아닌 기행’은 박현기가 늘 품었던 예술세계를 집대성한 퍼포먼스였다. 언어와 사물, 사물과 인간, 인간과 환경, 환경과 미술의 관계를 극적으로 연결한 그것이니까. 이 관계에 등장한 결정적인 오브제가 있으니 ‘돌’이다. 원체 생전의 박현기와 돌은 한몸처럼 움직였던 거다. 작품마다 붙어 다녔으니 특별한 기억이 없을 수가 없었고, 본능처럼 서로 끌어당기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굳이 그날의 기억을, 아니 그날의 돌을 헤집어낸 건 우연보다 강한 인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가 작가 타계 후 또 한번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2010년 10주기를 겸한 회고전으로 연 ‘한국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박현기’가 처음이었다. 2017년 두 번째 전시에선 좀 좁고 깊게 들여다봤다. 한지에 오일스틱으로 그린 표현주의 회화와 드로잉을 대거 끄집어냈다. 이번 세 번째는 ‘아임 낫 어 스톤’이란 ‘그때 그 문구’를 가져왔다. 1978년부터 1997년까지 20년에 걸친 절정기의 박현기를 드러내는데, 그이의 돌을 내보이는데 아마 이만한 수식이 없다 싶었을 거다. 여기에 얹은 또 다른 박현기 키워드인 TV브라운관. 이 둘의 융화로 거대한 설치작품 10여점을 꾸린 전시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지난해 미처 챙기지 못한 20주기전을 겸하려 했는지, 상업화랑이 쉽게 결단하기 어려운 미술관급으로 꾸몄다.

박현기가 1978년 쌓아올린 돌탑 ‘무제’(오른쪽) 3점이 1983년 작가가 대구 수화랑 개인전에서 벌인 퍼포먼스 영상을 지켜보고 있다. 돌탑은 넓적하고 둥근 돌 사이로 갈색빛 도는 합성수지 인공돌을 교차해 제작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강원도서 공수한 돌들로 재현한 박현기식 탑

그래서 전시장은 온통 돌이다. 생전 박현기가 유희로 희망으로 곁에 뒀던 기념비적 ‘돌 작품’을 재현하는 것으로 그이의 예술세계를 확인한 거다. 지난한 퍼포먼스를 펼쳤던 돌밭의 재현(‘무제’ 1983, 2015 재제작)이 핵이라 할 만하다. ‘나는 돌이 아니다’가 시작된 바로 그곳. 어디선가 밀려든 듯한 돌무더기가 전시장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그 가운데 사람이 몇 발짝 옮겨다닐 정도의 공간을 치워뒀다. 그 위로 천장에서 내려온 긴 줄이 보이는데, 마이크다. 1983년 당시 박현기가 작업실에서 수화랑까지 걸어가며 녹음했다는 주변소리, 2021년 지금 갤러리에서 관람객이 전시장을 울리는 발자국소리를 결합해 증폭한 장치다.

돌이 층을 이룬 돌탑(‘무제’ 1978, 2015 재제작) 3점도 옮겨놨다. 넓적하고 둥근 돌 사이로 갈색빛 도는 합성수지 인공돌을 교차해 쌓은 모양인데. 이는 사실 박현기가 돌과의 본격적인 교우를 시작한 분기점이기도 하다. 1978년 서울화랑서 연 개인전에 돌탑을 처음 발표한 이후 평생 작업에 돌을 주·조연으로 삼아 왔으니까.

돌밭과 돌탑이 자연에 가까운 데 비해, 문명 속으로 돌을 확 끌어당긴 작품도 있다. 박현기의 시그니처라 할, 돌과 TV브라운관이 드라마틱한 만남을 시도한 ‘TV 돌탑’(‘무제’ 1988, 2021 재제작)이다. 바닥에 바위 같은 돌을 두 장 겹쳐 깔고 그 위로 대형 브라운관 4대를 차곡차곡 올렸다. 꼭대기에는 혹여 브라운관이 날아갈까, 또 다른 넓적한 돌을 올려 꾹 둘러뒀는데. 모니터 화면까지도 돌 풍경인 이 작품은 높이가 3m에 달한다. 갤러리는 “작가 사후 처음 재현했다”고 귀띔했다.

박현기가 1988년 제작한 TV돌탑 ‘무제’. 2021년 다시 제작한 작품이다. 두툼한 돌을 두 장 겹쳐 깔고 그 위로 대형 브라운관 4대를 올렸다. 꼭대기에 ‘누름돌’까지 높이 3m에 달한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덕분에 돌을 공수하는 일은 온전히 갤러리 식구들의 노동이었나 보다. 오래전 돌밭 퍼포먼스를 펼친 낙동강변 돌까지는 못 구한다 치고, 강원도를 2주 동안 헤집고 다니며 TV브라운관을 감당할 ‘세상에서 가장 똘똘한 돌’을 찾아 헤맸다니. 이외에도 전시는 박현기 비디오작업의 결정판이라 할 말년 대표작 ‘만다라 연작’(1997∼1998) 4점과 두툼한 자재용 나무판을 조립해 세운 공간(‘무제 ART’ 1986, 2021 재제작)을 들여 실험과 도전으로 점철된 ‘박현기 세상’의 퍼즐을 완성한다.

“조각가처럼 비디오를 잘 주물렀다”

‘한국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란 수식은 박현기에게 지향인 동시에 질곡이었던 듯하다. 백남준을 따르기도 넘어서기도 해야 했으니까. 사실 그 과정은 되레 자연스러웠다. 애써 몸부림치지 않아도 됐다는 뜻이다. 첨단기술로 기발한 실체를 꺼냈던 백남준과 달리 박현기는 나무·돌·물 등 자연으로 기술과의 변증법적 합에 몰두했으니. 백남준이 보는 것을 보이려 했다면, 박현기는 생각하는 것을 보이려 했다고 할까. 성과 속의 영상을 빠르게 겹쳐낸 그이의 ‘만다라’를 보고 백남준은 “조각가처럼 비디오를 잘 주물렀다”고 했다지 않나.

박현기의 ‘만다라 연작’(1997∼1998) 중 한 점(왼쪽)과 전시 전경. 비디오작업의 결정판이라 할 말년의 역작이다. 붉은 옷칠을 한 의례용 헌화대 위에 투여한 영상은 기하학적 불교도상과 포르노그래피 등이 어지럽게 겹쳐지며 무한히 반복재생된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갤러리현대).
그런데 문제는 늘 작업이 아닌 현실이었다. 정작 생전에는 작품 한 점 팔지 못했다니. 다재다능한 이 예술가와 가족을 먹여 살린 건 인테리어였다. 말이 좋아 ‘인테리어 디자이너’지, 마음은 돌밭에 가 있는 그이에게 남의 집 꾸미는 일이 내켰을리 없지 않겠나. 어찌 됐든 홍익대 미대에서 전공한 회화와 건축(서양화과로 입학해 건축학과로 졸업했다)은 그에게 꿈과 밥벌이 두 가지를 줬던 셈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돌이었을까. 박현기에게 돌은 “태곳적 시간과 공간을 포용하는 자연”이었단다. 여덟 살쯤 됐던 한국전쟁 때 그이의 영혼을 뒤흔들어놨던 장면이 있었단다. 피란길 고갯마루 성황당에 쌓인 돌무더기 전경. 피란민은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멀리서부터 집어든 돌을 하나둘씩 던지며 그 앞을 지났다는 건데. 미감보다 더 지독한 신념을 봤던 거다. 그래서 이미 알았을 거다. 아무리 벌거숭이로 돌과 뒹굴어도 자신은 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저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매개자로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한다는 것을.

쉰여덟에 위암으로 세상을 일찍 떠났다. 아까운 나이였다. 실험의식 강한 열정의 미술가로 보나 도전의식 뻗친 고집의 경상도 사내로 보나. 전시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서 연 ‘박현기-아임 낫 어 스톤’ 전 전경 부분. 가까이에 돌탑 ‘무제’(1978) 3점이, 또 멀리 돌무더기를 펼쳐놓은 ‘무제’(1983)가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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