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물방울'이 불덩이 돼서야

  • 등록 2021-03-11 오전 3:30:01

    수정 2021-03-11 오전 3:30:01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미술 작가는 물론, 컬렉터까지 관심을 갖는 일이 있다. ‘한우물’이다. 작품세계란 게 말이다. 한길만 파고드는 게 맞나, 변화를 주는 게 맞나 하는. 섣불리 ‘옳다’ ‘그르다’를 따질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대화에 항상 등장하는 이가 있으니, 김창열(1929∼2021) 화백이다. “50년 동안 물방울만 그린 분도 있는데…”로 마무리하기 일쑤인 거다.

그렇게 계속해서 캔버스에 똑똑 떨어질 것 같던 물방울이 지난 1월 멈췄다. 새해 벽두부터 화백의 타계를 알린 비보는 더 이상 ‘새로운’ 물방울을 볼 수 없단 통보였다. 동시에 화백의 물방울이 한정판이 된다는 신호기도 했다.

미술품 경매시장이 먼저 움직였다. 지난 두 달간 케이·서울옥션에선 각각 4점, 8점의 ‘물방울’을 거래했다. 추모 그 이상이었다. 결과가 훌륭했으니까. 12점이 싹쓸이 판매된 거다. 그뿐인가. 2월 서울옥션에선 ‘작가 경매 최고가 기록’(5억 9000만원)도 갈아치웠다. 추정가 4억 8000만∼7억원을 훌쩍 뛰어넘은 10억 4000만원짜리 ‘물방울’(1977)이 탄생한 거다.

대중에게 쉽고 친밀했다. 게다가 다작작가기도 했고. 덕분에 경매엔 빠짐없이 화백의 작품이 올라왔더랬다. 지난해 205점, 2019년 98점, 2018년 106점 등. 그렇다고 지금처럼 팔려나간 건 아니다. 출품수 대비 낙찰수를 계산한 낙찰률은 70%대. 지난해 75.2%, 2019년 72.45%, 2018년 76.42%였다.

한때의 바람이 아니었다. 이 여세가 지난주 ‘화랑미술제’로 이어졌으니까. 최소 4∼5개 화랑이 ‘물방울’ 연작을 내걸고 관람객의 지갑을 열게 했다. 수천만원부터 수억원대까지, 굳이 크기나 형태를 고려했던 건 아닌 모양이다. 여기에 오는 17일 케이옥션 ‘3월 경매’에는 화백의 ‘물방울’ 9점이 대기 중이다. 추정가 1200만∼3500만원의 1호 ‘물방울’(1977)부터 추정가 3억∼4억원의 30호 ‘물방울’(1979)까지.

상황이 이렇자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에선 이례적으로 경매시장 진단을 내놓고 ‘김창열 분석’에 나섰다. “공급 중단이 주는 시그널에 시장이 즉각 반응한, 유례없이 빠른 속도”라고, “유통시장의 매물부족이 높은 경매결과로 계속 반영될 것”이라고. 아울러 경보도 울렸다. ‘위작유통’에 주의하라며 마음 바쁜 투자자 단속에 나선 거다. “물방울 소재의 키치 작가 작품들이 시장에서 혼란을 일으키니 유사 작품에 낭패를 입지 말라”고.

물방울 덕인가. 시장도 확 폈다. 서울옥션 지난 경매의 낙찰률은 90%. 시장이 좋을 때도 이런 성적은 못 받아봤다. 게다가 화랑미술제에선 작품이 없어서 못 팔았다 하지 않나. 누구는 부동산 규제로 갈 곳 잃은 돈이 몰려서라고 한다. 누구는 억눌렀던 구매욕구를 해소하는 보복소비라고도 한다. 이제 바닥을 차고 올랐는데 그새 ‘호황기’란 말도 나왔다.

지난 2년간 미술시장은 날개 없이 추락했다. 그 과정을 지켜봤다면 조급한 낙관론이라도 이상할 게 없다. 문제는 ‘정상’처럼은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나아진다는데, 팔린다는데 그걸 트집 잡자는 거겠나. 다만 미술시장을 키울 진짜 요소, 작가발굴을 앞세워 기업 등 소장자 확대, 세제 개선과 절차 간소화 등을 또 외면하는 구조가 탈이란 거다. 타깃이 된 몇몇 작가에 수요를 집중해 가격만 끌어올린다면 문제는 다시 터지게 마련이다. 개인기에 의존하는 시장의 한계는 이미 봐오지 않았나. 물방울이 불덩이가 돼서야 되겠나.

지난 2월 서울옥션 ‘제159회 미술품 경매’에서 10억 4000만원에 팔린 김창열의 ‘물방울’(1977). 지난해 7월 케이옥션 경매에서 5억 9000만원에 낙찰된 ‘작가 경매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웠다(사진=서울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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