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권력 견제 막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 등록 2021-08-02 오전 6:10:00

    수정 2021-08-02 오전 6:10:00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장]애당초 우병우와 조국은 삶의 궤적이 달랐다. 우병우는 고시에 합격한 후 검사로서 봉직했고, 조국은 강단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냈던 교수였다. 평생 교집합이 없었던 두 사람이 유사한 삶의 위치에 놓인 것은 청와대에 입성한 이후부터였다. 우병우는 박근혜 정권에서 민정수석을, 조국은 현 정권에서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을 각 역임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모두 언론의 십자포화와 같은 의혹 제기에 곤욕을 치르다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뜬금없이 우병우, 조국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여권에서 언론개혁이라면서「언론중재법」개정안을 지난 달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강행 처리했기 때문이다. 8월 중에 전체회의에서 통과시킬 방침으로 알려졌다. 앞으로는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특칙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여 손해액의 5배까지 손해배상액을 정하고, 계속적인 허위·조작 보도를 통해 피해를 가중하거나 시각자료로 기사 내용을 왜곡한 경우 등에는 언론사의 고의·중과실이 추정되도록 한 것이다.

언론의 허위보도에 대해서는 당연히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특히 일반 국민에 대한 언론보도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언론보도는 다르다. 이 경우에는 기자에게 매우 제한된 정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다소 과장되거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고의·중과실 추정 규정을 도입하게 되면 권력을 가진 자의 봉쇄형 소송 남발로 인해 기자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권력에 대한 취재는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고, 국민의 알 권리는 형해화되며, 권력은 무한한 자유를 누리게 된다. 우리 헌법이 꿈꿔왔던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세상과 멀어지게 된다.

또한 개정안은 헌법가치 뿐만 아니라 우리 법체계와도 맞지 않는 옷이다. 흔히 징벌적 손해배상의 경우는 표현의 자유 천국인 미국에도 있다는 것을 도입 근거로 든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와 달리 명예훼손을 민사문제로 다루고 있을 뿐이지 형사 처벌규정이 없다. 명예훼손 분쟁에 한해서는 우리 법체계와 전혀 부합하지 않는 제도다. 또한 민법상의 명예훼손제도의 기본원칙인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외면하고 언론사에 고의·중과실 추정 규정을 신설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폐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 전 수석은 의혹이 제기되자마자 언론사들을 상대로 정정보도청구, 손해배상청구는 물론 명예훼손 혐의로 기자들을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기자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의혹을 제기했다. 결국 우 전 수석은 자리에서 물러났고 오히려 검찰수사를 받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나 우 전 수석에 대한 의혹 중 일부는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것으로 밝혀졌고 기소된 범죄사실 중 일부는 무죄로 밝혀졌다. 우 전 수석으로서는 억울할 수 있지만 당시 기자들의 취재는 정당했다. 권력에 대한 언론의 견제는 우리 헌법의 핵심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언론 자유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2016년 7월 우 전 수석에 대한 언론의 취재가 정당했다면, 조 전 장관에 대한 의혹이 쏟아진 2019년 8월 언론의 취재도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만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고의·중과실 추정 규정이 그때 있었다면 언론사와 기자들은 분명히 위축되고 후속기사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만큼 국민은 알 권리를 보장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비위로 뒤덮인 권력자들만 온전히 자리를 지키게 도움을 주게 된다.

권력자는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언론은 국민에게 권력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언론과 기자의 취재를 위축시키고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하는「언론중재법」이 개정되면 권력을 비호하는 악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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