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프리즘]'법'이면 다 된다는 환상

  • 등록 2022-08-23 오전 6:15:00

    수정 2022-08-23 오전 6:15:00

[박주희 법률사무소 제이 대표 변호사]며칠 전 종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한 드라마임에도 분당 최고 시청률이 20%를 넘었고, 넷플릭스 인기 TV쇼 프로그램 부문 전세계 4위에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뿐만 아니라 최근 방영되는 드라마나 영화에는 변호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대형로펌 변호사부터 비리에 찌든 밑바닥 변호사까지 배경도 캐릭터도 다양한 법정물이 쏟아지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이제 발에 채이는 게 변호사’라는 말을 할 정도로 변호사 시장은 포화 상태이지만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흥행하는 것을 보면 아직 국민들의 눈에 변호사라는 직업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직업인 것 같아 변호사로서 얄팍한 뿌듯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법정물이 인기인 이유는 직업적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의 최종 종착지는 법조계다. 지금 국민의힘의 이준석 전 대표의 가처분 사건만 봐도 그렇듯 경제든 정치든 사회 각 분야에서 발생한 사건 사고들은 그 안에서 커지고 커지다 결국 법률문제로 비화되어 법조계로 흘러온다. 대통령 탄핵이나 국정농단 사건처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정치적 사건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스포츠 분야에서 일어나는 각종 분쟁들이 저마다 ‘사건번호’를 달고 경찰과 검찰, 법원에서 법적 다툼을 벌이는 일이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하다. 그러다보니 국민들에게는 ‘법’이 내리는 판단이 모든 논란을 종결짓는 절대적 수단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법에 대한 기대가 높은 만큼 실망도 크기 때문에 그러한 복합적 감정들이 법정물에 대한 인기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 일종의 사법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우리나라가 해당 분야에서 이뤄져야 할 진지한 논쟁을 중단하고 모든 결론을 사법부에 맡겨버린다는 데에 있다. 법원의 판결은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에 대한 판단이나 민사사건의 당사자 주장에 대한 판단일 뿐이다. 소송은 진실이 아닌 사실을 밝히는 절차이기에 당사자가 겪은 일이 설사 ‘진실’이라 해도 그를 입증해줄 수 있는 증거가 없으면 패소할 수 있으며, 공소시효처럼 기술적인 요소로 유죄 판결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법은 모든 도덕적·윤리적 문제에 대한 판단이 아닌 최소한의 판단이기에 사실관계와 다른 법률적 판단이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법률적 판단이 언제나 사실관계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더욱이 사법권은 법령을 해석·적용해서 해결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해 사법 판단을 해야 한다는 본질적 한계를 갖는다. 그래서 합목적성이나 정당성을 고려해야 하는 정치행위라든지 자율성을 존중받아야 하는 종교나 학문, 예술 분야에 대해서는 사법적 판단을 자제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분야를 막론하고 내부에서의 진지한 논쟁은 생략한 채 섣불리 사법부의 판단만 기다리다가 사법부의 결론이 모든 이론과 의견을 잡아먹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 유죄와 무죄로 답을 내리는 사법 판단만이 ‘정답’이 되는 사법만능주의는 논쟁과 담론을 통해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해버린다. 그래서 ‘법’이면 다 된다는 환상이 오히려 ‘법’을 함부로 쥐고 흔드는 거악(巨惡)을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종종 예술가들을 상대로 ‘예술법’을 강의 할 때마다 주지시키는 말이 있다. ‘예술가도 법을 공부해야 하지만 법에 예술을 예속시키지 말라, 법은 여러 종류의 답 중 하나일 뿐 예술의 답은 다를 수 있다’ 고 말이다.

변호사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의아한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변호사 스스로 내가 다루는 법이 수학공식처럼 절대적 정답이라고 여기는 순간 변호사 역시 법 기술자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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