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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끄덕끄덕]오징어 게임 '가성비', 자랑스러운 일일까

  • 등록 2021-10-21 오전 6:10:00

    수정 2021-10-21 오전 6:10:00

[정덕현의 끄덕끄덕] 250억을 들여 1조를 벌어들였다?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거둔 수익에 대해 최근 전 세계 언론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런 계산이 나온 건 지난 16일 블룸버그 통신이 넷플릭스의 내부 문건을 분석한 결과 <오징어 게임>의 임팩트 밸류가 약 9억 달러(약 1조원)에 육박하는 수치로 평가됐다고 보도하면서다. 애초 제작비가 250억 원(회당 약 28억 원)이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했던 해외의 반응은 뜨거웠다. 전 세계 1억 가구가 시청한 이 시리즈 9편의 총 제작비가 미국의 시리즈 제작비에 비교해 30% 수준이고, 심지어 어떤 대작 시리즈의 한 편 제작비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해외 언론들이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실제로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는 회당 제작비가 95억 원이고 <더 크라운>은 119억 원이라고 한다. 또 디즈니플러스의 마블 시리즈 <완다 비전>, <더 팰컨> 등은 회당 제작비가 무려 296억 원에 달하고, <스타워즈> 시리즈의 스핀오프 드라마인 <만달로리안>의 회당 제작비도 178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비교분석을 해놓은 미국의 매체들이 <오징어 게임>을 통해 주목하고 있는 건 투자 대비 성과인 ‘가성비’다. 미국에서는 디즈니 같은 거대 공룡 콘텐츠 기업이 시장에 들어오면서 TV쇼의 비용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인데, 그래서 <오징어 게임>이 보여주는 가성비는 넷플릭스가 그간 로컬 제작사와 협업을 해온 전략의 또 다른 면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넷플릭스는 ‘로컬의 글로벌화’를 주창하며 지역 콘텐츠 제작사들과의 상생을 기업의 모토처럼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이를 통해 한국 콘텐츠들이 로컬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한 반향을 일으키며 그 위상을 높여온 건 사실이다. <비밀의 숲>에서부터 <킹덤>, <스위트홈>, <오징어 게임>에 이르기까지 그 일련의 성공에는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의 영향력이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이러한 로컬 콘텐츠에 대한 넷플릭스의 투자에는 치솟는 미국 메이저 제작사들의 제작비보다 적은 투자로 높은 수익률이 가능한 로컬의 가성비도 한 몫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국 콘텐츠의 ‘가성비’는 넷플릭스가 <킹덤>으로 글로벌한 인기를 끌었을 때부터 이미 거론된 바 있다. <킹덤> 시즌1의 회당 제작비는 12억 원에서 15억 원 사이였다. 이 수치는 당시 최고 수준의 회당 제작비가 투입되었던 것으로 화제가 된 <태양의 후예(8억 원)>나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9억 원)>보다 높았다. 물론 모든 저작권을 넷플릭스가 가져간다는 불리함이 있지만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이런 제작비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해외와 비교해보면 우리에게 높다고 여겨지는 이 회당 제작비 수준이 넷플릭스로서는 엄청난 ‘가성비 투자’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즉 미국의 <프렌즈> 같은 시트콤 회당 제작비는 무려 110억 원에 달한다(대부분 출연료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니 장르물을 글로벌 수준의 완성도로 만들어내면서도 로컬 색깔의 차별성까지 갖추었고, 그래서 아시아권은 물론이고 글로벌한 대중성까지 갖춘 데다 가성비까지 좋은 한국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넷플릭스가 공격적으로 늘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넷플릭스는 2015년부터 20년까지 총 7700억 원을 투자했고 2021년에만 약 5500억 원을 투자했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으로 투자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성비’에 대한 해외 언론의 충격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적은 비용으로도 이 만큼을 만들어낸다는 이른바 ‘국뽕’에 도취할 게 아니라, 오히려 한국 콘텐츠업계의 노동환경을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즉 가성비는 능력이 좋아 가능한 것이 아니고, 어떤 의미에서는 들이는 노동에 비해 제대로 비용이 지불되지 않는 그 사각지대에 의해 가능해진 것일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게임업계나 애니메이션업계에서는 한국 제작사들의 가성비 때문에 일본이나 미국 해외 제작업체들의 하청이 적지 않다. 적은 노동비에도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성비는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정당하게 받아야할 노동의 대가를 몸으로 때운 결과로 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언급되고 있는 가성비도 사실은 누군가의 희생이 담보된 결과일 수 있다.

물론 해외에도 콘텐츠 제작에 있어 배우의 지분이 높지만, 제작비 규모가 상대적으로 낮은 한국에서의 배우 지분은 과도할 정도로 집중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한정된 제작비 속에서(가성비로 포장된) 출연자나 작가, 연출자가 상당 부분의 지분을 떼어 가면 그 밑으로 스텝들은 들이는 노동만큼의 대가를 가져가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충분한 제작비가 투입되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환경도 열악해 때로는 안타까운 사고가 벌어지기도 한다. tvN <화유기>에서 미술 스텝이 새벽에 조명을 설치하다 추락해 하반신이 마비되는 안타까운 사고를 겪었고, <혼술남녀> 이한빛 PD는 비정상적 방송 제작 환경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긴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해 충격을 안겼다. 이런 일들은 넷플릭스가 투자한 <킹덤>에서도 벌어졌다. 미술스텝이 뇌동맥류 파열로 사망한 것. 물론 제작사는 부인했지만 영화산업노조는 이것이 과로사로 “장시간 노동이 빚은 인재”라 주장했다.

가성비의 이면에는 갈수록 천정부지로 치솟는 배우 출연료가 만들어내는 양극화와 더불어, 열악한 환경에서도 몸으로 때워야 하는 현장 스텝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즉 <오징어 게임> 같은 작품의 성공으로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한 위상을 갖게 된 것에 대한 뿌듯함이 있지만, 그 이면에 ‘가성비’로 포장된 장시간 노동, 임금체불, 산업재해 같은 그림자들 또한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성과에 맞는 보다 정당하고 정상적인 제작비에 대한 요구가 전제되어야 하고, 배우와 스텝으로 양극화된 노동비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한국 콘텐츠들의 지속 가능한 성장은 어떤 면에서는 이러한 ‘제작 시스템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찾아가는 데서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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