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죄인이 된 학부모·노예가 된 유치원 교사

  • 등록 2023-05-09 오전 6:00:00

    수정 2023-05-09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형환 기자] “아침마다 죄인이 되는 것 같아요.”

경기도 용인에 사는 고모(36)씨의 말이다. 회사 출근을 위해 9시가 등원 시각인 유치원에 1시간 일찍 자녀를 등원시키고 나올 때면 죄인이 된 것 같다는 얘기다. 그 시간에 유치원에 등원한 원생은 고씨의 아들이 유일한 탓이다. 고씨는 “유치원을 나설 때 혼자 남겨진 아이의 눈이, 교사들의 피곤한 표정이 날 죄인으로 만든다”고 했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희망하는 유치원을 대상으로 교육과정 시작을 오전 9시에서 오전 8시로 1시간 앞당기는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교육부는 2026년까지 시범운영을 해 본 뒤 2027년 사업 확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출근 전 자녀를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 맞벌이 학부모 중에선 이에 대해 찬성하는 의견도 많지만 유치원 교사들은 반발하고 있다. 가정에서도 분담해야 할 돌봄 부담을 유치원에만 전가하고 있다는 게 불만의 이유다. 유치원 교사들은 본인들이 ‘노예’가 됐다고 자조적인 농담을 하기도 했다.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이미 절반에 가까운 유치원생들이 8시 30분 이전에 등원하는 등 조기 등원이 일상화됐다는 주장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유치원을 다니는 유아 48.5%가 오전 8시 30분 이전에 등원했다. 교육부는 희망 유치원에 한해 시행할 사업이기에 이런 찬반 논란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학부모들의 돌봄부담이나 교사들의 불만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교육부는 현장 의견수렴을 통해 향후 확대 여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특히 예산 증액을 통해 유치원 아침 돌봄 프로그램을 내실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맞벌이 부부들이 출근 전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다. 등원 시간을 앞당길 경우 유치원 교사들의 처우 개선도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저출산 개선을 위해 2006년부터 약 380조원을 투입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아이 키우기 편한 사회를 만들려면 국민 모두가 출산·육아 부담을 덜도록 ‘디테일’을 살린 예산 지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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