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전쟁통에도 그렸고 감염병에도 팔렸다

  • 등록 2020-12-17 오전 3:30:01

    수정 2020-12-17 오전 3:30:01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참으로 암울했다. 추락한다는 게 이런 건가 했더랬다. 올해 상반기 미술시장이 말이다. 먼저 나온 경매시장 지표부터 적신호를 켰는데. 가뜩이나 하락세로 우려가 컸던 지난해 상반기 825억 7800만원에 비해서도 40%가 뚝 떨어진 489억 7000만원을 찍었다. 최근 5년만 놓고 볼 때도 가장 낮았다. 경매뿐인가. 코로나 초기, 한국화랑협회가 조사한 피해액이 한 달 남짓한 기간에 한 화랑당 평균 3000만∼4000만원. 이후론 통계조차 내지 못했다.

시장에 ‘끌려나온’ 보물 소식도 심란함을 부추겼다. 통일신라시대 ‘보물 불상’ 두 점, 겸재 정선의 ‘보물 화첩’이 차례로 경매에 나왔던 건데. 앞엣것은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뒤엣것은 우학문화재단이 내놓은 거다. 양쪽 다 이유는 ‘경영난’이었다.

걱정을 넘어 비관·우울을 끌어안고 시작한 하반기. 그런데 의외였다. 비틀거리면서도 중심을 잡아가는 모양이랄까. 선방·선전하는 유의미한 수치가 보였던 거다. 7월 서울에서 대신 연 서울옥션 ‘제32회 홍콩세일’에선 낙찰률 60% 낙찰총액 50억원, 케이옥션 ‘7월 경매’에선 낙찰률 73.4% 낙찰총액 67억 3000만원을 각각 끊었다. 9월 서울옥션 ‘제157회 경매’에선 낙찰률 72% 낙찰총액 71억원, 케이옥션 ‘9월 경매’에선 낙찰률 75.2% 낙찰총액 62억 7000만원을 기록했고. 지난달 케이옥션 ‘11월 경매’에선 낙찰률 73% 낙찰총액 83억 3000만원에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엊그제 올해 마지막 메이저 장이던 서울옥션 ‘제158회 경매’로 이어졌는데, 낙찰률 79.8% 낙찰총액 82억 5700만원. 이쯤 되면 ‘훈훈한’ 마무리다.

이런 얘기에 자칫 오해가 생길 수도 있겠다. 다들 죽기 살기로 버틴다고 아우성인데 무슨 한가하게 미술 타령이냐고. 혹여 그랬다면, 섭섭한 노릇이다. 아니 부당하다. 미술을 ‘먹고사는 일’에서 또 빼놓겠다는 거니까. 그림 그리고, 그림 파는 일로 누군가는 ‘연명’을 한다. 누구 하나 피해 갈 수 없는 감염병을 뚫고서. 방법과 내용이 다를 뿐, 맞다. 살기 위해서다.

뼛속까지 박힌 작가정신이 먼저일 때도 물론 있었다. 진짜 죽고 사는 전쟁 속에도 그림은 그렸으니까. 김환기의 ‘판잣집’(1951), 남관의 ‘귀로’(1951), 이응노의 ‘피난’(1952), 윤중식의 ‘피난길’(1951), 모두 전쟁통에 나온 수작이다. ‘고바우영감’으로 유명한 김성환도 전쟁일지를 쓰듯 기록한 ‘6·25스케치’를 남겼다. 사연 없는 피란길이 있었겠는가마는, 특히 윤중식은 절절했다. 아내·큰딸과 생이별을 한 채 작은딸은 업고 아들을 끌다시피 해, 평양에서 부산까지 피란길에 겪은 사건을 시간순으로 그려냈는데. 그 스케치북이 올해 처음 공개되기도 했다. 앞의 작품들과 함께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기획했던 ‘낯선 전쟁’ 전에서다. 전쟁 같은 코로나 시국에 70년 전 전쟁은 그대로 묻혀버렸지만.

그래, 결국 ‘지금이 이럴 땐가’는 없다는 말이다. 늘 ‘그때’였다. 이제 곧 한 해 미술시장을 결산하는 성적표가 내걸릴 테고, 그 척박한 수치에 또 한 차례 술렁일 거다. 몇 점이 됐든, 모두 ‘살아남으려 한’ 흔적은 찍혀 나오지 않겠나. 작가든 시장이든 ‘고생했다’고 자꾸 토닥이고 싶은 이유다.

김환기가 1951년 그린 ‘판잣집’(사진=국립현대미술관).
윤중식이 1951년 그린 ‘피난길’(사진=국립현대미술관).
김성환의 ‘6·25 스케치’ 중에서. 1950년 6월 27일 서울 돈암교 부근이란 메모가 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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