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국민의힘 내부 갈등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대선 과정에서 이 전 대표는 여러 차례 선대위를 뛰쳐나갔다. 그때마다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는 지방까지 달려가 그를 달래서 당무에 복귀시켰다. 물론 이 전 대표도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당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인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당 대표의 돌출 행동에 윤 후보를 비롯한 측근들의 불만은 차곡차곡 쌓여만 갔을 것도 인지상정이다. 여기에 이 전 대표에게 불거진 성 상납 및 증거인멸 의혹은 그를 적대시하는 당내 세력에 지도체제 전환의 빌미를 제공했다.
어느 시절이나 권력투쟁은 있었다. 조선 시대에도 있었고, 정당 국가의 선구자인 영국에서도 비일비재했다. 권력투쟁 끝에 정적을 내몰더라도 대외적으로는 개혁을 위한 ‘명분’이 있었다. 우리 현대사에서 대통령 취임 초 가장 극적인 권력투쟁은 김영삼 정권에서 벌어졌다. 하나회 척결로 정치 군부 세력을 내몰았고, 공직자 재산 공개로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당내 유력 정치인들을 의원직에서 사퇴시켰다. 개혁을 위한 명분이 있었기에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이번 국민의힘 당내 권력투쟁은 어떠한 대의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이준석과 윤핵관이라 지칭된 세력 간의 갈등, 더 나아가 2024년 공천을 위한 권력투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보수당은 국가경영 능력에서 반대 당보다 앞선 이미지를 유권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는데, 이번 국민의힘 비대위 출범은 완전히 실패했다. 오죽하면 법원이 “일부 최고위원들이 당 대표 및 최고위원회의 등 국민의힘 지도체제 전환을 위해 비상 상황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이는 지도체제 구성에 참여한 당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정당민주주의에 반한다”라고 판단했을까.
이 사태를 초래한 이 전 대표는 사실상 당에서 퇴출됐다. 그렇다면 나머지 책임이 있는 당내 핵심 세력 중 누군가도 책임지는 모습이 나와야 한다. 모든 당직에서 사퇴하고,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이라도 해야 윤석열 정권 출범에 표를 던진 유권자에게 최소한의 면목이 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