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강, 인간의 오래된 식량창고[물에 관한 알쓸신잡]

물고기 낚시부터 염장·발효까지
  • 등록 2022-09-24 오전 11:30:00

    수정 2022-09-24 오전 11:30:00

[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박사/기술사)] 쿠바의 작은 어촌마을에 살고 있는 산티아고는 매일 고깃배를 끌고 바다로 나가지만 번번이 허탕만 칩니다. 빈 배로 돌아오는 날이 무려 80여일이 넘게 계속되자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어부의 운이 다했다고 놀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비웃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바다로 나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난생 처음 보는 엄청난 크기의 청새치를 낚습니다. 3일 밤낮의 사투 끝에 청새치를 잡아 올리지만 크기가 너무 커 고기를 배 위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배 옆에 매달고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합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하지만 기쁨도 잠시뿐입니다. 청새치를 원하는 건 노인만이 아니었으니까요. 청새치의 피 냄새를 맡은 상어도 청새치를 원하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노인은 사력을 다해 상어 떼를 쫓아 보지만 역부족입니다. 결국 노인이 지친 몸으로 항구에 도착했을 때 배 옆에 묶어 둔 청새치는 뼈만 남습니다.

너무도 유명한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입니다. 이 소설은 고난에 맞서 굴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산티아고에게는 고난을 이겨내는 강인함보다는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부의 팍팍한 삶이 더 배어 있는 듯합니다.

청새치와 3일간의 싸움에서 보여준 노인의 강한 의지는 결국 먹고 사는 문제로 귀결됩니다. 상어의 공격을 받아 반쪽만 남은 청새치를 보고 “남은 거라도 팔 데가 있어야 할 텐데…”, “녀석을 판 돈으로 뭘 살까?”라고 읊조리는 걸 보면 말입니다.

오래 전부터 물고기는 산티아고처럼 물가에 사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생계 수단을 제공했습니다. 인류가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했고요. 단백질을 공급해 주는 생선과 살코기는 사냥과 고기잡이를 통해 구했습니다. 그런데 돌도끼 수준의 사냥도구로 육상 동물을 사냥하기란 쉽지 않았고 위험부담도 컸습니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사냥보다 위험부담이 덜한 고기잡이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물고기는 적당한 도구만 있으면 잡을 수 있었고 위험부담도 크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자연스럽게 물고기는 고대 인류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고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물고기가 없었다면 인류는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물고기를 공급해 주는 바다와 강은 예나 지금이나 인류에게는 일종의 식량창고와 같은 역할을 해왔습니다. 정착 생활을 시작한 고대 인류에게 물고기는 아주 쓸 만한 식량이었습니다.

적당한 도구만 있으면 잡을 수 있었고 곡류와 달리 인간이 키우지 않아도 알아서 자란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매력적인 물고기를 식량으로 하기에는 결정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보관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물고기는 곡류와 달리 부패가 쉬워 2~3일 이상 신선한 상태로 저장할 수 없었습니다. 물고기 저장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하던 인류는 햇빛, 바람, 그리고 연기를 이용하면 물고기를 썩지 않게 오래 저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건조와 훈제를 이용한 저장법이 등장하면서 저장기간이 늘어났지만, 저장기간을 혁신적으로 늘린 방법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소금을 이용한 염장입니다.

인류가 음식에 소금을 이용하면서 음식문화에는 일대 혁신이 일어납니다. 소금을 이용한 염장은 생선을 비롯한 식량의 저장기간을 획기적으로 늘렸을 뿐만 아니라 음식 맛도 좋게 했으니까요.

그런데 과거에 소금은 귀한 재료였기 때문에 소금을 구하기 쉽지 않은 내륙지방이나 일조량이 많지 않은 곳에서는 염장법으로 생선을 보관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주 독특한 생선 보관방법이 나타납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바로 발효입니다. 우리나라의 젓갈류, 홍어 등이 대표적인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스웨덴, 아이슬란드, 일본 등에도 발효시킨 생선을 즐겨 먹습니다. 물론 발효시킨 생선의 고약한 냄새는 참아내야죠.

지금은 냉장 기술 발달로 생선을 더 이상 훈제하거나 염장할 필요가 없지만 사람들은 저장과정이 생선의 풍미가 더해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생선을 연기에 쏘이거나 소금을 뿌려 저장합니다.

수십만 년 전부터 물고기를 식량으로 먹었던 인류는 지금도 여전히 물고기를 즐겨 먹습니다. 저장과 운반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 소비량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1960년 9kg이었던 세계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최근 들어 20kg을 훌쩍 넘어 2.3배가 늘어났습니다.

같은 기간 세계 인구도 2.5배가 늘어났으니 40년 동안 바다에서 잡아 올리는 수산물은 6배 가까이 증가한 셈입니다.

물고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수십번 작살질했던 고대 인류는 이제 어군탐지기를 이용해 한 번 그물질로 수십만마리의 고기를 잡는 수준으로 진화했습니다.

고기잡이 기술의 발달로 우리가 잡는 양은 점점 늘어나지만 바다와 강의 물고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바다와 강은 수십만 년 동안 인류에게 든든한 식량창고 역할을 해 왔지만 최근 들어 그 창고의 재고에 빨간불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어족자원 고갈 사례는 명태입니다. 과거 우리나라 국민 생선이었던 명태는 1970년대 6만2730t(톤)의 어획량을 기록한 이후 1990년대 들어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2019년부터는 우리나라에서 명태잡이가 금지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바다에서 사라지는 물고기가 명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고기잡이 기술이 발달할수록 자취를 감추게 되는 고기의 종류는 점점 늘어나게 되겠지요. 명태 뒤를 이어 자취를 감추게 될 생선은 무엇일까요?

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박사/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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