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는 한 때 불법이었다 [물에 관한 알쓸신잡]

이양법에 필요한 수리시설과 저수지
  • 등록 2022-05-14 오후 6:08:42

    수정 2022-05-14 오후 6:08:42

[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모내기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농촌에서는 가장 바빠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모내기를 하는 이앙법은 못자리에서 벼의 싹을 틔운 다음 논에 심는 농사법을 말합니다. 경작지에 씨를 뿌려 농사를 짓는 일반적인 농작물과 달리 벼는 못자리에서 어느 정도 모를 키운 다음 논에 옮겨 심는 이앙법으로 농사를 짓습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벼를 이앙법으로 농사짓는 데는 이앙법이 가진 여러 가지 장점 때문입니다. 이앙법은 줄을 맞춰 모를 심기 때문에 김매기가 쉬워 농사에 필요한 일손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이앙법은 모내기 전까지 보리농사를 지을 수 있어 보리와 벼의 이모작이 가능합니다. 어린 모를 못자리에서 키워 튼튼한 모만 논에 옮겨심기 때문에 벼의 생육상태가 좋고 수확량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종 17년인 1435년 4월 경상도 고성에서 이앙법에 대한 상소가 올라옵니다. 나라에서 금지하고 있는 이앙법을 풀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농업 서적인 ‘농사직설’에는 이앙법(모내기)은 매우 위험한 재배법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많은 장점을 가진 이앙법을 왜 조선 초기에는 위험한 농사법이라고 금지했던 것일까요?

이앙법이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건 고려 말이었습니다. 당시의 벼 농사법은 논에 직접 볍씨를 뿌리는 직파법과 모판에서 기른 모를 논에 옮겨 심는 이앙법이 있었습니다.

이앙법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확실한 단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가뭄에 아주 취약하다는 점이었지요. 이앙법은 모내기를 할 때 논에 물이 없으면 벼가 뿌리를 내릴 수 없기 때문에 모내기철에 물이 부족하면 모내기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논에 물을 대는 수리시설이 부족한 여건에서 비를 기다리다 모내기 때를 놓치게 되면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밖에 없었지요. 이앙법은 농사에 필요한 일손도 줄여주고 생산량도 높일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이었지만 물이 부족할 경우에는 위험 부담이 큰 농법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조선 초기에는 이앙법 대신 직파법이 장려됐습니다. 직파법은 이앙법에 비해 노동력이 많이 들고 수확량도 적었지만 가뭄이 들었을 때 피해를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이후 수리시설이 개선되면서 이앙법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지금의 봄철 모내기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앙법이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한 수리시설은 저수지와 보였습니다. 하천을 가로질러 둑을 쌓아 물을 가두는 보에 비해 저수지는 물을 담아둘 수 있는 양이 많았기 때문에 중요한 수리시설이었습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대표적인 관개용 저수지가 전북 김제의 벽골제와 충북 제천의 의림지 등입니다. 큰 호수가 많지 않았던 과거에 관개용 저수지는 지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어서 지역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습니다.

전라도의 별칭인 호남지방과 충청도의 별칭인 호서지방은 호수의 남쪽과 서쪽지방이라는 의미로 저수지가 기준이 되었습니다. 전북 김제의 벽골제와 충북 제천의 의림지가 호남지방과 호서지방을 구분하는 기준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조선시대까지 지역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정도로 중요하고 귀했던 저수지는 현재 그 개수가 1만7000개를 넘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늘어났습니다. 덕분에 우리나라에 있는 논의 83%는 수리시설로 물을 대는 수리답입니다.

그럼에도 봄 가뭄이 심한 해에는 여전히 모내기에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수를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의 저수지로도 모내기에 어려움을 겪는 요즈음의 상황을 감안하면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짓던 과거에는 모내기철 가뭄은 곧 한 해 농사의 끝장을 의미했을 겁니다.

농업에 필요한 수리시설이 예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지만 이 수리시설로도 대응이 안 되는 변수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기후변화입니다. 54일간의 기록적인 장마가 있었던 2020년에 쌀 생산량은 최근 10년간 최저를 기록합니다. 이상기후로 생산량에 타격을 받는 작물은 쌀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지난해 미국과 러시아 등의 주요 곡물 생산 국가가 가뭄을 겪으면서 급등했던 곡물가격은 올해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곡물가격도 전쟁 수준이 되었습니다. 식량 자급률이 50%가 채 되지 않는 우리나라 입장을 고려하면 기후변화가 밥상까지 위협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최종수 연구위원(박사·기술사)은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Utah Visiting Professor △국회물포럼 물순환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자문위원 △대전광역시 물순환위원회 위원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한국방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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