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신경영 비전] 미케니컬 터크와 긱 이코노미

  • 등록 2021-02-05 오전 8:14:41

    수정 2021-02-05 오전 8:14:41

[이상훈 전 두산 사장·물리학 박사]1809년 오스트리아 빈을 점령한 나폴레옹은 쇤브룬 궁전에서 맬젤이라는 독일인이 가져온 미케니컬 터크(Mechanical Turk)라는 ‘인공지능 체스 로봇’과 체스 대국을 벌이게 되었다. 미케니컬 터크는 커다란 상자 위에 터키인의 모습을 한 인형 상반신이 있고 그 앞에 체스판이 놓여 있는 기계장치였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나폴레옹은 미케니컬 터크와 두 번의 대국을 벌여 첫 번째는 반칙패했고 두 번째는 19수만에 패배를 인정했다고 한다.

IBM의 인공지능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를 꺾기 거의 200년 전에 나폴레옹을 굴복시킨 인공지능 미케니컬 터크는 사실 상자 속에 독일 최고의 체스 마스터가 숨어 있었던 사기극이었다. 그런데 진짜 인공지능이 체스를 두는 요즘 미케니컬 터크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21세기 미케니컬 터크는 아마존이 2005년 시작한 온라인 인력 장터로 컴퓨터가 하기는 어렵지만 인간에게는 쉬운 기본적인 작업을 온라인을 통해 아웃소싱으로 해결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고양이를 알아보도록 훈련시키려면 수백만 장의 고양이 사진을 컴퓨터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수백만 장의 사진을 보며 어느 사진에 고양이가 있고 어느 사진에 고양이가 없는지 라벨을 붙이는 작업을 미케니컬 터크에서 아웃소싱하는 것이다.

미케니컬 터크에 올라오는 작업이 대단한 전문성을 요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대가는 매우 저렴하다. 한 시간 작업을 해도 평균 2,000원 정도를 받을 뿐이다. 그래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미케니컬 터크로 몰리고 있다고 한다. 일정한 직장이 없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프리랜서로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것은 미케니컬 터크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우버, 리프트와 같은 승차 공유 서비스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급성장한 음식 배달, 아마존 플렉스와 같은 상품 배달에 종사하는 사람들 역시 같은 유형의 노동자들이다. 이러한 프리랜서 노동이 급성장한 현상을 두고 긱 이코노미라는 명칭이 생겼다. 긱이란 일정한 밴드에 속하지 못한 재즈 연주자들이 프리랜서로 이런 저런 밴드에서 잠깐씩 연주를 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인데 이제는 모든 프리랜서 활동을 총칭하는 단어가 된 것이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고가의 보수를 받는 프리랜서도 있겠지만 대개의 긱 이코노미 종사자들은 매우 낮은 보수에 사회보장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생계유지가 곤란해진 사람들이 긱 이코노미로 몰리고 있다. 문제는 이 현상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된다고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데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과 로봇의 확산, 자율 주행의 발전으로 사무직, 서비스업, 제조업, 운송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장기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이들이 일하던 직업이 사라지면 이들은 중소 자영업자가 되던지 아니면 긱 이코노미에서 프리랜서로 일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기술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없어지기도 하겠지만 그 대신 많은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질 수 있다. 미국 노동부가 2020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향후 10년간 태양광이나 풍력발전 등 청정에너지 분야의 일자리는 50% 이상 증가할 것이고 인공지능에 필요한 통계학이나 IT 보안 분야 역시 25% 이상의 일자리 증가가 예상된다고 한다. 사무직이나 제조업 판매직에서 5% 가까운 일자리 감소가 예상되는 것과 대조된다. 문제는 사무직이나 제조업, 판매직에서 직업을 잃은 사람들이 바로 청정에너지나 IT 분야로 이직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노동력의 수요처와 공급처가 일치하지 않는 인력시장의 왜곡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저소득층이 확대되는 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력시장의 왜곡을 방지하려면 국가와 기업들이 장기간에 걸쳐 필요한 인력을 교육을 통해 양성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1970년대부터 중화학 공업을 발전시킨 것이나 1990년대부터 IT 산업을 발전시킨 건 모두 사전에 필요한 인력을 키워놓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21세기의 핵심 산업이 될 청정에너지, 로봇과 인공지능, 합성생물학 분야에서 필요한 인력을 지금 제대로 키워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많은 중산층이 긱 이코노미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프리랜서가 되는 미래를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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