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외교장관 첫 통화서 은근한 신경전…“가치외교”-“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 장관이 16일 화상통화를 하고 있다. (사진=중국 외교부)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상견례를 겸한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화상통화에서 양 장관은 은근한 신경전을 벌였다. ‘한미동맹’이라는 기치 아래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외교 비전으로 내세운 윤석열 정부에 “먼 친척이 가까운 이웃보다 좋지 않다”며 한국의 미국 경도를 견제하는 중국 측의 뼈있는 덕담들이 오갔다.

17일 외교부에 따르면 박 장관은 16일 저녁 이뤄진 화상통화에서 이같은 외교 비전하에 역내에서 공동의 가치와 이익에 기반한 외교를 전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장관은 ‘한국이 글로벌 중추 국가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중국도 책임있는 국가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또 “한중관계가 올해 수교 30주년을 맞아 상호 존중과 협력정신을 바탕으로 보다 성숙하고 건강하게 발전해나가길 바란다”며 “ 양국이 각자의 가치ㆍ비전을 존중하면서 공동 이익을 모색하고 양자협력과 역내 및 글로벌 평화ㆍ번영을 조화시키자고 하고, 양국관계의 지속적 발전과 관리를 위해 외교당국간 적시 소통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양 정상의 상호방문 포함 고위급 및 각 급간 교류ㆍ소통 강화 △경제ㆍ보건ㆍ기후변화ㆍ미세먼지 등 실질협력 심화 △한중 문화교류의 해(21-22) 계기 문화ㆍ인적 교류 확대 통한 양 국민간 상호이해 및 유대 심화△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협력 강화 △지역ㆍ글로벌 문제 협력 강화 등에 주안점을 두고 긴밀히 협력해 나가자고 했다.

왕 위원은 “중국과 한국은 이사할 수 없는 영구적인 이웃이자 분리할 수 없는 파트너”라며 “중국은 시종일관 한국과 중·한 관계를 전략적이고 포괄적 각도에서 바라본다”고 밝혔다.또 “한국 속담에 ‘군자는 큰 길로 간다’는 말이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상호 존중과 협력 정신에 입각해 한중 관계의 새 시대를 열자고 했고, 중국은 이를 환영했다”고 말했다.

왕 위원은 그러면서 한중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4가지 방안을 제안했는데, 특히 ‘호혜 협력’ 대목에서 양국이 “‘디커플링’의 부정적 경향에 반대하고 글로벌 산업망과 공급망을 안정적이고 원활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대한 공식 참가를 선언한데에 대한 견제의 의미로 풀이된다. IPEF는 공급망 복원, 디지털 경제, 탈(脫)탄소화, 반(反)부패 규범 제정 등 4개 분야에서 역내 국가들의 협력을 강화하자는 게 기본 취지이지만, 향후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플랫폼으로 활용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우리 정부는 오는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IPEF를 주요 의제로 설정했다.

‘소통과 조정 강화’ 분야에서는 왕 위원은 “국가외교원수의 주도적 역할을 충분히 발휘하고 각급 대화 메커니즘을 활용하고, 원활하고 고품질의 정치외교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해한다”고 말했다. 박 장관이 “양 정상의 상호방문을 포함한 고위급 및 각급간 교류·소통강화”을 말하며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한을 콕 집어 말한 것과는 온도 차가 난다.

앞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기 중 2차례 중국을 찾아가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났지만, 시 주석은 한번도 한국을 오지 않았다. 여기에 시 주석이 이번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방중을 요청하자 윤 대통령은 이에 화답하면서도 “시 주석의 방한을 고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두 장관은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도 미묘한 인식 차를 드러냈다.

박 장관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한반도 및 역내 정세를 악화시킬 뿐 아니라 양국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 만큼 한중이 협력해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를 도모해 나가기를 기대한다”며 북한이 더이상 도발에 나서지 않도록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해주기를 당부했다. 반면, 왕 위원은 “각국 노력하에 한반도는 전체적으로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는 양국과 지역 발전을 위해 필요한 환경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한편, 박 장관과 왕 위원은 최근 북한 내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나란히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국 외교부는 밝혔다. 또 북한 주민들의 코로나 대응을 돕는 인도적 지원 필요성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상호 지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