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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겸의 일본in]'불량배 스포츠' 취급받던 스케이트보드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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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겸의 일본in]'불량배 스포츠' 취급받던 스케이트보드의 반란
    '불량배 스포츠' 취급받던 스케이트보드의 반란
    김보겸 기자 2021.08.01
    일본 애니메이션 . 캐나다 혼혈이자 스케이트보드 재능을 타고난 란가(왼쪽)와 노력파 레키(오른쪽)의 성장 스토리가 주를 이룬다(사진=SK에이트 홈페이지)[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애니메이션이 불을 붙이고, 도쿄올림픽이 폭발시켰다. 2020 도쿄올림픽 공식 종목이 된 스케이트보드 얘기다. 올 1월 스케이트보드를 소재로 한 TV 애니메이션 ‘SK∞(SK에이트)’가 방영되면서 주목받더니, 젊은층의 관심을 끌겠다며 도입한 스케이트보드 종목에서 일본이 남녀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면서 일본 열도가 스케이트보드에 열광하고 있다. 일본에서 스케이트보드는 불량아들의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한밤중에도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가 하면, 묘기를 부린답시고 난간이나 벤치를 파손하고, 보행자를 들이받는 사고도 종종 일어나서다. 한국으로 치면 전동킥보드 무매너 이용객, 이른바 ‘킥라니(킥보드와 고라니의 합성어)’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스노보드가 익숙한 란가는 양 발을 스케이트보드에 묶고 시합에 임한다(사진=SK에이트)이런 눈총을 받는 와중에, 올 1월 일본에선 SK에이트가 공개되면서 스케이트보드의 매력을 알렸다. 제목은 ‘스케이트 너와 무한대(Skate Kimi to ∞)’의 줄임말로, 스케이트보드를 통한 무한한 즐거움이란 뜻이다. 감독인 우츠미 히로코가 스케이트보드를 소재로 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라서다. 원래 스노보드가 취미인 우츠미 감독은 눈 쌓인 곳을 찾으러 다니기가 힘들어 친구들이 추천해준 스케이트보드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이는 후술할 주인공 ‘란가’의 설정에 반영됐다. 또 하나는 지금껏 스케이트보드를 다룬 애니메이션이 없기 때문이라는 전략적 판단이라고 한다.SK에이트의 줄거리는 이렇다. 스포츠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 타입인, 노력파이지만 재능은 (상대적으로) 없는 레키와 캐나다 혼혈 설정의 천재형 주인공 란가가 투톱으로 등장한다. 일본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한 이 만화는 각자의 방식으로 스케이트보드를 좋아하는 인물들이 서로의 장점을 발견하며 인정하고 성장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악역처럼 묘사된 상대편 역시도 레이스를 펼친 뒤에는 다시금 주인공을 응원하는 면이 있어 청춘 성장물 성격도 띤다. 등장인물들은 자정이 되면 폐쇄된 광산에서 극비리 레이스 ‘S’에 참가한다(사진=SK에이트)스케이트보드가 불량아 스포츠라는 인식은 작중에서도 잘 드러난다. 레스토랑 점주이자 스케이트보드 선수로 나오는 ‘조’는 “스케이트보드를 탄다고 돈을 버는 것도, 세상의 칭찬을 받는 것도 아냐”라고 한다. 작중 최강자에게 스케이트보드를 가르쳐 준 ‘타다시’는 한 술 더 뜬다. “스케이트보드는 위험해. 살짝만 다쳐도 큰 부상으로 이어지고 이미지도 안 좋아. 여전히 불량배나 탄다는 이미지가 붙어 다니고 사람들 눈은 냉담하지. 열심히 단련해도 야구나 축구처럼 돈도 못 벌어. 야만스럽고 마이너하고 불행해지기만 할 쓸데없는 놀이”라는 그의 대사는 만화적 과장을 감안하더라도 일본 내 스케이트보드의 위상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레이스 설정에서도 스케이트보드에 대한 인식이 반영된 듯 하다. 등장인물들은 폐쇄된 광산에서 관계자만 출입가능한 극비리 레이스 ‘S’에 참가한다. 여기에 승부를 내는 데 반칙이나 폭력도 허용한다는 점, 심야에만 열린다는 점은 스케이트보드 시합 참가자들이 어두컴컴하고 음침한 곳에서 작당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처음 탄 스케이드보드에 헤매는 것도 잠시, 타고난 재능으로 란가는 레이스에서 차례차례 승리를 거둔다(사진=SK에이트)그럼에도 불구하고 SK에이트는 스포츠 만화답게 스케이트보드의 매력에 대해 줄곧 이야기한다. 레키는 전학생 란가의 압도적인 재능에 좌절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포기하려 하지만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이유를 다시금 떠올린다. 꾸준히 연습하면 점점 할 수 있는 게 늘어난다는 것.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즐거운 것이라고 말이다. 캐나다인 아버지로부터 두 살때부터 스노보드를 배운 란가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어머니의 고향인 일본 오키나와로 건너왔지만 이곳은 1년 내내 여름이라 스노보드를 타지 못한다. 대신 란가는 눈이 안 와도 탈 수 있는 스케이트보드를 통해 성장하며 이를 소개해 준 레키와도 우정을 쌓는다. 만화를 통해 스케이트보드의 인기가 높아지는 와중 도쿄올림픽에서는 스케이트보드 대표팀의 낭보가 잇따랐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채택된 스케이트보드에서 일본이 금메달을 두 개 따내면서다. 지난달 25일 남자 스트리트 결승에서 승리한 호리고메 유토(22)에 이어 바로 다음날 니시야 모미지(14)가 금메달을 차지했다. 도쿄올림픽 스케이트보드 여자 스트리트에서 금메달을 딴 니시야 모미지 선수(사진=AFP)벌써부터 일본 스케이트보드 교실에는 초등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NHK에 따르면 도쿄올림픽 스케이트보드 경기장에서 불과 2km 떨어진 스케이트보드 교실에 초등학생 수강생이 급증하고 있다. “호리고메 선수 경기에 반했다”는 여자아이부터 “나랑 비슷한 나이에 금메달을 딴 니시야 선수가 대단하다”며 올림픽을 노리는 남자아이까지. 이 스케이트보드 교실 수강생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 늘었다고 NHK는 전했다. 호리고메 선수의 경기를 보고 의욕에 불이 붙었다는 16세 남자 고등학생은 “같은 고향으로서 정말 자랑스럽다”며 “호리고메 선수처럼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싶다”고 말했다. 경기를 이틀 앞둔 지난 25일 호리고메 유토 선수가 인스타그램에 오시마 코마츠카와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이 공원은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스케이트보드를 배운 곳이다. 현재는 스케이트보드 금지령이 떨어졌다(사진=호리고메 유토 인스타그램)다만 스케이트보드가 일본 내에서 주류로 인정받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일본 선수들이 잇따라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경기장 밖으로 나가면 스케이트보드는 여전히 천대받는다. 호리고메 선수의 어릴 적 연습장이었던 오시마 코마츠카와 공원에서 현재 스케이트보드를 금지하고 있다는 점이 상징적이다.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는 이 곳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다가는 경비원이 달려와 제지한다고 한다. 도쿄의 10대들 사이에선 스케이트보드를 탈 만한 곳이 없을뿐더러 보드 반입조차 금지하는 곳이 태반이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농구 좋아하세요?” 일본을 대표하는 스포츠만화 ‘슬램덩크’는 1990년대 야구에 밀리고 축구에 치이던 농구의 위상을 단숨에 끌어올렸다. 이를 가능하게 한 건 농구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이 한 몫 했다는 평가다. “작가가 좋아하는 것을 다뤄야 보는 사람들에게도 매력이 먹혀든다”며 자신의 취미인 스케이트보드를 만화화한 SK에이트 감독과도 겹쳐 보인다. 그전까지는 인기 없는 종목인 농구와 스케이트보드로 승부수를 던졌다는 점도 비슷하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도쿄올림픽에서의 금메달과 SK에이트를 계기로 불량배 스포츠로 인식되던 스케이트보드의 위상도 달라질 수 있을까.
  • [김보겸의 일본in]'순혈주의' 일본이 변했다? 올림픽에 등장한 '하푸'
    '순혈주의' 일본이 변했다? 올림픽에 등장한 '하푸'
    김보겸 기자 2021.07.25
    농구선수 하치무라 루이(23)가 23일 도쿄올림픽 개회식에 기수로 등장했다(사진=AFP)[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일본 선수단 중에서 홀로 우뚝 솟을 정도의 신장(203cm)에, 인사할 때는 반사적으로 꾸벅 고개를 숙인다. 아프리카 베냉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1998년생 ‘하푸(ハ-フ·일본 국적 혼혈인)’ 농구선수, 하치무라 루이(23)가 23일 도쿄올림픽 개회식에서 일본 국기를 들고 등장했다. 마지막 성화주자로는 하치무라와 동갑내기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23)가 나섰다.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사카는 전 세계 남녀 스포츠인을 통틀어 수입 2위(약 690억원)에 오른 선수다.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가 마지막 성화주자로 나서고 있다(사진=AFP)‘순혈주의’를 고집해 온 일본이 달라지고 있다. 도쿄올림픽이 ‘다양성’과 ‘조화’를 대회 목표로 내세우면서 이번 일본 올림픽 대표팀 583명 중 다인종은 35명에 달한다. 뉴욕타임스(NYT)는 “개회식에서 가장 주목받는 역할 두 가지가 다인종 선수들에게 돌아간 건 일본이 세계에 다양한 얼굴을 선보이고자 하는 열망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코노미스트 역시 “인종 동질성 사상이 오랫동안 지배해 온 나라에서 인종과 정체성에 대한 태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실제 현재 일본 사회에는 여느 때보다도 외국인이 많아졌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이민자를 수용한 결과, 10년 전 200만명이던 일본 거주 외국인이 300만명 수준까지 올라왔다. 여전히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있지만, 도쿄의 20대 중 적어도 10%는 외국 혼혈일 정도로 다양성이 커졌다는 평가다. 다문화에 대한 인식도 나아지고 있다.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1993년에는 30%만 찬성했지만 2013년에는 56%로 늘었다. 반대한다는 응답도 34%에서 20%로 줄었다. 그 결과 1980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태어난 아이들 135명 중 1명만 다문화 가정 출신인 데 비해 오늘날은 50명 중 1명 수준으로 늘었다.올림픽 개회식에서 공연단이 오륜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사진=AFP)일본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외국인을 배척하는 나라였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극단적인 고립주의 정책을 폈다. 임진왜란 이후 전국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 내 기독교 선교를 금지하면서다. 150년간 이어진 내전을 매듭짓고 혼란한 정국을 안정시키는 게 최우선 목표인 도쿠가와 막부의 눈에 봉건질서를 비판하고 평등사상을 강조하는 선교사들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17세기부터 도쿠가와 막부는 외국인 선교사들을 국외로 추방했으며 이는 200년 넘게 이어졌다. 쇄국정책은 끝났지만 단일민족 신화는 남았다. 이코노미스트는 “제국주의 이후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일본인들과 일본의 경제적 기적에 대한 설명을 원하는 이들이 단일민족 신화를 재생산했다”고 꼬집었다. 동질성에 대한 환상을 갖고있는 보수주의자들이 오늘날까지 순혈주의에 매달린다는 설명이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지난해 1월 “2000년간 하나의 민족, 하나의 왕조가 이어져 온 국가는 일본 뿐”이라고 말해 소수민족인 아이누족을 부정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일본 애니메이션 ‘테니스의 왕자’ 원작자가 그린 오사카 나오미의 모습. 피부색과 머리색을 밝게 묘사해 화이트워싱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사진=CNN)그래서일까. 도쿄올림픽에 혼혈 선수들을 앞세운 건 위선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일본 선수단 기수로 나선 하치무라도 “소셜미디어에서 거의 매일 혐오발언 메시지를 받고 있다”고 토로할 정도다. 하치무라 뿐일까. 마지막 성화주자로 주목받은 오사카 역시 2019년 호주 오픈에서 우승한 뒤 ‘화이트 워싱(모든 작품 배역을 백인으로 캐스팅하는 행위)’ 당한 바 있다. 그의 후원업체이자 일본 최대 라면업체인 닛신식품이 오사카를 그린 애니메이션 광고에서 피부는 하얗게, 머리는 갈색으로 묘사하면서다. 당시 오사카는 “내 피부는 누가 봐도 갈색”이라 일침했고 닛신식품이 사과와 함께 광고를 삭제하며 논란이 일단락됐다. 유명인들도 일본 내 인종차별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일반인들은 오죽할까. 일자리를 구하거나 월세집을 구하는 것도 혼혈 일본인들에겐 쉽지 않다고 한다. 길을 가다가 일본 경찰이 영장도 없이 멈춰세운 뒤 수색하는 일도 이들에겐 드물지 않다고. 일본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는 바하마 혼혈 오모테가와 알론조(25)가 이번 도쿄올림픽 개회식을 지켜본 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 나라는 원할 때만 우리 편에 선다.”개회식이 열린 23일 도쿄올림픽 경기장 밖에서 올림픽 반대 시위를 경찰이 진압하고 있다(사진=AFP)
  • [김보겸의 일본in]일본은 G7 자격이 있을까
    일본은 G7 자격이 있을까
    김보겸 기자 2021.07.14
    지난달 11일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스가 총리(사진=AFP)[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어색한 웃음. 화기애애한 각국 정상 옆에서 겉도는 모습. 뭔가 불편해보이는 자세….지난달 영국 콘월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보여준 모습이다. 이를 지켜본 일본인들 사이에선 이런 의문이 나왔다. “과연 현재 일본은 G7에 있을 자격이 있는가?” 일본이 G7 자격이 없다면 이유가 뭘까? 미국을 중심으로 한 G7 국가들이 중국에 맞설 대안으로 민주주의와 자유로운 경제를 기치로 내거는 와중, 일본은 그 중요한 정상회의에서 “도쿄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해달라”는 말밖에 못 했다는 게 회의를 지켜본 이들의 인상이다. 스가 총리가 G7 다른 정상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 트위터에서 주목받고 있다. 오른쪽은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사진=트위터)그 이면에는 일본이 민주주의 국가의 형식만 갖췄을 뿐, 과거 부흥을 이끈 권위주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이 자리잡고 있다.우선 과거에는 일본이 G7 참가 자격이 있었는지 돌이켜보면, 그런 측면이 있다. 일본이 처음 주요국 정상회의에 참여한 건 1975년이다. 당시에는 G7이 아니라 G6(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었고,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참여한 나라가 일본이었다. 일본은 선진국으로 평가받기까지 이벤트를 적극 활용했다. 앞서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뒤인 1964년 도쿄올림픽을 열어 패전국의 부흥을 알렸고, 1968년에는 옛 서독을 제치고 국민총생산(GNP) 2위 경제대국에 올랐다. 1970년 열린 오사카엑스포에서는 관객 6400만명을 동원하며 일본 경제성장을 도왔다.1975년 프랑스에서 제1회 주요 6개국(G6) 정상이 모인 모습. 왼쪽부터 이탈리아, 독일, 미국, 프랑스, 서독, 일본 정상(사진=AFP)이 시절 일본인들을 일컫는 말도 있었다. 바로 “토끼집에 사는 모레쓰(猛烈, 맹렬) 샐러리맨”이다. 선진국 가운데선 주택 환경이 가난한 일본을 빗댄 말로, 다른 나라보다 최소 두 배는 비싼 값을 치르고도 안 좋은 집에 살면서 기업에 모든 걸 바치는 일본인이라는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일본은 ‘일본주식회사’라 불릴 정도였다. 일본이라는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있어서는 민과 관, 기업 모두가 너나할 것 없었다. 모두가 주주인 셈이다. 그시절 일본은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분위기 속에서 나의 성장을 곧 회사의 성장으로 여기고 필사적으로 일하는 나라였다. 1964년 도쿄올림픽, 1970년 오사카엑스포 등을 거쳐 경제성장을 이룬 일본 도쿄의 1972년 모습(사진=AFP)이런 성장 공식은 권위주의를 동반했다. 나보다는 국가를 우선하며, 공공의 목표를 위해서는 사소한 건 잠시 제쳐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며 차이를 좁혀나간다는 민주주의 대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일본의 민주주의가 ‘표면적 민주주의’로 급격히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게 일본 사회의 현주소다. 상징적인 사례가 도쿄올림픽 개최를 둘러싼 일본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이다. 4차례나 이어진 긴급사태 발령에 지친 국민들이 반발하고, 올림픽을 강행하면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질 것이라며 전문가들이 경고했지만, “인류가 코로나19에 승리했다는 증거로 도쿄올림픽을 열겠다”는 스가 총리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낯선 G7 정상들 앞에서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 스가 총리는 유독 자기 사람들 앞에서만큼은 불쾌감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고 한다. 올림픽을 중단해야 한다는 전문가 쓴소리에는 “자신이 총리인 줄 아는 것이냐”며 버럭하는가 하면, 코로나19 감염세가 심상치 않다는 후생노동상의 보고서를 책상에 던져버릴 정도라고. 지난 11일 도쿄올림픽 카누 경기장 인근에서 번개가 치고 있다(사진=AFP)누구도 감히 최고 결정권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못하는 상황은 자연스레 기회비용을 키웠다. 물론 올림픽이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만큼 개최냐, 중단이냐를 합의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은 맞지만 이럴 때일수록 객관적인 기준을 세우고 개최 여부를 판단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학자 우노 시게키는 “감염자 수나 병상 사용률 등 기준을 세웠어야 한다. 중지나 연기에 따른 부담도 어떻게 나눌 것인지 관계자들이 논의해야 했다”고 꼬집었다. 스가 총리의 분노가 두려워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탓에 결국 해외관중뿐 아니라 국내관중도 받지 못해 오히려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적자 올림픽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는 비판이다. 우노는 “전문가가 만류하더라도 정부가 개최를 강행한다면 그 이유라도 제대로 밝혀야 하는데, 현 정권에선 이런 의사결정도 불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최대 요인, 정치를 향한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최근 도쿄도의원 선거 투표율이 이를 보여준다. 인구 1400만명의 도쿄도 의회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예측할 수 있는 전초전 성격을 띤다. 실제 2009년에는 민주당 정권교체를, 2013년에는 자민당 복권을 예언한 것이 도쿄도의회 선거다. 하지만 이번 도쿄도의회 선거는 그 중요성이 무색할 정도로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2017년 선거에 비해 8.89%포인트 떨어진 42.39%로, 역대 2번째로 낮았다. 이유로는 긴급사태를 발령할 정도로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한데 도쿄올림픽을 강행하는 모순에 국민들이 지지하고 싶은 정당이 없다는 점이 꼽힌다. <크레용 신짱: 어른 제국의 역습>에 등장한 1970년 오사카 엑스포(사진=어른제국의 역습)도쿄올림픽을 통해 2011년 동일본대지진 10년 후 일본 부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건 초등학생 때 1964년 도쿄올림픽을 감명깊게 본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꿈이자 고등학생 때 본 스가 총리의 목표이기도 하다. 일본이 ‘좋았던 옛 시절’을 그리워한 지는 한참 됐다. 일본에선 2001년 개봉한 <크레용 신짱: 어른 제국의 역습>에서는 20세기 되살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970년 오사카엑스포가 등장한다. 아이처럼 돼 버린 어른들의 모습이 공포스럽게 그려진다. 영화는 ‘미래가 암울하다면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는 편이 나은가?’라고 묻는다. 2025년은 주요국 정상회의 개최 50주년이다. 2021년 도쿄올림픽 개최 여부를 둘러싼 일본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은 2025년에도 일본이 G7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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