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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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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포탄 발포 부른 축구 열기..마지막 경평전 [그해 오늘]
    공포탄 발포 부른 축구 열기..마지막 경평전
    장영락 기자 2025.03.25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79년전인 1946년 3월 25일 서울 경성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 마지막 경평대항축구전이 열렸다. 해방 후 처음 열린 경평전이었던 터라 경기가 과열돼 관중 난동까지 발생했는데, 축구팬들이 국내 리그는 물론 해외축구도 열성적으로 챙겨보는 요즘 문화는 나름 전통이 있었던 셈이다. 1946년 3월 25일 경평전 기념촬영 사진. 서울역사편찬원 자료.경평전은 1929년 조선중앙일보 사장이던 정치인 여운형이 서울과 평양의 도시 대항 축구 경기를 구상한 끝에 처음 열렸다. 분단 전인 당시만 해도 서울과 평양은 각각 제1, 제2의 도시로 모두 황해권에 자리해 멀지 않은 도시였던 터라 지역 라이벌 의식이 강했다.여기에 일제 핍박으로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가 거의 없던 시절이다보니 경평전은 1935년까지 계속되면서 서울, 평양시민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관심 속에 치러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독재 정부가 스포츠를 사람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썼던 사례와 달리, 식민지에서 열린 도시 대항전은 오히려 피지배 대중들의 공동체 정체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당시에는 팀이 아니라 군(軍)이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에 경평전은 경성군과 평양군 대결로 진행됐다. 양팀은 대체로 스포츠 활동 기반이 있던 대학 선수들이 주축이 되었고 분단 이후에 경성군과 평양군 자체가 남북한 국가대표팀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경평전은 축구에 대한 관심도 불러일으켜 전국에서 선수들이 몰려들었고, 경평전 자체는 중단됐으나 1938년에는 서울, 평양, 함흥 3도시 대항전, 서울을 중심으로 10개 팀이 참여한 전조선도시대항축구대회 등이 대형 스포츠 이벤트의 흐름을 이어갔다. 그러나 전쟁에 몰두하던 일제가 1942년 강제동원을 위해 조선 전역에서 구기종목대회를 금지해버리면서 경평전은 해방 후에야 다시 경기를 치를 수 있게 됐다.북한 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1946년 3월 25일 후일 동대문운동장으로 개칭 후 지금은 철거된 경성운동장에서 해방 후 처음이자 마지막 경평전이 열렸다.이틀 동안 대회가 열렸는데, 경기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 만원 관중이 된 것은 물론 흥분한 팬들이 난동을 일으켜 경찰이 공포탄을 발포해 이들을 해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당초 치러질 예정이던 3차전은 당연히 취소됐다.축구에서 벌어진 감정싸움은 분단 체제 하 정부 수립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던 당시의 정치적 혼란상도 어느 정도 반영한다. 이 갈등은 관중 난동과는 비교도 안될 전쟁이라는 비극으로 비화됐고, 그렇게 경평전은 예전 기록에서나 찾아볼 과거로만 남게 됐다.
  • 4세 여아 의붓딸 암매장 계부…그가 흘린 '눈물'의 의미[그해 오늘]
    4세 여아 의붓딸 암매장 계부…그가 흘린 '눈물'의 의미
    김민정 기자 2025.03.24
    [이데일리 김민정 기자] 2016년 3월 24일, 숨진 네 살배기 의붓딸을 암매장한 계부 안모(38) 씨가 경찰에 붙잡힌 지 엿새 만에 돌연 ‘눈물’을 보였다.안씨는 2011년 12월 25일 오전 2시께 숨진 의붓딸인 안승아(4)양의 시신을 부인 한모(36) 씨와 함께 진천군 백곡면 야산에 암매장했다.안양은 나흘 전인 같은 달 21일 친모인 한씨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며 물을 받아 놓은 욕조에 머리를 3∼4차례 집어넣어 숨진 뒤 집 베란다에 방치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안양은 한씨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였다. 살해 당시 한씨는 안씨의 딸을 임신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사진=연합뉴스)이런 사실은 2016년 3월 17일 3년째 미취학 아동이 있다는 학교 측의 연락을 받은 동주민센터 직원이 안씨의 변명을 수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하면서 드러났다.한씨는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18일 오후 9시 50분께 자신의 집에서 “아이가 잘못된 것은 모두 내 책임”이라는 내용을 유서를 남기고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같은 날 긴급체포된 안씨는 경찰에 붙잡힐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내내 침착하고 담담했다. 4차 진술조사까지는 거의 ‘예’와 ‘아니오’ 식으로 단답형 대답만 하며 냉정한 모습을 유지했다. 프로파일러 조사 때는 여유 있게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안씨는 암매장 안양 시신 발굴 현장에서는 “왜 제대로 못 파느냐”고 독려, 경찰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그토록 ‘무쇠 멘탈’의 소유자로 보이던 그는 한씨 유서와 일기를 접한 뒤에는 수사에 협조적으로 자세를 고쳤다. 시종 부인하거나 마지못해 시인했던 안양 폭행 사실도 비교적 상세하게 털어놨다. 한씨의 일기장에는 유서와 보육원에 있던 친딸 안양을 집에 데려온 뒤 벌어진 집안 내 갈등 상황이 소상히 기록돼 있었다. 또 뒤늦은 용서를 구하며 안씨 사이에서 태어난 네 살배기 막내딸이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는 당부도 들어 있었다.비록 불화가 잦았다고는 하지만 인생의 반려자였던 아내 한씨의 절절한 표현은 경찰 조사에서 시종 냉정함과 침착함을 유지하던 안씨의 감정을 자극한 듯했다.다만 안씨의 이같은 눈물이 한집안의 ‘풍상’을 가장으로서 다스리지 못한 죄책감에 흘린 뒤 늦은 참회의 눈물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쏟아지는 국민적 비난을 모면하기 위한 위선의 눈물인지는 알 수 없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무엇보다 안씨가 틀림없는 시신 유기 장소라고 지목해 16곳이나 파헤친 진천 야산에서 안양 시신을 찾아내지 못했다. 대규모 인력과 굴삭기 등 장비, 경찰 탐지견과 지표면 투과 레이더까지 동원했지만 소용없었다.결국 ‘시신 없는 암매장사건’이 되면서 안씨가 재판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할 가능성이 우려됐지만 안씨는 범행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검찰은 “이 사건은 친모가 딸을 살해하고, 호적상 아버지인 피고인이 사체를 야산에 암매장한 패륜적 범죄”라며 “피고인이 평소 부인과 아이를 지속해서 폭행·학대한 점을 고려하면 그 죄질이 극히 불량해 엄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안씨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안씨는 항소심에서 원심보다 높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재판부는 “피고인은 부인의 학대 행위를 말리지 않고 의심을 피하고자 함께 동조해 피해자를 수차례 폭행하는 등 학대했다”며 “딸이 사망에 이르게 된 책임이 피고인에게 있다고 보기 어렵지만, 진실을 숨기려 한 점은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설명했다.이어 “피고인은 피해자가 사망한 뒤 부인을 수차례 폭행하고 친딸도 폭행했다”며 “비록 피고인이 뒤늦게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더라도 1심의 형량은 가볍다”고 밝혔다.이후 대법원이 안씨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형이 확정됐다.
  • "잊힐까 두렵다"...'증발'한 신혼부부, 9년째 미스터리 [그해 오늘]
    "잊힐까 두렵다"...'증발'한 신혼부부, 9년째 미스터리
    박지혜 기자 2025.03.23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사건이 국민들에게 잊히는 게 두렵고 잊혀선 안 된다”6년 전 오늘, ‘부산 신혼부부 실종 사건’ 관련 실종자 가족이 한 매체를 통해 한 말이다.지난 2016년 흔적도 없이 사라진 부부 중 아내 최성희(42) 씨의 어머니는 당시 “(딸이) 스스로 사라질 이유는 손톱만큼도 없고, 지금까지도 나타나지 않을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부산 수영구 한 아파트에 거주하던 결혼 6개월 차 전민근(43)·최성희 씨 부부가 사라진 건 2016년 5월이다.당시 경찰은 아파트 안팎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부부의 동선을 확인했지만, 부부가 집 안으로 들어간 흔적만 있을 뿐 나간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경찰은 사건 발생 2년 10개월 만인 2019년 3월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당시 경찰이 배포한 전단에 따르면 최 씨는 2016년 5월 27일 오후 11시께 마트에서 물건을 산 뒤 귀가했고, 전 씨는 그 다음 날인 28일 오전 3시 30분 집에 오는 모습이 아파트 엘리베이터 CCTV에 담겼다.이후 아무도 부부를 보지 못했다.가족의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이 확인한 신혼집에는 가방과 지갑, 노트북, 여권만 없어진 상태였다.이상한 점은 두 사람이 집을 나서는 장면이 아파트 내 22개 CCTV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찰은 인근 터미널이나 버스 정류장 등의 CCTV도 확인했지만 부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연극배우였던 최 씨가 그해 5월 30일 일하던 극단에 “한동안 어떤 연락도 받지 못할 것 같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하루 뒤 전 씨가 동업자에게 “한동안 일을 못할 것 같다”며 가게 운영비 전부를 이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6월 2일 전 씨가 아버지에게 “괜찮아요”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게 부부의 마지막 연락이었다.이후 부부는 3년 가까이 휴대전화, 교통카드, 신용카드 등을 아예 사용하지 않은 듯 생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경찰은 주변인 탐문을 통해 남편 전 씨의 옛 여자친구 A씨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다.A씨는 전 씨와 연락을 지속해왔고, 전 씨가 결혼한 후에도 부부를 괴롭힌 것으로 드러났다.노르웨이에서 거주하던 A씨는 공교롭게도 최 씨가 주변에 임신 사실을 알렸던 무렵이자 부부 실종 보름 전 한국에 들어왔다가 부부 실종 일주일 뒤 다시 현지로 출국했다. 또 한국에서 현금만 사용하는 등 의문스러운 행적도 보였다.A씨는 경찰이 자신을 상대로 수사를 벌이자 현지에서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방어하다 종적을 감췄다.경찰은 2017년 3월 인터폴에 적색 수배를 요청했고, 그해 8월 노르웨이에서 A씨가 검거돼 수사가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노르웨이 법원이 2018년 12월 한국 정부의 범죄인 인도 청구에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법무부는 노르웨이 법원의 불승인 결정 사유에 대해 ‘조약과 외교 관계상 비밀유지 의무가 있어 구체적으로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지만, 증거가 부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2019년 5월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 따르면 A씨는 전 씨와 친한 친구였을 뿐 연인 사이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인들은 “(두 사람이) 고등학교 때부터 만나던 사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헤어진 것으로 전해졌다.지인들은 방송에서 “전 씨가 A씨에게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며 “A씨는 이혼하게 된 것도, 어린 딸을 잃은 것도 다 전 씨 때문이라고 말했었다”라고 전했다. 당시 방송에서 전 씨 어머니가 A씨의 노르웨이 집에 찾아가는 장면이 나왔으나, A씨 부부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A씨 가족은 오히려 A씨가 전 씨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이 사건은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범죄심리학자 박지선 숙명여대 교수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 사건을 ‘가장 분석하기 어려웠던 사건’으로 꼽기도 했다.하루아침에 딸을 잃어버린 최 씨 어머니는 지난해 12월 한 방송을 통해 “(딸이) 어디서 살아만 있다면…”이라며 눈물지었다.그는 “내가 포기하면 딸을 포기하는 것 같아서 방송에 출연하게 됐다”며 “우리가 생각해도 미스터리다. 말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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