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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신은 하루 전부터 예고됐다. 남성연대 부채 상환과 운영 자금 조달이 목적이었다. 25일 남성연대 홈페이지에는 “목숨을 걸고 시민 여러분께 호소하려 한다. 남성연대에게 마지막 기회를 달라. 이제 한강으로 투신하려 한다”며 “부채 해결을 위해 1억 원만 빌려달라. 빌려주시는 돈은 남성연대의 급박한 부채를 갚고 운영 자금을 마련하여 다시 재기할 종잣돈으로 삼겠다. 빌려주신 돈은 반드시 갚겠다”는 장문의 공지가 올라왔다.
남성연대는 정부지원금을 받지 않고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매월 2000원의 회비로만 운영돼왔다. 남성연대가 2년 동안 벌어 드린 회비와 후원금은 2000여만 원에 그쳤고, 적자만 2억 원이 넘는 재정난에 시달렸다.
성 대표는 그렇게 마포대교 난간 위에 섰다. 당시 한강은 전날까지 내린 비로 물이 불어나 유속이 굉장히 빠른 상태였다. 평소보다 최소 6배에서 최대 25배 이상의 급류가 흘러 평범한 수영도 위험한 수준이었다. 또 이물질로 인해 물이 탁했기 때문에 입수 뒤 수면 방향을 알아차리기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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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현장에는 카메라 기자를 비롯해 남성연대 관계자들이 있었다. 인명구조자격증을 지닌 전문가도 불러 사고에 대비했다. 그러나 구조 전문가가 한강 둔치에 겨우 도착할 즘에 손쓸 틈 없이 성 대표는 한강에 몸을 던졌다.
성 대표가 투신 전 한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남성연대 회원 1명이 먼저 현장에 도착해 수심과 주변 상황 등을 알렸다. 성 대표는 양복 바지 하단을 묶는 끈을 준비하는 등 나름대로 안전에 대비했고, 떨어지는 지점과 강변까지 거리를 약 100m로 추정하면서 전투수영으로 헤엄쳐 나오겠다고 장담했다.
성 대표가 투신할 때 옆에서 사진을 찍은 카메라 기자, 관계자 등 4명에게는 자연스레 ‘자살을 방조했다’는 비판이 따랐다. 이에 경찰은 자살방조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 법리 검토를 했지만 혐의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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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7년 12월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여성부 폐지운동본부’ 만들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게시판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운동 벌이며 화제를 모았고, 2008년부터는 남성연대를 만들어 상임대표를 맡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남성인권 운동을 펼쳐왔다.
특히 투신하기 한 해 전인 2012년에는 “충북 제천여성도서관이 남성을 차별하는 기관”이라며 시위를 벌인 데 이어 같은 해 10월에는 여성의 생리휴가가 남성차별을 조장한다고 주장하는 등 다방면에서 남성 인권 관련 운동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