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진호 기자] 항체약물접합(ADC)을 적용한 신약이 난치성 고형암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미국 화이자부터 일라이릴리,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 굵직한 기업들이 본격 뛰어들고 있다. 3대 ADC 기업 중 하나를 인수한 화이자는 일본 다이이찌산쿄를 뒤쫓기 시작했고, 삼성과 셀트리온은 국내 관련 바이오벤처와 함께 ADC 시장 진출을 위한 투자와 협력 계획을 마련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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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 글로벌데이터는 지난 8월 보고서를 통해 2029년 ADC 시장이 360억 달러(한화 약 47조 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연구된 ADC 기술은 항체와 톡신(약물), 이를 연결하는 접합체로 구성된다. 과거 ‘약물-항체 결합’(DAR) 비율을 조절하지 못했던 1세대 기술에서 최근 2세대 ADC 기술로 진화했다. 2세대 ADC에서는 안정적으로 약물과 결합하는 접합체(링커)를 개발하거나 항체를 변형해 결합 안정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DAR을 조절한다. 이 같은 기술을 확보한 시젠과 다이이찌산쿄 등이 2010년대 들어 2세대 ADC 신약을 선보이며 관련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25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화이자의 미국 시젠에 대한 인수 절차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 화이자는 지난 3월 430억 달러(한화 약 56조원) 규모로 시젠을 인수하겠다고 밝혔고, 7월에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와 법무부 등에 관련 서류 신고를 완료했다. 해당 인수합병 절차는 올해 또는 내년 초에 완료된다. 화이자는 2030년까지 해당 분야에서 최소 1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전망하고 있다.
1997년 설립된 시젠은 ADC 업계 선구자로 통한다. 시젠은 △T세포 림프종 치료제 ‘애드세트리스’(성분명 브렌툭시맙 베도틴) △요로상피암 치료제 ‘파드셉’(성분명 엔포투맙 베도틴) △자궁경부암 치료제 ‘티브닥’(성분명 티소투맙 베도틴)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약물은 순서대로 미국 기준 2011년과 2019년, 2021년에 승인됐다. 주요 타깃 암종에 따라 항체만 다를 뿐 모두 ‘베도틴’이라는 같은 톡신이 적용됐다.
ADC 신약 개발 업계 관계자는 “고형암 분야에서 그동안 뚫지 못한 세부 적응증을 획득하면 매출은 따라오게 된다”며 “면역항암제 등 기존 약물과 ADC의 병용 임상을 통한 적응증 확장 가능성도 높게 평가된다. 미래 고형암 시장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ADC 개발에 국내외 기업이 뛰어드는 이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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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젠과 함께 ADC 분야 양대 축으로 알려진 다이이찌산쿄가 개발한 ‘엔허투’(성분명 트라수투주맙 데룩스테칸)는 난치성 유방암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엔허투는 2019년미국에서 HER2 양성 유방암 치료제로 승인받은 ADC 신약이었다. 현재 미국 기준 HER2 저발현 유방암, 전이성 HER2 양성 위 또는 위 접합부 선암, 비소세포폐암 등으로 엔허투의 적응증이 확장됐다. 지난해 13억1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 7일 다이이찌산쿄는 독일 ‘글라이코톱’에서 기술도입한 항체에 자사의 톡신을 결합한 ‘DS-3939’에 대해 난소암, 췌관선암 등 6종의 고형암 대상으로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임상 1/2상 착수하며 후속 신약개발을 위해 잰걸음을 내고 있다. 이들 이외에도 지난 7월 미국 일라이릴리가 독일 ADC 전문 기업 ‘이머전스 테라퓨틱스’를 인수하는 등 관련 신약 개발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가 가능성있는 ADC 후보물질을 만들기위해 관련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텍 발굴에 힘을 쏟고 있는 셈이다.
먼저 움직인 것은 셀트리온이다. 지난해 1월 회사는 ADC 전문가들이 창업한 영국 ‘익수다 테라퓨틱스’(익수다)에 지분투자를 단행했다. 당시 셀트리온과 익수다, 레고켐바이오가 연합전선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됐다. 익수다가 2020년 국내 대표 ADC 전문 기업 레고켐바이오로부터 ‘IKS03’(혈액암)과 ‘IKS014’(HER2 유방암) 등 후보물질을 기술도입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셀트리온은 한국화학연구원 출신의 정두영 박사가 창업한 ‘피노바이오’와 최대 15개의 ADC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기술실시 옵션 도입 계약과 지분투자 계약 등도 체결했다. 피노바이오 측은 “회사가 개발한 ADC 후보물질의 특징을 분석해 가능성이 입증되면 셀트리온이 곧바로 가져가는 계약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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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이 포함된 삼성그룹은 펀드 투자 대상으로 지난 4월 스위스 ADC 전문 아라리스와 지난 13일에서는 국내 에임드바이오를 선정했다. 이중 삼성의료원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2018년에 설립된 에임드바이오는 FGFR3-TACC3이 과발현하는 교모세포종 대상 ADC 신약 후보물질을 보유한 기업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