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업계는 장기 투자인 만큼 당장의 시가보다는 기업의 내재가치와 미래가치를 반영해 산출한 적정 밸류에이션을 제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관투자자들(LP) 사이에서는 손실률 가리기 용이라며 불만이 높다.
주가 배제 요구하는 PEF들…폭락한 시가 대신 공정가치 제출
9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금융감독원은 PEF운용사협의회 측에 공정가치평가 제도 오남용을 방지하도록 감독지도에 나설 계획이다. 최근 일부 PEF를 중심으로 영업실무 선상에서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상장사 경영권 지분 평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남용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어서다. 공정가치는 통상 신뢰할만한 시가가 없는 자산에 대해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평가 방법이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해 3월 회계기준원 질의회신을 기반으로 “(상장사 투자 지분 평가에 대해) 회계단위를 전체투자지분으로 선택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해 사용가치 평가가 가능하다”는 내용의 의결 사항을 공고했다. 코스피·코스닥 등 시장 가격이 명백히 존재하는 상장회사 지분에 대해서는 시가평가가 원칙이지만, 지분 전체를 평가하는 경우에만 경영권 보유의 가치를 가산해 평가할 수 있다는 입장을 확인한 셈이다. 해당 의결안은 일반기업의 회계에 적용되는 내용으로, 집합투자기구(PEF 등)는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PEF들이 해당 규정을 활용해서 직접 공정가치평가를 진행하고 기업가치를 높여 기관 영업 등에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부 회계법인 등에 외주를 주고 상장사 기업가치를 새로 평가해 공정가액을 산출, LP 측에 선제적으로 제출하고 금융당국이 허용하는 규정이라는 점을 근거로 반영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PEF가 의뢰해 산출한 공정가액은 시장가격 대비 평균 2~4배 넘게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한 예로 PEF협의회 의장사인 JKL파트너스부터가 투자한 상장사 지분에 대해 별도의 공정가치를 산출해 운용보고 시 LP에게 제출하고 있다. 약 4년 전 국내 기관투자자 자금을 모아 지분을 매입한 롯데손해보험(000400)의 1주당 공정가치를 6577원으로 책정받은 상태다. 롯데손해보험의 코스피시장 시가(지난해 11월 회계법인 평가 기준 시점 1500원대) 대비 약 4배 높은 수준이다. JKL파트너스 측은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의 의결 내용을 인용해 지난해 12월 회원사인 PEF들에 상장사 경영권 인수(Buyout) 투자에 대한 가치평가 가이드라인까지 배포했다. 골자는 PEF가 상장사의 경영권 지분을 인수했을 때 해당 PEF에 출자한 LP들은 가치평가 시 주식시장 가격을 배제하고 공정가격을 선택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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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PEF 업계는 LP에게 제출하는 보고서는 참고용이고, 펀드 회계처리는 시장가격으로 하기에 자본시장법상 문제소지가 발생할 여지는 없다고 항변한다.
LP들 “PEF 공정가치 평가액 터무니없다…요구한 적도 없는데 들고와”
LP들 사이에서는 PEF가 공정가치를 들이미는 이유가 손실률을 가리기 위함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합리적인 참고 정보를 제공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본 목적은 폭락한 시가를 배제해 손실을 축소하고 영업 평판을 관리하려는 목적에서 공정가치 반영을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가와 괴리가 상당한 공정가액이 기관투자자들의 수익률에 반영되는 점도 문제다. PEF가 기관투자자(LP)에게 펀드 수익 현황 보고 시에 높게 책정된 공정가액으로 작성해 제출하고, 수익률이 아쉬운 LP의 경우 이를 그대로 반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평가다. PEF 측 공정가액 제출을 금융위가 내놓은 권고사항으로 오해해 채택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한 기관투자자 관계자는 “PEF가 시가는 내지 않고 요구한 적 없는 공정가치를 산출해서 가져와 반영해달라고 했다”며 “공정가치를 시가 대비 아주 높은 금액대로 책정하고 있는데, (폭락한) 수익률을 만회해보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국에서 허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니 또 애매해서 할 말이 없다”며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PEF의 공정가치를 그대로 반영하는 곳들(기관)이 있다. 이 때문에 (기관투자자들의) 실제 수익률 왜곡이 심해진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기관투자자 관계자는 “심사단계에서 한 PEF가 당연히 시가로 평가해왔어야 하는걸 공정가치로 해서 제출한 걸 발견했다. 다시 (제대로) 평가해오라고 했더니 응하지 않아 탈락시켰다”며 “다른 기관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외부 기관까지 선임해 출자심사를 진행하니 걸러낼 수 있었던 것이라 본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당국 규정 적용에 문제 있어…지도할 것”
PEF가 금융위 규정을 내세워 영업 실무에서 직접 공정가치평가 기준으로 운용보고를 하거나 출자심사에 응하는 동향은 감독당국의 시야에 포착되지 못했다. 금감원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PEF의 상장기업 투자지분(경영권 프리미엄 지급) 평가 관련 업계 실무 현황’에서 “국내 PEF 20개사와의 유선 통화 결과 자본시장법규, PEF 정관 등에 따라 매 사업연도별로 펀드 재산 평가를 하고 있었다”며 “상장기업 투자지분(경영권 프리미엄 지급)의 경우 경영권 프리미엄 지급에도 불구하고 시가 또는 취득원가로 회계처리 하고 있었다”고 보고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당국은 PEF가 자본시장법을 우회하는 실태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며 “특히 일부 PEF의 규정 악용 등 법 위반 실태에 대해 신속하게 파악하고 지분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정확히 감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PEF가 직접 공정가치평가를 진행해 LP에게 반영을 요구하거나 출자심사에 그 가액을 사용하고 당국 규정을 끌어다 쓰는 실태에는 문제가 있다”며 “PEF협의회를 통해 이 같은 오남용 혹은 투자자들 사이에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도에 나설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와 관련 PEF협의회 의장사인 JKL파트너스는 “PEF가 산출하는 공정가치는 회계법인에서 경영권과 미래가치를 포함해 받는 것이라 공정성에 문제가 없다”며 “우리는 LP들의 요구에 따라 제출하는 것이지 자의적으로 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