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번하게 회사명 바꾸는 바이오기업들의 공통 종착역은

‘바이로메드→헬릭스미스’ 시총 5조원→3500억원대로 추락
사명 변경 후 거래정지 당한 곳들도 수두룩…‘투자 주의보’
복잡한 사명 변경…수사당국 자금 추적 어렵게 하려는 꼼수?
사명 변경 빈번하면 ‘이미지 세탁’ 의심…금융당국도 ‘경고’
  • 등록 2023-06-02 오전 9:26:46

    수정 2023-06-08 오전 7:17:38

이 기사는 2023년5월31일 7시26분에 팜이데일리 프리미엄페이지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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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새미 기자] 바이오·헬스케어 기업 중에는 사명을 변경하는 사례가 유독 많다. 30일 이데일리가 코스닥 상장 바이오헬스 분야의 주요 기업을 분석한 결과, 사명을 2회 이상 변경한 경우 투자에 적신호가 켜진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들 기업은 이전보다 시가총액의 변동 폭이 커지는 경향을 보였으며, 일부는 주권매매거래 정지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바이로메드→헬릭스미스’ 시총 5조원에서 3500억원대로 추락

바이오업계에서 사명을 바꾼 후 가장 극적으로 사세가 기운 곳으로는 헬릭스미스(084990)가 손꼽힌다. 헬릭스미스는 1996년 서울대 학내 벤처 ‘바이로메디카퍼시픽’으로 설립된 후 1999년 사명을 바이로메드로 변경했다. 20년간 사명을 유지하다 2019년 3월 27일 해외 상표권 충돌 문제 방지, 회사 경영 목적·전략에 따라 사명을 헬릭스미스로 바꿨다. 같은해 8월 유전자치료제 ‘VM202’에도 ‘엔젠시스’라는 브랜드명을 붙였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사명이 바이로메드였을 때 시가총액 5조원을 넘나들었던 헬릭스미스는 2019년 9월 엔젠시스의 임상 3상 결과 발표를 연기한다고 발표한 이후 시총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당시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는 해당 임상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위약과 약물의 혼용 가능성이 발견됐다며 최종 결론 도출은 임상 3b상 이후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이 무렵 헬릭스미스의 시총은 4조원대에서 1조원대까지 수직 하락했다.

이후 헬릭스미스 시총은 하락세를 이어왔다. 지난 23일 기준 헬릭스미스의 시가총액은 3548억원으로 전성기의 10분의1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사명 변경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개선시키겠다는 것은 상당 부분 증시에서 주가를 올리겠다는 의도가 들어있는 것”이라며 “연구개발기업이 주가 상승에 많은 비중을 두기 시작하면 회사가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 아니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헬릭스미스는 본격적으로 주가에 연연하면서부터 회사의 본질이 망가졌다”고 진단했다.

사명 변경 후 거래정지 당한 곳들도 수두룩

대부분의 바이오·헬스케어 기업들은 사명 변경 이후 주가 변동성이 커지는 경향을 보였다. 시총이 널뛰다 거래정지를 당한 바이오·헬스케어 업체로는 피에이치씨(057880), 뉴지랩파마(214870), 디엑스앤브이엑스(DXVX(180400)) 등이 있다.

피에이치씨는 2019년 5월 토필드였던 기존 사명을 필로시스헬스케어로 변경했다. 최대주주가 글로밴스에서 필로시스생명과학으로 바뀌고 경영진도 서문동군, 오성록 각자 대표이사 체제에서 최인환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바뀌는 등 변동이 있었던 영향이다. 필로시스헬스케어는 코로나 팬데믹 영향으로 1000억원에 못 미쳤던 시총이 2020년 8월 1000억원의 벽을 뚫고 같은해 9월에는 5674억원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승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필로시스헬스케어 시총은 같은해 10월 16일부터 5000억원 미만으로 떨어지더니 12월에는 2000억원 미만으로 주저앉았다. 필로시스헬스케어는 시총이 1600억~1700억원대였던 2021년 3월, 이미지 제고를 위해 피에이치로 사명을 바꿨다. 이후 피에이치씨의 시총은 1000억~2000억원대 사이를 오르내리다 지난해 3월 2067억원인 상태에서 주권매매거래가 정지됐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뉴지랩파마는 2019년 3월 에치이프로에서 뉴지랩으로 사명을 바꿨다. 사명을 바꿀 무렵까지만 해도 1000억원대였던 시총은 2020년 9월 5000억원대를 기록하는 등 5배 가까이 올랐다. 2021년 3월 뉴지랩은 사명을 뉴지랩파마로 바꿨다. 이후 뉴지랩파마의 시총은 주로 3000억~4000억원대 사이에서 움직이다 올해 1월 말부터 대주주 사망 소식이 전해지며 1300억원대로 급락했다. 같은해 3월에는 감사보고서 의견 거절 여파로 시총이 또 급락했다. 뉴지랩파마의 시총은 458억원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지난 3월부터 거래 정지됐다.

디엑스앤브이엑스는 2017년 12월 엠지메드에서 캔서롭으로 사명이 변경된 이후 시총이 2000억원대에서 2018년 초 4000억원대까지 치솟았다. 2018년 4월에는 시총이 3500억원대에서 1000억원까지 급락했다 5월에는 2800억원대로 오르는 등 롤러코스터를 오갔다. 캔서롭은 2019년 3월 외부감사인인 안진회계법인으로부터 2018사업연도 재무제표에 대해 ‘의견거절’을 받아 주권매매거래가 정지됐다. 2021년 10월에는 최대주주가 이왕준 전 대표에서 한미약품의 오너 2세인 임종윤 코리그룹 회장으로 바뀌면서 같은해 12월 사명을 현재의 디엑스앤브이엑스(DX&VX)로 변경하게 됐다. 디엑스앤브이엑스는 거래정지가 풀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이름값’이 어떤지 가늠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복잡한 사명 변경…향후 자금 추적 어렵게 하려는 꼼수?

비보존그룹과 카나리아바이오의 경우 인수 과정에서 기존에 썼던 동일한 사명을 활용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 투자자들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비보존그룹의 경우 2019년 코스닥 상장사 루미마이크로(현 비보존제약)를 인수했다. 2020년 9월 루미마이크로가 비상장사 이니스트바이오제약을 인수하고 이니스트바이오제약의 사명을 비보존 제약(082800)으로 바꿨다. 같은해 10월에는 루미마이크로의 사명을 비보존헬스케어로 변경했다.

비보존제약(구 이니스트바이오제약)은 2021년 3월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약품을 임의 제조한 것이 적발돼 행정처분을 당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비보존헬스케어는 지난해 10월 비보존제약으로 사명을 바꾸고 같은해 11월 비보존제약(구 이니스트바이오제약)을 흡수합병했다. 즉 약 1개월간 비보존제약이라는 사명을 구 이니스트바이오제약, 구 비보존헬스케어 등 두 회사가 같이 사용했던 기간이 있는 셈이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카나리아바이오의 경우 두올산업에서 인적분할한 두올물산홀딩스와 현대사료 두 곳이 전신이다. 두올물산홀딩스는 두올산업의 자회사 두올물산을 인수한 뒤 2021년 12월 사명을 카나리아바이오로 바꿨다. 지난해 4월에는 현대사료를 인수하고 같은해 6월 현대사료의 사명을 카나리아바이오(016790)로 바꿨다. 같은달 기존 카나리아바이오(구 두올물산)의 사명은 카나리아바이오엠으로 변경했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이처럼 사명을 헷갈리게 하는 회사들은 대부분 자본 이동이 많은 회사”라며 “일반 투자자들의 혼란을 조장한다기보단 향후 수사 당국이 자금 이동을 추적하기 어렵게 하기 위한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언급했다.

사명 변경 빈번하면 ‘이미지 세탁’ 의심…금융당국도 경고

금융투자업계에서 잦은 사명 변경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표면적으로 사명 변경은 대체로 기업 이미지 제고, 사업다각화 목적 등으로 이뤄지지만 실질적으로는 최대주주 변경에 따라 수반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대주주가 자주 바뀐다면 해당 회사 경영이 안정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뉴지랩파마의 경우 2018년 12월 최대주주가 넥스트아이에서 레넬인터내셔널로 바뀌면서 이듬해 1월 대표이사가 변경되고 같은해 3월 사명도 에치디프로에서 뉴지랩으로 교체됐다. 3개월 만에 최대주주가 메이요파트너스로 바뀌고 2021년 3월 사명이 현재의 뉴지랩파마로 변경됐다. 피에이치씨도 2019년 최대주주가 글로밴스에서 필로시스생명과학으로 바뀌면서 대표이사와 사명을 바꾼 케이스다.

금융당국에서도 최대주주나 사명 변경이 잦으면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금융감독원은 최대주주가 자주 변경되는 업체는 재무 상태가 부실한 곳이 많다고 보고 분식회계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대주주 변경이 잦은 회사는 재무 상태 부실, 관리종목 지정, 상장폐지, 횡령·배임 등 투자 위험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사명 변경이 빈번한 곳도 요주의 업체들이다. 실제로 지난해 사명을 변경한 코스닥 상장사 68개사 중 거래정지(8개사), 상장폐지(3개사) 등 악재가 발생한 곳이 44개사로 64%를 차지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사명 변경을 통해 신사업에 진출하고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겠다고 하지만 사실상 ‘이미지 세탁’을 위해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간판을 자주 바꿔다는 기업이라면 문제가 있는 곳은 아닌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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