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기자] 5000억이 넘는 상속세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던 한미약품그룹 오너가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지분을 사겠다는 사모펀드(PEF) 운용사 연합의 손을 놓고 소재·에너지 회사인 OCI그룹을 잡았다. 경영권이 불안해질 수 있는 PEF 대신 보다 안정적인 파트너를 골랐다는 평가다.
1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그룹 오너가 지분을 인수해올 예정이었던 PEF 라데팡스파트너스는 OCI와의 지분 거래 자문을 맡는 수준에 그치게 됐다. 라데팡스는 지난해 5월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장녀 임주현
한미약품(128940) 사장의 보유 지분 중 일부인 11.78%를 3200억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고 자금 조달을 진행해왔으나 투자자(LP) 확보에 난항을 겪으면서 딜 마무리가 지연돼왔다. 당초 핵심 출자자를 맡을 예정이었던 새마을금고중앙회가 이탈한 타격이 적지 않았다.
라데팡스 측은 딜을 마무리하기 위해 대형 투자사들을 조력자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IMM인베스트먼트, KDB인베스트먼트 등과 손을 잡고 3자 연합 구도로 자금 조달 구조를 마련했다. PEF 연합 측은 당초 송 회장과 임 사장 지분 외에도 장·차남이 보유한 지분까지 일부 사들일 의향을 피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송 회장과 임 사장이 PEF 대신 OCI를 파트너로 잡으면서 SPA 계약은 무산됐다.
한미약품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008930)는 지난 12일 OCI홀딩스와 각사 이사회 결의를 거쳐 각 사 현물출자와 신주발행 취득 등을 통해 그룹간 통합에 대한 합의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마무리 시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구주 및 현물출자 18.6%, 신주발행 8.4%)를 취득하고, 임 사장 등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는
OCI홀딩스(010060) 지분 10.4%를 취득한다.
|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
|
투자업계에서는 오너 일가가 경영권 유지를 위해 PEF보다 안정적인 선택지를 골랐다고 본다. PEF는 단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손쉬운 파트너지만, 오래갈 수는 없는 사이다. 통상 사들인 지분을 4~5년 안팎 보유하다 값을 올려 다시 내다 파는 것이 기본적인 PEF의 스타일이어서다. 엑시트 시점이 다가오면 결국 또 지분 이동으로 경영권을 위협받는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PEF는 최대한 많은 지분을 확보하길 원했을 텐데, 단기간 내에 오너 일가와 원하는 조건을 맞추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난해 말 MBK파트너스가 한국앤컴퍼니 경영권을 노린 사례가 오너 일가에 압박감을 준 감도 없지 않아보인다”고 평가했다.
한미약품그룹과 OCI홀딩스의 딜이 온전히 마무리 되기까지는 아직 과제가 남아있다. 창업주의 장남인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이 송 회장·임 사장 주도의 양 그룹 간 통합에 거센 반발의사를 표하고 있어서다. 회사 지분 매각·공동 경영을 약속하는 주요 결정을 다른 주주에게 공개하지 않고 ‘밀실’ 결정했다는 지적이다. 임종윤 사장은 차남인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과 연대해 블록딜로 다른 기관의 지분을 확보하는 등의 여러 대안을 열어두고 대응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