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박소영 기자] 유럽 벤처캐피털(VC) 사이에서 세컨더리(Secondary Deal·투자 지분을 사들이는 전략)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말라붙은 유동성을 수혈해 기관 출자자(LP)를 만족시키는게 가장 큰 목표지만,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쌓을 수 있다는 점도 흥행 이유로 꼽힌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관계자들이 올해를 유럽 세컨더리 시장의 원년으로 예측하는 만큼 유럽 세컨더리에 자본시장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 (사진=아이클릭아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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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더리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나 VC 등이 서로 투자한 지분을 사고파는 투자방식이다. 그간 유럽 VC은 스타트업에 수십만 유로에 달하는 자금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시장 침체로 IPO나 M&A 문턱을 넘지 못하는 포트폴리오사가 쌓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엑시트(자금 회수)에 먹구름이 끼자 대안으로 나온 전략이 세컨더리인 셈이다.
그동안 세컨더리는 미국에서는 활발했으나, 유럽은 까다롭고 시간 소요 길어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때마침 유럽 VC 생태계가 성숙해짐에 따라 지원 속도가 붙었고 세컨더리 시장에 대한 진입 장벽이 이전보다 느슨해졌다. 유럽 VC들이 세컨더리 딜에 집중하는 이유는 여타 국가들과 비슷하다. 우선 엑시트가 가능해지니 LP를 만족하게 하기에도 좋을뿐더러 자금을 확보해 신규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적인 포인트다. 후속 투자자도 검증된 후기 스타트업의 지분을 사들일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가장 최근 이뤄진 세컨더리 사례로 영국의 몰튼 벤처스의 시드캠프 펀드 지분 인수가 있다. 몰튼 벤처스는 시드캠프가 2014년 3000만달러(약 400억원)로 출시한 펀드 3의 지분 19%를 850만유로(약 123억원)를 들여 인수했다. 몰튼 벤처스의 이 같은 행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회사는 시드캠프가 앞서 조성한 펀드 1·2 등 다양한 펀드 지분을 세컨더리로 사들였다.
직접 세컨더리 펀드를 조성하는 사례도 흔해지고 있다. 일례로 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에 투자한 바 있는 영국 런치베이 캐피털은 1억달러(약 1334억원) 규모 세컨더리 펀드를 조성해 최근 2500만달러(약 334억원)를 모금했다. 회사는 펀드 조성액으로 매출 5000만달러(약 667억원) 이상인 성장단계 기업의 구주를 200만달러(약 27억원)에서 1000만달러(약 133억원) 선에서 매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스위스 지아노 캐피털이 지난해 2000만유로(약 290억원) 규모의 새 펀드를 조성했다. 회사는 해당 펀드의 첫 타깃으로 독일 차량 구독 스타트업 핀을 삼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서서히 나아지고 있어 일부 국가를 시작으로 M&A나 IPO가 꿈틀대고 있지만, 호황기였던 2021년 수준으로 아직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다”라며 “이는 유럽도 마찬가지인데 VC 입장에서는 세컨더리가 유동성을 얻을 좋은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