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에 예외 없다”…美 PE 포트폴리오사 파산 신청 증가 [마켓인]

올 초부터 5월 말까지 美 파산 신청 기업 80곳
이 중 사모펀드운용사 포트폴리오사는 18곳
지난해 연간 파산 규모는 6곳…5개월만에 3배
채무 불이행 리스크 높아지면서 파산보호신청
"기업 경영권 위해 임시방편 찾다가 법정행"
  • 등록 2023-06-15 오전 5:06:59

    수정 2023-06-15 오전 5:24:50

[이데일리 김연지 기자] 경기 위축으로 파산을 고려하는 국내외 기업이 증가하는 가운데 글로벌 사모펀드(PEF)운용사들이 투자한 포트폴리오사 상황도 녹록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중 일부는 실적 악화로 일찍이 운용사 손을 잡고 재기에 나섰지만, 예상치 못한 규제 변화와 경기 불확실성으로 채무 불이행 리스크가 짙어지면서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내년 하반기까지 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글로벌 PE들이 포트폴리오 파산으로 경영권을 잃으며 뼈 아픈 실패 사례를 남기기보다는 헐값에 포트폴리오사를 시장에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14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지난 5월 31일까지 미국에서 파산을 신청한 기업은 80곳이다. 이는 지난 2021년(53곳)과 2022년(28곳) 연간 규모를 크게 웃도는 규모다.

특히 올해 집계된 파산 신청 기업 중에는 PE가 투자해 기업 경영권을 확보한 포트폴리오사 18곳도 포함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21년부터 최근 2년간 집계된 PE 포트폴리오사 파산 수치(2021년 16곳, 2022년 6곳)를 소폭 밑도는 규모다.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잠재력 있는 기업을 사들였지만, 경기 둔화와 규제 변화 등 예상치 못한 변수로 수익을 끌어 올리지 못하면서 결국 파산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분석된다.

파산보호를 신청한 PE 포트폴리오사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은 KKR이 인수한 의료서비스 업체 엔비전헬스케어와 어드밴트인터내셔널이 인수한 매트리스 제조업체 썰타시몬스, 플래티넘에쿼티가 인수한 항공기 부품 유통사 인코라 등이 꼽힌다.

KKR이 지난 2018년 부채를 포함해 총 99억달러(약 12조6000억원)에 인수한 엔비전헬스케어는 지난달 미국 파산법 11조(챕터11)에 따라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파산법 11조는 청산보다 이익이 크다고 판단될 경우 미국 정부 관리 아래 기업회생을 꾀할 수 있는 제도다.

엔비전헬스케어는 환자 급감과 인건비 상승 외에도 미국 연방정부의 ‘의료비 폭탄 청구’ 관련 규제가 발표되면서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파이낸셜타임스 등에 따르면 엔비전헬스케어를 비롯한 일부 응급 의료 서비스 업체들은 응급 시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민간 의료보험 커버리지 이외의 시술 및 수술을 행한 대가로 의료비를 과도하게 청구하며 시장에서 질타를 받아왔다.

예컨대 응급 시술이 필요한 환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환자가 가입한 민간 의료보험사와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병원 혹은 임상의에게서 의료 서비스를 받을 경우, 해당 환자는 거액의 청구서를 받아왔다.

미국 사회에서는 이에 ‘가장 취약한 상황에서 환자가 감당하지 못할 의료비를 청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인식이 퍼졌고,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1월 1일을 기점으로 의료보험 가입자들에 대한 거액의 의료비 청구를 금지했다. 엔비전헬스케어의 매출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주요 배경이다.

파산보호를 신청한 곳은 이뿐이 아니다. 미국에서 침대 매트리스 시장에서 19%의 점유율을 확보한 썰타 시몬스도 채무 청산을 위해 올해 1월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원자재 비용 상승과 글로벌 공급망 혼란뿐 아니라 물가 상승으로 소비자들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으면서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달 들어서는 플래티넘에쿼티가 인수한 항공기 부품 유통업체 인코라도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업계에 충격을 안겼다.

PE 포트폴리오사의 파산 신청이 최근 들어 유독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피치북은 “운용사에서 포트폴리오사의 채무 불이행 리스크가 커지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기업 경영권을 잃지 않기 위해 구조조정을 행하며 파산만큼은 막아보고자 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파산으로 법정행을 택하며 뼈아픈 실패 사례를 남기기 보다는 임시방편을 써서라도 회생 가능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올해 5월까지 파산보호를 신청한 18개 기업 중 일부는 지난 2년간 공격적으로 구조조정을 해왔다”며 “운용사 입장에선 포트폴리오사의 채무 불이행 리스크가 커질수록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경영권 유지만을 위해서라도 법정 밖에서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보고서는 “법정 밖에서 이뤄지는 이러한 채무 관리 방식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방증”이라며 “현 상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앞으로 더 많은 실패 사례가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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