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한은의 실기론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8월 금통위에서 금리를 동결하자 용산 대통령실은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은은 10월 중순에야 긴축 기조에서 벗어나는 피벗(금리정책 전환) 결정을 내렸다. 실기론을 두고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한은이 서둘러 2개월 연속 금리를 내린 걸 보면 경기 대응 타이밍을 놓쳤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더 큰 걱정은 저성장 고착화가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1.9%, 2026년 1.8% 성장률 전망치는 잠재성장률(2.0%)을 밑도는 수치다. 한국 경제는 오일쇼크,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비상 상황 아래서 몇차례 고꾸라진 적이 있다. 지금은 그때처럼 초대형 위기가 닥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성장이 잠재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구조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한은 이창용 총재는 올 봄 한 세미나에서 “높게 매달린 과일을 수확하려면 어려움이 수반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령화, 저출산, 노동, 교육, 가계빚 등 우리 사회를 옥죄는 고질병을 치유하지 않고는 저성장 궤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일본이 반면교사다. 일본이 걸어간 길을 뻔히 보고도 그 길을 답습한다면 그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