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의 재림[임진모의 樂카페]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 등록 2024-12-30 오전 5:00:00

    수정 2024-12-30 오전 6:37:54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록은 힙합의 긴 전성기에 위축됐고 그 파워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시선이 거의 굳어져 왔다. 전미 빌보드 차트를 보더라도 록과 그 상징적 언어인 밴드의 느낌을 띤 곡은 거의 없다. 2020년대 들어선 아예 차트 40위권에 진출한 록 밴드 곡을 찾기가 어렵고 최근만 해도 그나마 록 스타일이라고 할만한 곡은 다름 아닌 블랙핑크 로제와 월드스타 브루노 마스의 협연곡 ‘아파트’에 불과하다.

‘아파트’가 웅변하듯 차라리 록의 소생은 록의 나라이면서 힙합과 컨트리가 만연한 미국보다는 K팝과 한국에서 가능할지 모르겠다. 확실히 2024년은 그간 움츠려온 록의 기지개가 완연했던 한해다. 그것도 주류와 비주류 모두에서 뚜렷했다. 먼저 K팝에선 댄스 아닌 록을 표방한 아이돌 데이식스가 역주행과 더불어 담대한 성공을 거두며 록의 부흥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7년 작 ‘예뻤어’와 2019년 발표곡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가 돌아온 것은 록의 포효가 갖는 현실적 공감력이 쉬 휘발되는 디지털 시대에 ‘삶의 배경음악’으로 만들어준 덕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데이식스의 신곡들 ‘웰컴 투 더 쇼’, ‘해피’, ‘녹아내려요’가 일제히 음원차트 상위권을 유린했다. 팬들 사이에선 록의 승리라는 얘기가 돌았다. 역시 밴드 형식을 취한 디지털 프로젝트 걸그룹 큐더블유이알(QWER)이 거둔 ‘고민중독’과 ‘내 이름 맑음’의 이례적 성과 또한 부분적으로 밴드에 의한 록 터치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최상위 걸그룹인 (여자)아이들의 신년 스매시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도 댄스 아닌 은은한 느낌의 록 혹은 밴드음악 요소를 차용했으며 일급의 가창력을 자랑하는 걸그룹 엔믹스의 ‘대시’도 힙합적 진행에 강력한 뉴 펑크를 더한 스타일이었다. 팝 댄스에 진심인 아이돌마저 록과 밴드를 기웃거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변화에 대한 필요 때문이다.

K팝의 영향이 10년을 넘길 만큼 장기화하면서 댄스 한 장르만으로는 불충분해 다양성을 향한 흐름이 록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했다는 것이다. 해외 팬들은 물론 국내 소비자들도 더 이상 기존 K팝 스타일에 매몰되지 않을 것이란 예측은 가능하다. 하지만 주류에서 록에 대한 관심은 진정한 욕구가 아니라 그저 새롭고 다르게 보이려는 시도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일시적일 수도 있다.

음악 인구의 ‘본연적 중립’ 경향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K팝이라는 일종의 독단에 직면해서 무조건 그것만을 챙기라는 위협적인 압박이 무의식중 가해지면 사람들은 쏠림을 피해 새로운 흐름에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꾀하는 방향은 당연히 K팝으로부터의 이탈과 탈주로 나타난다. 코로나19 직후 라이브 공연에 대한 수요는 가히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라이브가 록의 생명이라는 점을 웅변하듯 최근 인디밴드와 비주류 록그룹이 공연 분야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밴드 실리카겔과 웨이브 투 어스는 K팝 팬들에게 아직 낯선 이름이지만 중형 콘서트장을 관객으로 꽉 채울 정도로 상종가를 친다. 그 인기는 아이돌급이다. 매년 여름을 장식하는 록 페스티벌도 록 밴드의 인상적인 부흥을 견인하고 있다. 이 추세는 갈수록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얼핏 청춘 지향에다 소란스러워 변방과 마니아 영역에서 숨 쉬는 록과 밴드 음악에 대한 지속적 갈구는 로큰롤 50년 역사를 통해 확립된 다채로운 실험과 장르 형식이 음악가들에게는 필수 노선을 제공해 온 데서 비롯한다. 또한 록을 향한 팬들의 함성은 어떤 음악보다도 가시적으로 나타나 분위기 일신에 특장인 것도 사실이다. 록 인구의 오랜 캐치프레이즈는 ‘록 네버 다이’지만 근래 록은 죽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도래를 향한 호흡은 힘차고 그 소생의 속도도 빠르다. 2025년 신년 국내 음악계의 화두는 ‘록의 재림’이다. 해가 갈수록 신선함이 떨어지고 심지어 위기설도 도는 K팝의 글로벌 장세 유지를 위해서도 록은 주류로 도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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