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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현지에서 제기된 합병 불발 가능성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합병 무산은 최근 들어 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난 18일 미국 인터넷 정치매체 폴리티코의 보도가 도화선이 됐다. 폴리티코는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법무부(DOJ)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한항공은 DOJ가 합병을 반대한다는 것은 사실과는 다르다며 지속적으로 협의를 이어가는 중이라는 입장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DOJ로부터 합병 승인이 어렵다는 내용을 접수 받은 적이 없고 합병 불허 소송 여부 또한 전혀 결정된 바 없다”며 “범정부적인 지원과 경쟁제한성 완화 노력을 토대로 기업결합 승인을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이미 국토교통부 등 정부 측에서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대비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업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만약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무산될 경우 이해관계자들의 셈법은 상당히 복잡해질 전망이다. 무엇보다 한진칼에 8000억원을 투자한 산업은행은 투자금 회수 방안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나항공을 대한항공에 매각하는 조건으로 8000억원을 지원한 것인데, 매각이 불발되면 별도 기준 부채비율이 1600%가 넘는 회사를 다시 끌어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11월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의 모회사인 한진칼에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아시아나항공 매각 계획을 확정했다. ‘한진칼→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순으로 자금이 투입되는 식이다. 산업은행은 이미 한진칼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5000억원을 투입하고 3000억원의 교환사채(EB)를 인수해 총 8000억원을 지원했다. 이후 대한항공은 2021년 3월 유상증자를 실시해 3조3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대한항공은 이중 1조5000억원을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투입할 계획인데, 합병 승인이 나지 않을 경우 이 돈은 고스란히 대한항공 곳간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당시 조원태 회장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과 형성한 ‘3자 연합’과 한진그룹 지배구조 꼭대기에 위치한 한진칼 지분 경쟁 중이었다. 3자연합은 한 때 지분율을 45.23%까지 확보하며 조 회장 측 우호 지분율 41.4%를 웃돌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산업은행이 한진칼 지분 10.66%를 확보하며 승부는 단 번에 조원태 회장 측으로 기울었다. 만약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실패한다면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지도 못하고 조 회장의 경영권만 지켜준 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진칼이 불균등 유상감자를 통해 산업은행 등 특정 주주에게 투자금을 돌려주는 방법이 있다”며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의지의 문제로 보인다”고 말했다. 불균등 유상감자는 주주들의 지분율 대로 유상감자를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주주만 유상감자에 참여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 경우 감자를 실시하는 기업은 감자에 참여한 주주의 주식 수를 줄이는 대신 자본금을 돌려준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은 현재 진행 중”이라며 “합병이 불발됐을 경우 후속 조치에 대해 논의할 시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