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건전성 원칙 중요하나 경기 침체 시 과감히 돈 풀어야"[만났습니다]①

[인터뷰]권남훈 경제사회연구원장
올바른 경제 방향전환…국민설득 ‘아쉽’
필요시 재정 안쓰면 취약계층 고착화 우려
포괄적 세수 인하 지양…상증세 개편 필요
서비스업 개방해 경쟁력↑…이민 고민할 때 지나
  • 등록 2023-06-14 오전 5:00:00

    수정 2023-06-14 오전 9:59:20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재정건전성은 중장기적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부분이나, 경기 침체에도 돈을 절대 안 쓴다면 문제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기 나라는 빨리 회복을 했으나 타격을 받았던 사회 취약계층이 수십 년간 고착화 된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권남훈 경제사회연구원 원장 인터뷰
권남훈 경제사회연구원 원장(건국대 경제학과 교수)은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경제사회연구원(경사연)은 이상민 초대 이사장이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임명되고, 다수 회원이 대통령직 인수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해 주목받고 있는 보수 싱크탱크다.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 1년을 돌아본 권 원장은 민간주도 성장으로의 전환에 높은 점수를 부여했지만, 대국민 소통 부재는 아쉬운 대목으로 꼽았다. 한·미·일 공조 필요성이 정치적 판단이 아닌 달라진 글로벌 환경에서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고 국민들을 설득했다면 공감을 끌어내기 수월했을 것이란 지적이다. 그는 “보수가 국민 소통과 설득에 약한 점은 언제나 아쉽다”고 말했다.

권 원장은 현재 기획재정부가 강조하는 ‘추경 불가론’에 대해서도 거리를 뒀다. 하반기 경기가 정부가 전망한 ‘하고(下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과감한 재정투입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특히 이미 편성된 예산을 불용하는 형태로 세수 부족에 대응하는 것도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재정이 제때 역할을 하지 못하면 취약계층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저출산 정책에 대해선 “여전히 절박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권 원장은 “지금은 이민을 수용할 것인지를 머뭇거릴 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다른나라보다 우수 이민자를 받을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권 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 1년을 평가한다면.


△전 정부에서 대부분 경제정책이 퇴행적이거나 반대로 가는 중이었는데, 민간 주도 선순환 경제로 방향 전환에는 확실히 성공한 것 같다.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0년간 해야 할 일을 안 했다. 소득주도성장, 재정건전성 무시, 부동산, 탈(脫)원전 정책 등 문제가 많았다. 특히 연금개혁에 대해선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이러다 큰일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윤 정부가 정상적인 방향으로 돌렸다.

-아쉬운 점은.

△대국민 설득과 소통이 아쉽다. 한·미·일 공조가 대표적이다. (세계경제 분절화되기 전인)몇 년 전까지는 미·일 또는 북·중·러 중 선택하는 것이 정치적 성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지금은 아니다. 미국과 일본하고 가까워진 것은 글로벌 질서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국민은 현 정권이 보수 우파이기에 미·일과 가깝다고만 생각하는 듯 하다. 노동시간 개편 관련 잡음도 대국민 설득·소통의 아쉬움이 컸다. 비교적 쉽다고 생각했던 노동시간부터 어려워지면서 다른 노동 개혁은 더 조심스러워졌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권남훈 경제사회연구원 원장
-세수 결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추경과 예산 불용(不用) 중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원칙적으로 불용에 너무 의존하면 안 된다. 불용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예산 편성이 잘못됐든지 아니면 약간 자의적으로 사용해야 할 예산을 안 썼다는 얘기가 된다. 재정 건전성을 목표로 하면서 시작부터 돈을 써대냐는 얘기가 나오겠지만, 그것이 무서워서 돈을 못 쓰는 상황은 안된다.

-재정건전성이 중요하지 않나.

△재정건전성은 중장기적으로 반드시 지켜야할 부분이다. 하지만 경기가 너무 침체됐는데 재정건전성 때문에 돈(재정)을 절대 안 쓰는 것도 문제가 있다. 재정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던 IMF 구제금융 시기 나라는 빨리 회복을 했으나 타격을 받았던 사회 취약계층이 수십 년간 고착화 된 기억이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때도 눈에 띄지 않지만 취약해진 계층이 많다. 취약계층 문제는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해결되지 않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돈을 쓰지 않은 것이 아니다. 4대강 사업 등 건설에 재정을 투입했고, 당시 중국의 급속한 성장도 도움이 됐다. (이번 위기를) 돈을 전혀 안 쓰고 넘어가기에는 사회적으로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

-지금 추경이 필요하다고 보나.

△아직은 판단이 어렵다. 정부가 올해 경기를 상저하고(上低下高)라고 전망했지만, 미국의 경기 침체가 오면 하고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사실 미국이 나쁘면 한국은 ‘상저하저’에 더 가까울 것으로 봤다. 하지만 생각보다 미국 경기가 나빠지지 않고 연착륙 조짐이 있다. 최근 2~3달 사이 아주 비관적인 전망에서 약간은 낙관적인 전망으로 변경했다. 또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가 지금까지는 별로 없었으나 앞으로 계속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재계에서는 법인세를 더 낮춰달라고 요구한다.

△적정수준의 법인세율이 어떤 것이냐는 고민해야겠지만, 앞으로 세수가 부족하고 또 가만히 있어도 부채 비율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세금을 낮춰주는 정책은 신중해야 한다. 레이건 시대 공급 경제학처럼 세금을 낮춰주면 그걸로 경제성장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글로벌 세율 수준을 맞추거나 반도체처럼 전략 산업을 타깃으로 세금을 낮춰주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포괄적으로 세금을 낮춰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것은 너무 단순한 논리다. 다만 실질적 최고세율이 60%에 달하는 상속증여세(상증세)는 손봐야 할 부분이다. 세수에 기여도는 크지 않으면서, 편법상속을 늘리고 경쟁력 있는 기업의 가업 승계를 가로막는 등 폐해가 너무 많다.

-잠재성장률 저하에 대한 위기감이 크다.

△여러 전문가들과 이야기해보면 현재로서는 서비스산업 발전밖에 없는 것 같다. 한국의 서비스업 생산성은 제조업의 40% 수준이다. 한국의 제조업 생산성이 매우 좋은 측면도 있지만, 그것보다 서비스업 생산성이 매우 저조한 영향이 크다. 한국이 서비스업 생산성을 206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수준으로 올릴 수 있다면 잠재성장률이 연평균 0.9%포인트 올라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서비스업도 국제 교역이 많이 늘어났기에 제도적으로 잘 풀어주면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엔터테인먼트 같은 경우 오히려 개방한 뒤에 경쟁력이 높아져 역수출하지 않았나. 한국의 서비스업 생산성이 OECD 평균(제조업 대비 85%) 만큼은 무리라도 60~70%만 돼도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다.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각한데.

△전세계 어느 나라도 이민 없이 인구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민을 받을지 말지가 아니라, 어떻게 좋은 이민자를 받아 이 사람들이 한국에서 정을 붙이고 살 수 있게 할지 고민할 시기다. 이민청과 같은 이민 컨트롤타워도 필요하다. 우선 한국에 유학 오는 우수 외국인이 돌아가지 않고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권남훈 경제사회연구원 원장 인터뷰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도 크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외국과 똑같이 보기는 어렵다. 단순히 총량만 가지고 외국보다 위험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한 가계부채는 코로나19로 인한 부동산 거품 영향으로 악성이 많다. 가계부채를 분석, 위험도를 구분해 대응해야 한다. 무조건 총량 규제로만 접근하면, 청년들 자산 형성 등 꼭 필요한 부채도 일으키지 못할 수 있다.

-경사연이 친정부 싱크탱크라는 시선도 있다.

△경사연에 참여하셨던 분들이 인수위에도 정부에도 많이 가셔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경사연의 목적은 당장의 정치참여가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고, 중장기적인 숙제를 고민하는 것이다. 10~15년 뒤를 위해 우리가 준비할 부분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자 하는 것이 경사연의 궁극적인 목표다.

권남훈 경제사회연구원 원장은…

△1969년(인천) △중동고 △서울대 경제학 학사 △미 스탠퍼드대 경제학 석·박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산업정책팀장 △20대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현) △한국산업조직학회장(현)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현)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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