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에 도산 위기, 판매도 멈췄다” 중소기업계 ‘비명’

[산업계 고환율 쇼크]②원자재 수입·가공하는 中企 취약성 드러나
납품가에 상승분 반영 어려워 피해 감내
해외 진출·투자 위축…경쟁력 악화 우려
환헤지 여력도 안돼…“환율 변동성 관리해야”
  • 등록 2024-12-30 오전 5:30:01

    수정 2024-12-30 오전 5:30:01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경남 창원에서 차량 전장 부품 제조회사를 운영하는 박 모씨는 최근 뉴스보기가 두렵다. 매일같이 오르는 환율에 나날이 적자 폭이 늘어나서다. 박씨는 “이달 환차손(환율 변동에 따른 손해)만 1억원”이라며 “평균적으로 환율이 100원 오를 때 9억원의 환차손을 입었다. 이 상태면 가만히 있다가 도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호소했다.

‘환율 쇼크’에 중소기업이 휘청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달러화로 수입하는 중소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원자재를 수입한 뒤 가공해 대기업이나 해외에 판매하는 중소기업 특성상 고환율 피해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어서다.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기도 쉽지 않다. 상대적으로 기반이 약한 중소기업이 이를 온전히 감내하다가는 줄도산 위기에 내몰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수출 중소기업 513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응답 기업 10곳 중 6곳(57.9%)은 고환율로 인해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환율 급등이 수출 기업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인식과 달리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출 채산성이 나빠져서다.

특히 단기적 손해를 넘어 중장기적으로 국내 중소기업 경쟁력 악화도 우려된다. 생산·납품에 차질이 생겨 거래가 끊기거나 해외 진출 및 현지 법인 설립 등 투자를 축소할 수 있어서다. 이미 해외 구매처가 환율 상승을 이유로 가격 인하를 요구하거나 기존 계약을 지연·중단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경북 칠곡에 있는 중소기업 A사는 “환율이 오르니 거래처에서 단가인하를 요구하고 있다”며 “계약을 지연·보류시키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대구에 위치한 중소기업 B사도 “중국 등 해외 구매처가 거래 문의 자체를 중단하고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며 “고환율이 이어지면 현재 논의 중인 수출 계약을 연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소연했다.

내년 초에는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제는 중소기업들이 고환율 장기화 여파를 극복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중소기업 상당수는 환 헤지(환율 위험 분산) 등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환율 안정화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중소기업이 환율 변동성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송영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없어져도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최소 1300원 후반대의 원·달러 환율은 유지될 것”이라면서 “환율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기업들이 환율 변동성에 대해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수출 기업뿐 아니라 수입, 내수 기업들도 환율 변동성을 관리해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환 헤지 상품을 마련하고 환위험에 대한 교육, 훈련, 인식 전환 등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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