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공기업 개혁 '데자뷔'

  • 등록 2013-12-26 오전 7:00:00

    수정 2013-12-26 오전 7:00:00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개혁은 뼈를 깎는 아픔이다. 전쟁과도 같다. 구체제의 질서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는 집단과의 전면전이다. 그래서 거센 저항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의지와 힘을 필요로 한다. 원대한 비전이 제시돼야 하고 이를 구체화할수 있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박근혜정부의 공기업 개혁방안이 선을 보였다. 출범 10개월만이다. 칼끝은 방만경영과 과다부채를 향한다. 수십년간 쌓인 적폐, 뒤틀린 비정상의 경영상태를 정상으로 되돌려놓겠다는 정책처방이다. 백미는 공기업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공언. 평가를 통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기관장들은 단호히 해임하겠다는 선전포고와도 같다. 오래된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처럼 들린다.

외환위기의 파고가 여전히 휘몰아치던 2000년말, 김대중정부는 급했다. 기업· 금융· 공공· 노동 4대 부문에 걸쳐 전방위 개혁작업을 진행하던 시절, 이중 유독 ‘철밥통’ 공공부문의 진도가 지지부진했다. 급기야 획기적인 정책방안을 제시했다. 경영실적이 부진한 공기업 사장과 임원의 퇴출이다. 그 다음해 3월 실제로 공기업 사장 6명을 전격 해임했다. 파격이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3년. 해당 공기업들은 과연 어떻게 면모를 일신했을까. 불행히도 그 뿐이었다. 대한석탄공사·한국수자원공사·대한주택공사(LH공사)는 지금도 부채가 많은 12개 공공기관 리스트에 올라 있다. 증권예탁원(한국예탁결제원)·한국가스기술공업(한국가스기술공사)은 20개 방만경영 중점관리 대상중 일부다. 모두 일회성으로 끝난 전시성 이벤트였던 셈이다.

공기업 개혁은 역대 정권의 고정 레퍼터리다. 김대중정부의 민영화, 노무현정부의 경영투명성, 이명박정부의 구조조정을 통한 선진화. 구호는 각각이지만 방만· 부실· 무사안일· 도덕적해이로 점철된 공공부문에 메스를 들이대겠다는 의지는 큰 차이 없다. 정권초반 잠시 바람이 거세게 부는 듯 하지만 점차 조직적인 저항에 직면, 동력을 상실하며 용두사미로 전락하는 패턴도 별반 다를 바 없다.

근본적인 이유는 명백하다. 정치권력의 근시안적인 접근때문이다. 정권 초반 제시된 로드맵은 정권이 바뀌면 단절된다. 5년마다 정책기조가 뒤집히니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이 나올리 없다. 이 같은 흐름에 관료들은 교묘히 편승한다. 정권의 구미에 맞게 재고상품을 VIP 보고용, 대외발표용으로 포장해 신상품처럼 내놓는다. 5년마다 바뀌는 권력 핵심층은 재탕 삼탕의 정책을 솎아낼 능력이 없으니 문제 없다. 정책 집행에 대한 뒷처리는 후임자의 몫일 테니 무슨 걱정인가.

현오석 부총리는 개혁을 이끄는 플레이어가 아닌 심판자처럼 보인다. 그의 발언은 당위와 질책으로 가득차 있다. 그의 입에선 주로 ‘해야 한다’와 ‘책임을 묻겠다’는 표현이 나온다. 개혁의 원대한 비전도, 개혁의 푯대를 향해 구성원들이 힘차게 달려나갈 수 있는 내재적인 인센티브도, 가치박탈에 직면한 노조를 설득할 유인책도, 그들의 예견된 저항을 극복할 대응책도 모두 보이지 않는다. 디테일한 전략 없이 모든 짐을 기관장에게 떠넘긴채 한발짝 물러나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포청천의 자세다.

공기업 개혁의 본질은 자명하다. 각각의 미션에 따라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경영의 자율화, 탈정치화를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허리띠 바짝 졸라매기, 빚 털어내기는 이 같은 그림에 따라 진행되는 부수적인 경영개선작업의 일환일 뿐이다.

비정상의 정상화, 구호는 요란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책처방은 여전히 비정상적이다. 정권마다 반복돼온 구태의연한 정책을 창의적인 아이디어처럼 들고 나오는 모습, 창조경제를 표방하는 박근혜정부에서도 똑같이 되풀이 된다. 진부하고 도식적인 공기업 정상화 방안, 이번 정권에서도 공기업 개혁에 대한 기대감은 접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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