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관료 행복시대다. 금융권과 공기업 산하기관의 최고경영자(CEO), 각종 협회의 임원· 감사 등 정부 입김이 미치는 주요 포스트는 관료일색이다. 재무부 출신 모피아의 금융권 접수만 눈에 띄는 게 아니다. 산(産)피아(산업통상자원부), 국(國)피아(국토교통부), 감(監)피아(감사원) 등 규제와 감독을 행사하는 부처의 유관기관 실속 있는 감투는 관료들의 노후보장용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관료전성시대의 도래는 정부 조각과정에서 이미 예고됐다. 내각과 청와대 1급이상 정무직 4명중 3명이 관료출신이다. 이들을 구심점으로 각 부처의 관료 선후배들은 은밀히 밀고 당기며 그들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관치금융, 전관예우, 바람막이, 방만경영…. 관료출신 CEO에게 따라붙는 불편한 꼬리표들이 국민행복시대를 표방한 박근혜정부에서 더 심하게 부각되고 있는 건 아이러니다.
박 대통령의 관료선호는 체험의 정치학이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고시출신 엘리트관료를 앞세워 고도성장을 이끌던 개발연대의 기억이 의식 저 깊은 곳에 잔영으로 남아 있는 듯 하다. 여기에 관료출신정치인이 공기업과 금융기관의 주요 인사를 주무르는 인사위원장을 맡고 있으니 관료들은 그야말로 날개 단 형국이다.
반면 민초들의 눈으로 보면 관료는 갑(甲)중의 갑이다. 권부(權府)에 대해선 ‘예스 맨(yes man)’ , 민(民)에 대한 이미지는 ‘노 맨(no man)’ 에 가깝다. 정권에 대한 충성을 대가로 국민 위에 군림하는 완장찬모습. 바로 핵심 메카니즘은 규제다.
현직(現職)은 규제의 칼날을 세우고 전직(前職)은 그 칼날을 무디게 한다. 규제와 재량이 확대될 수록 관치는 심화되고 전관의 자리는 그에 비례해 늘어난다. 규제의 관할권이 늘어나면 퇴직 후 따뜻한 노후보장을 기대할 수 있으니 ‘파킨슨의 법칙’은 이 곳에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전·현직 관료들의 팀플레이는 규제행정을 고리로 완벽한 관료생태계를 구축하는 꼴이다.
어느 집단이든 진입장벽이 높고 폐쇄적이면 썩은 물이 고인다. 고시라는 진입장벽에 이어 정실과 연고주의의 벽에 둘러싸인 관료조직은 탄력과 생동감을 잃을 수밖에 없다. 관료의 전문성도 필요하지만 무분별한 낙하산 인사와 터무니없는 전관예우, 원칙 없는 규제의 칼날을 휘두르는 관료들의 전횡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리더십이 더욱 절실하다.
주인에게 봉사해야 할 공복(公僕)이 주인자리를 차고 앉아 나라를 온통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고 있다. 국민행복시대에 공무원만 행복한 나라, 시스템이 아닌 관료에 의해 문제가 풀리는 나라, 충성을 받는 듯하지만 실상은 바로 그 관료들에게 휘둘리는 나라. 2013년 대한민국은 ‘관료의,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관료공화국으로 전락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