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면 코스피로…'2부 시장' 인식에 발목잡혀

최근 10년 이전 상장 40%가 작년·올해
"코스닥 기업 이류라는 인식에 이전"
적자기업 기술특례 문제도 끊이지 않아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 등 퇴출 강화해야"
  • 등록 2024-08-08 오전 5:30:00

    수정 2024-08-08 오전 5:30:00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시가총액 덩치를 좀 키웠다 싶으면 코스닥에서 짐을 싸 코스피로 이전 상장하는 기업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나스닥 시장을 참고해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 등 첨단 혁신기업의 자금조달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코스피 이전 상장을 위해 거치는 ‘2부 시장’으로 자리를 잡는 분위기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테슬라 등이 글로벌 빅테크로 성장하고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나스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10년간 16곳 이전상장, 40%가 2년간 ‘이사’

4일 한국거래소와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코스피로 이전 상장한 기업은 포스코DX(022100), 엘앤에프(066970), 파라다이스(034230) 3곳이다. 업계는 이전 상장 결정 후 짧게는 2개월 안팎이면 이전 상장이 가능한 점을 고려, 연내 추가로 이사에 나서는 기업이 나올 가능성도 얘기한다. 실제로 현재 에코프로비엠(247540), 코스메카코리아(241710) 등이 이전 상장을 위한 사전 절차를 밟고 있다.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이전 상장은 최근 들어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SK오션플랜트(100090), 비에이치(090460), NICE평가정보(030190) 3곳이 코스피로 이전했고, 2022년에는 LX세미콘(108320)이 옮겼다. 최근 10년 동안 코스피로 이전 상장한 기업은 총 16곳으로 이 중 약 40%가 최근 2년 사이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이전했다. 특히 이전 상장에 나선 기업 대부분이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기업이다. 올해 이전한 포스코DX, 엘앤에프도 상장 전날 기준 시가총액 4위였다.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이 앞다퉈 이전 상장에 나서는 모습은 코스닥의 위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부실한 정책에 무책임한 기업 더하며 ‘단타’ 시장 추락

금융당국은 1996년 코스닥 설립 이후 꾸준히 시장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선보였지만, 시장에서는 덩치만 커지고 실속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1996년 설립 당시와 비교해 상장 기업 수는 343개에서 1743개로 5배 늘어나고, 시가총액은 7조 6000억원에서 366조 5220억원으로 50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지수는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시장 규모를 키우는데 급급했던 정부의 미흡한 정책에 이를 악용해 자금을 조달하며 시장을 교란한 일부 기업들이 더해지며 코스닥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관 투자자는 사라지고 개인투자자들이 단기 차익을 위해 몰려들며 코스닥 시장이 시장의 신뢰를 잃게됐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8년 정부는 코스닥 시장 활성화 대책을 내놓고 기업들의 상장 문턱을 대거 낮췄다. 적자 기업이라도 미래 수익성을 갖춘 것을 증명하면 기술 특례를 통해 상장이 가능하도록 하면서다. 이에 매년 20곳 이상이 기술 특례로 코스닥에 입성하며 상장 기업이 크게 늘어났지만, 그만큼 부실기업도 증가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시가총액 2조원에 이르는 기업의 분기 매출이 5900만원에 불과한 ‘파두’ 쇼크가 시장을 뒤흔들기도 했다.

일부 상장 기업의 부도덕한 행위도 코스닥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키웠다. 부실한 기업이 잦은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메자닌(자본과 부채의 중간) 발행으로 자본을 조달하거나 본 사업에 집중하기보다 CB와 BW를 이용한 인수·합병(M&A) 등으로 수익을 창출하려 하면서다. 이 같은 경우 리픽싱(가격 재조정)으로 주가가 하락해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발생한다.

구조적 문제 해결 시급…좀비 기업 퇴출·기술특례 보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코스닥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입을 모은다. 가장 시급한 문제로 손꼽히는 것이 부실한 ‘좀비 기업’의 빠른 퇴출이다. 그간 상장적격성 심사에 오른 기업들이 짧게는 2년, 길게는 4년간 거래정지 상태에 있다 보니 투자자들의 손해만 커진 바 있다. 이준행 서울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상장 요건의 완화보다 퇴출 요건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며 “부실기업 퇴출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면서 투자자 피해가 커지는 경우가 많다.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 등 부실기업 퇴출 강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코스닥 기업에 대한 정보를 확대해 시장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정보제공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발표된 전체 기업분석 보고서 1만2653개 중 코스닥 기업의 비중은 24%에 불과하다.

다양한 분야 혁신 기업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자본을 수혈할 수 있도록 기술 특례 상장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학주 한동대학교 ICT창업학과 교수(전 우리자산운용 CIO)는 “기술 특례 기업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 시스템이 없다”며 “그간 바이오 기업만을 평가해왔고,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에 대해 이해가 깊지 않은 사람이 평가하는 경우도 있어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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