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교수는 인터뷰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지난 2008년부터 5년까지 세계경제는 유동성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밀물의 시기’라고 진단했다. 반면 올해 본격적으로 닥칠 테이퍼링은 유동성이 축소되는 이른바 ‘썰물의 시대’를 예고한다고 정리했다. 그는 “유동성을 축소하게 되면 진짜 실력이 드러난다. 테이퍼링이라는 썰물을 견디기 위해선 경상수자흑자, 재정건전성 등 경제의 기초체력을 유지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특히 “한국경제가 구조적으로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선 성장의 모멘텀이 필요하다”며 “공기업· 노사· 기업부문의 혁신, 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등 이른바 기술개발을 위한 R&D 외에 새로운 R&D(Reform & Deregulation:개혁과 규제완화)의 구현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해 12월26일 이데일리 본사에서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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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는 여전히 2014년 세계경제의 화두다. 테이퍼링에 대한 평가는.
“테이퍼링은 비정상의 정상화과정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재정악화에 직면한 중앙은행의 역할 확대과정에서 나온 조치다. 위기 관리의 원칙은 두가지다. 초기대응은 선제적이고 과감히 해야 한다는 점, 출구전략은 신중하고 점진적으로 해야한다는 거다. 미국 연준(Fed) 입장에서는 출구전략을 지연시킬 경우 버블을 잉태할까 우려한 것 같다. 따라서 1월부터 테이퍼링을 하겠다는 시그널을 보낸 거다. 하지만 금리는 2015년까지 올리지 않겠다는 포워드가이던스(Forward Guidance·선제지침)를 제시했다. 연준이 미리 내다보고 적절한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메시지다. 이런 소통 방식은 시장에 신뢰를 준다. 연준의 전략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 테이퍼링에 나서고 있다는 건 그만큼 미국경제의 회복세에 탄력이 붙었다는 얘기인데, 한국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양적완화에 따른 유동성 효과와 셰일가스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부분에서의 혁신으로 미국 제조업은 부활하고 있다. 여기에 주택시장이 살아나면서 미국의 경제회복이 가시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테이퍼링은 미국 등 선진국 경제의 개선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한국경제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물부문에선 수출증대, 금융부문에선 자본유입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선진국 경기회복의 지속가능성, 신흥국 경제의 위축에 따른 파장 등은 변수가 될 수 있다.”
-신흥국 경제권에서의 차별화를 의미하나.
“올해 세계경제는 상대적으로 선진국이 좀 더 선전할 것이다. 신흥국 경제성장률은 평균 수준으로는 선진국보다 높아도 최근 몇년간을 기준으로 보면 전반적으로 둔화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때문에 선진국과 신흥국간의 차이보다는 신흥국 내에서의 차별화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한 해가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테이퍼링의 효과는 결국 글로벌 자본 흐름의 변화를 초래할 것이고, 해외자본이 일차적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은 나라는 아무래도 경제의 펀더멘탈이 취약한 나라들이다.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경상수지 적자국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국가들은 환율 전망이 좋을 수 없고,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선 결국 해당국 외환시세에 따라 자금을 언제 엑소더스(Exodus·탈출)하게 될지 결정하게 될 것이다.”
“국내 외환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일단 감내할만한 수준이었다고 본다. 과거에 비해 환율변동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어 수출의 환율의존도가 감소했고 대기업의 해외생산기지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다만 엔저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올해 미칠 파장에 대해선 예단할 수 없다. 각 기업들은 엔저 파고를 헤쳐나가기 위해 수출경쟁력 제고를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나라 제1의 수출시장 중국경제는 여전히 고전하고 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중국경제로선 과거 장기간에 걸친 과속성장의 후유증을 해소하기 위해 일정부문의 감속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개혁과 구조조정을 위해 연착륙(Soft landing)은 불가피하다. 올해는 대략 7%대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본다. 지방정부부채, 대기오염 등 환경문제, 지역·계층간 소득격차, 삶의 질 개선에 따른 욕구 등 고속성장 과정에서 파생되는 구조적 문제점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경제의 지속가능 성장이 달려 있다. 우리나라로선 이 같은 변화의 흐름에 따라 대중 수출전략을 소비재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관광업 등 국내 서비스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중국의 소비패턴의 변화를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올해 우리경제에 대한 전망은 전반적으로 낙관적이다. 정부가 정책의 우선 순위로 집중해야 할 분야는.
“국내외 기관들의 올해 한국경제 전망은 대략 3%중반∼4%에 이른다. 다만 북한사태 급변 등 지정학적 리스크, 최근 철도노조 파업사태에서 엿볼 수 있듯 공기업개혁과정에서 나타나는 불안정성, 국론분열 등 정치리스크까지 하방위험요인은 적지 않다. 여기에 대외 불안요인이 만만치 않다. 결국 현재 상태에서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선 혁신적 모멘텀이 필요하다.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연구·개발을 뜻하는 R&D외에 또 다른 R&D(Reform&Deregulation), 즉 개혁과 규제완화가 절실하다. 공기업, 노사, 기업부문의 혁신을 통한 경쟁력 제고, 민간투자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가 필요한 시기다. 성장의 계기는 결국 투자를 통해 이뤄진다. 규제는 콜레스테롤과 같다. 꼭 필요한 규제도 있지만 낮을 수록 좋다. 규제완화에 따른 투자활성화가 성장을 이끌어야 일자리가 창출되고 경제의 선순환이 이뤄진다.”
-투자활성화를 강조하지만 결국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는 수익 모델이 사라져가고 있지 않나.
- 정부는 경제민주화에 집중하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제활성화로 정책기조를 바꿨다.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는 일반적으로 상충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와 활성화는 따로 갈 수 없다. 경제의 양극화가 심해지면 공정성과 분배욕구가 늘어나고 전반적인 복지 관련 수요도 늘어나게 된다. 경제 활력이 떨어지면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다. 정부의 역할은 이 중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결정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선 국민적 공감대를 마련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복지를 위해선 재정이 필요하고, 재정은 경제가 좋아져야 튼튼해진다. 어디서부터 물꼬를 터야할지 결정하고, 이에 국민적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창조경제에 대한 평가는.
“창조경제의 길은 올바른 방향이다.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혁신을 통해 창조경제는 이뤄진다. 창조경제라는 프레임은 맞지만 문제는 이걸 어떻게 실행에 옮기느냐다. 이를 위해선 장기적인 안목으로 내다봐야 한다. 창조 DNA가 각 분야에 확산될 때 창조경제의 구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장 원천적으로는 교육 시스템부터 달라져야 한다. 창조경제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선 교육부터 사회 경쟁 체제까지 모든 시스템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전광우 연세대 석좌교수
1949년 서울 출생. 서울사대부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미시간주립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12년간 세계은행(World Bank) 수석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다. 국제금융센터 소장, 우리금융그룹 부회장, 딜로이트코리아 회장 등을 두루 거친 ‘금융통’으로 꼽힌다. 2008년 민간출신 첫 금융위원장으로 선임됐으며 이듬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옮겨 3년 반을 재직했다. 자산 400조원을 관리하는 세계 3대 연기금의 하나인 국민연금공단의 이사장으로서 그는 기금운용의 패러다임을 새로 구축하고 역대 최고의 실적으로 국민연금의 신뢰와 글로벌위상을 제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5월부터 연세대 경제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임중이다.
대담 = 송길호 정경부장, 정리 = 안혜신 기자, 사진 = 김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