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과 청와대 참모의 관계는 미묘하다. 청와대 수석은 직제상 차관급에 불과하지만 실질적인 파워는 장관을 능가하는 경우가 많다. 냉정한 현실정치에선 ‘최고 권력자’, ‘권력의 핵’과의 심정적· 물리적 거리에 따라 권력의 크고 작음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 전직 경제수석은 청와대 비서진에 내재한 힘의 원천을 대통령에 대한 자문역할로 설명한다. 자문역할이 커지면 비서진의 생각이 곧 대통령의 생각이 되고 그에 비례해 파워가 실린다는 얘기다. 대통령으로서는 공식성과 상대적인 긴장감이 따르는 장관과의 만남보다는 거의 매일 접하는 청와대 수석을 심리적으로 편하게 대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문제는 청와대 비서실이 내각의 힘을 압도하면 국정운영에 파열음이 생긴다는 점이다. 힘 빠진 장관은 복지부동하게 되고, 눈치빠른 관료들은 청와대의 입만 바라보는 해바라기형 내각으로 전락하게 된다. 장관에겐 청와대 참모라는 옥상옥이 생기고 청와대 수석회의는 곧 국무회의의 상위 기관처럼 운용된다.
내각의 양대 축인 총리· 부총리 후보자 모두 중량감이 떨어지는 실무형인데다 장관 후보자들도 관료조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기엔 버거운 경량급의 ‘예스맨’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내각 전체의 연령대도 청와대 비서진보다 평균 3세 이상 적어 아무래도 부담이다.
‘아버지 박정희’의 슬림형 청와대 조직을 벤치마킹했다고는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첫 인선은 거꾸로 ‘강한 청와대, 약체 내각’을 예고하고 있다. 이젠 운영의 묘를 살릴 수밖에 없다. 내각과 청와대 비서실간 명확한 역할 분담을 위해 분명히 선을 긋고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장관은 대통령이 자신을 신임하고 힘차게 밀어준다고 느낄때, 그리고 청와대 비서진이 아닌 대통령을 ‘직접’ 상사로 모시고 일 한다는 생각이 들때 신나게 일할 수 있다. 관료조직에 창조와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고 국민과의 약속대로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통해 희망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선 대통령은 내각부터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