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유출' 칼빼든 정부…산업계 "강력 처벌 기대"

경찰, 세계 최초 '기술 유출범' 인터폴 수배
산자부·국회 법 개정 움직임…사각지대 해소
"산업기술 유출, 국가경쟁력 훼손…처벌 강화"
  • 등록 2023-09-27 오전 5:30:00

    수정 2023-09-27 오전 5:30:00

[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국내 주요 산업의 핵심 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는 사건이 늘면서 정부가 강력 처벌을 위해 칼을 빼들었다. 기업에 극심한 피해로 돌아오는 기술 유출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단 지적이 계속되자 단행한 조치다. 정부 개정안와 함께 국회도 함께 관련 개정안 발의를 준비하고, 검·경도 수사력을 집중하면서 다각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질 전망이다.

(사진=게티이미지)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국내 주요 디스플레이 기업의 협력업체 직원이었던 A씨 등 일당에 대해 지난 24일 국제형사기구(인터폴) 보라색 수배서를 발부했다. 통상 기업이 해외 업체에 설비를 매각하기 전 기술유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설비 내 로그파일 등 공정정보를 모두 삭제하는데, 일당은 운영체제 시스템 폴더 내 파일은 삭제하지 않는단 점을 악용했다. 핵심 기술을 해당 파일에 숨겨 유출을 시도한 일당은 범행이 적발되자 해외로 도피했다.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인터폴 보라색 수배서가 발부된 건 이번이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기술 유출 사범에 대한 강력한 검거 의지를 보인 사례다. 보라색 수배서는 인터폴에서 발부하는 8가지 수배서 중 하나로, 회원국 간 새로운 범죄 수법을 공유해 유사한 초국경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다. 대만은 경제·산업 분야 기술 유출을 간첩 행위로 보고 있으며 미국은 피해액에 따라 범죄 등급을 조정해 형량을 확대하는 등 기술 유출에 대해 강력히 처벌하고 있다.

기술유출 범죄는 단순히 기업에 금전적 피해를 주는 것을 넘어 국가 경쟁력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특히 엄청난 자본력으로 한국 기업들을 뒤따라잡고 있는 중국에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중요 기술이 넘어갈 경우 막대한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7월까지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지정되는 국가핵심기술을 포함한 전체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 사건은 모두 104건이다. 이 중 산업기술이 총 104건, 국가핵심기술은 36건으로 많게는 연간 20건 이상 적발되고 있다.

이에 정부와 국회 모두 법 개정을 통해 사각제도를 없애고 양형 기준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5일 국무회의에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의결하고 한국 국적을 가졌다는 이유로 제한 없이 국가핵심기술을 가진 기업을 인수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불법으로 해외에 넘어간 주요 업체의 기술과 지분에 대해 내려진 정부의 원상회복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하루 1000만원까지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국회에선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 처벌 대상을 ‘목적범’에서 ‘고의범’으로 조정 △기술 유출 범죄의 법정형 상향 △침해행위 추가(기술유출 브로커·기술 무단유출 및 목적 외 사용·공개) △판정 신청 통지제 및 보유기관 등록제 도입 △실태조사 강화 등을 내용으로 개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 유출 범죄는 범행 동기와 피해 규모 등을 고려했을 때 일반 빈곤형 절도와 달라 초범에 대한 처벌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첨단기술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산업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는 행위는 국가경쟁력의 훼손을 가져오는 중범죄”라고 강조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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