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몬·위메프(티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를 계기로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의 정산 시스템이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구영배 대표는 “400억원을 바로 갚았고, 정산 지연 사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티몬·위메프가 판매자(셀러)에게 지급할 정산대금이 모기업의 자금줄로 활용됐다는 점에서 허술한 관리 시스템이 노출돼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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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을 보면 오픈마켓을 운영하는 통신판매중개업자는 별다른 의무사항이 주어지지 않는다. 현재 이커머스 플랫폼마다 정산주기와 판매대금 관리 방식은 제각각인 이유다.
오픈마켓에 입점한 판매자나 직접 상품·서비스를 판매하는 이커머스 플랫폼(통신판매업자)만 결제대금예치(에스크로)를 이용하거나 소비자피해보상보험계약 등을 체결하도록 돼 있다. 그마저도 법 자체가 소비자 보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플랫폼을 이용하는 판매자에 대한 대책은 사실상 전무하다. 티메프에 입점했던 한 셀러는 “이커머스 플랫폼마다 임의로 정산주기를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인서야 이슈가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한무경 전 국민의힘 의원은 통신판매중개업자를 대상으로 소비자가 상품을 수령한 날부터 30일 이내 대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의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당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며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하지도 못하고 지난 5월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미 정부는 티메프 사태 직후 판매대금을 제3 금융기관에 맡기도록 하는 에스크로 의무화를 시사했다. 정산주기 단축도 검토 대상이다. 국민동의청원엔 “이커머스 플랫폼 정산주기를 최대 30일 이내로 단축해달라”는 내용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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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시스템 개편을 앞두고 이커머스 플랫폼 업계 반응은 엇갈린다. 소비자와 판매자의 신뢰를 다시 높일 수 있도록 정산 시스템을 개편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목소리와 함께 일부 신생 이커머스 플랫폼엔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와 달리 일괄적으로 정산 시스템을 적용한다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중소 이커머스 플랫폼 관계자는 “이번 티메프 사태는 구영배 대표의 무리한 상장 추진으로 발생한 일인데도 플랫폼업계 전반에 규제를 확대한다면 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판매자마다 매출액 편차가 클 수 있어 정산주기를 앞당기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신생 이커머스 플랫폼 관계자는 “재무 상태가 건전한 대형 플랫폼엔 영향이 없겠지만 초기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드는 이커머스 특성상 작은 플랫폼은 운전자금을 돌릴 여유가 없다 보니 유동성 위기가 올 가능성이 있다”며 “플랫폼마다 차등을 둘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은 더 많은 판매자를 유치하려 정산주기를 앞당겼고 정산대금을 별도 계좌로 관리하며 투명성을 높였다. 11번가는 상품이 택배사에 전달(집하 완료)된 다음날, 네이버(NAVER(035420))도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판매자를 대상으로 상품 배송을 시작한 다음날 각각 정산대금 100%를 지급하는 빠른 정산 서비스를 도입했다. G마켓·옥션은 소비자의 구매 결정 후 ‘익일 정산’을 실시한다. 이들 플랫폼 모두 에스크로에도 가입돼 있다.
대형 플랫폼 가운데 쿠팡 정도만 정산주기가 길었지만 잇단 지적이 나오자 쿠팡은 지난해 구매 확정일 기준 다음날 오전 10시에 판매대금 90%를 체크카드로 정산하는 빠른 정산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