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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데일리 이진철 김형욱 기자] 정부가 고질적 쌀 과잉생산을 막기 위해 내놓은 고육책이 쌀 생산조정제다. 벼 농가에 지원금을 주고 다른 작물 재배를 유도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정작 농가의 참여가 저조하다. 이대로면 올 가을 쌀값은 급락할 수 있다. 농가·정부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쌀 생산조정제란 논 농가가 쌀 대신 조 사료나 콩 같은 두류를 생산하는 농가에 1㏊당 평균 340만원을 지원해주는 제도이다. 이를 위해 총 1708억원의 정부 재원을 투입했다. 결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올 1월 말부터 쌀 생산조정제(논 타작물 재배 지원사업) 신청 농가를 접수한 결과 마감일(20일)을 나흘 앞둔 16일까지 신청 면적은 목표했던 5만헥타르(㏊)의 41.8%인 2만923㏊ 규모에 그쳤다. 한 차례 마감을 연장하고 각종 혜택을 추가했지만, 절반을 채우기가 버겹다.
쌀은 남아도는데 현장선 오히려 가격 상승 기대감
쌀 생산조정제의 발목을 잡은 건 아이러니하게 정부가 끌어올린 쌀값이다. 지난해 초 쌀 산지 가격이 20년 전 가격인 12만원(80㎏)대까지 폭락했다. 정부는 긴급히 2조원이 넘는 재원을 투입해 벼 농가 보호를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고 쌀 산지 가격은 지난달 17만원대를 회복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농가는 올 가을에도 쌀 가격이 현 수준 이상을 유지하리란 기대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올해 쌀 가격이 또 떨어질 수 있다. 수확기 쌀값은 그해 가을 수확량에 의해 결정된다. 생산조정에 실패해 쌀이 남아돈다면 자연스레 가격은 떨어진다. 김인중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관은 “지금 쌀값이 올랐다고 수확철에도 오르리란 건 비합리적 판단”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쌀 생산은 이미 2000년 이후 19년째 과잉 상태다. 국내 쌀 생산량은 1998년 510만톤에서 지난해 397만톤으로 22.2% 줄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37.7% 줄었다. 2000년 이후 늘 공급이 수요를 초과했다. 쌀 의무수입량 40만9000톤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한동안 매년 30만톤의 쌀이 남아돌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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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이고 편리한 걸 왜 포기해” 이유 있는 항변
개별 농가는 벼농사를 밭농사보다 익숙하고 편하게 느낀다. 2016년 기준 벼농사의 기계화율은 97.9%로 정부가 지원하는 밭작물(58.3%)을 크게 웃돈다. 자연스레 노동 투하시간도 쌀은 10에이커(a)당 10시간인 반면 콩은 21시간이다. 더욱이 생소한 작물 재배에 불확실성을 느낄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김광섭 회장은 “정부, 농협이 지원해 준다고는 하지만 현장에선 유통 등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에도 5만㏊ 규모 쌀의 생산을 조정한다는 계획이지만 올해 결과를 보면 내년 역시 만만치 않다.
정부도 예전보다 강력해진 모습이다. 쌀값이 급락했을 때 ‘과보호’하는 조치가 오히려 농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기 시작했다. 쌀 생산조정 추진단장인 김종훈 농식품부 차관보는 “지난해 쌀의 구조적 공급과잉을 막겠다며 재정당국(기획재정부)을 어렵게 설득해 쌀 생산조정제를 추진했다”며 “이를 제대로 시행하지도 못 한 채 또 쌀 가격 안정을 위해 시장 격리를 요구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시장 격리한 쌀은 보관에만 10만t당 연 305억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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