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죄를 사하노라…누구 맘대로?’ 엔터 공룡의 '내로남불'

실적 악화에 조직개편 나선 CJ ENM
"당장 나갈 수 있다" 분위기 악화일로
투표조작 안준영 PD 재입사 일파만파
방송마다 남을 '조작 시즌2' 주홍글씨
용서가 쉽지 않다던데 용서 누가했나
  • 등록 2023-04-08 오전 9:20:00

    수정 2023-04-08 오전 9:20:00

이 기사는 2023년04월08일 08시20분에 마켓인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아서라…”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CJ ENM(035760) 구직을 생각 중이라는 글에 달린 댓글은 짧고도 강렬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 100% 만족하는 사람이 어딨겠느냐만, ‘아서라’는 말은 유달리 묵직하게 다가왔다.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라 분위기가 좋지 않다’거나 ‘역대급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한때는 엔터 업계 공룡으로 군림하던 CJ ENM(035760)이 현재 마주한 차가운 현실이다.

CJ ENM에 태풍이 몰아친 것은 난 데 없는 ‘용서’가 불거진 이후다. ‘프로듀스 101’ 조작투표에 관여하고 거액의 유흥 접대를 받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김용범 CP와 안준영 PD 재입사가 세간에 알려지면서다. 안준영 PD(사진=연합뉴스)
실적 급감에 조직개편 나선 CJ ENM

CJ ENM이 크고 작은 이슈에 휘말리고 있다. 뚝 떨어진 실적으로 위기감이 고조되자 대대적인 조직개편 칼을 빼들면서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CJ ENM의 지난해 연간 매출액은 4조7922억원으로 전년 대비 34.9% 늘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374억원으로 53.7% 감소했다. 당기순손실도 1656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매출이 35% 가까이 늘었음에도 영업익이 반 토막 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영업이익률로 환산하면 약 2.8%를 기록했다. 유관업종을 영위하는 회사인 하이브(352820)(13.3%)나 카카오(035720)(8.1%)의 영업이익률과 견줘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실적 악화를 두고 벌써부터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본질적인 콘텐츠 경쟁력 약화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경쟁 격화 등의 이유가 꼽히지만, 지난해 1월 할리우드 제작 스튜디오 엔데버 콘텐츠(현 피프스 센스) 지분 80%를 9300억원에 인수한 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적에 경고등이 켜지자 CJ ENM은 조직 개편에 시동을 걸었다. 이를 두고 임직원들은 ‘일방적인 권고사직’이라 주장하는 반면 회사 측은 ‘업무 효율화 과정’이라며 각자 다르게 설명한다. 그러나 기존 인력에 변화(감원)를 준다는 골자는 변하지 않는다.

‘당장 내일부터 회사를 못 다닐 수 있다’는 불안감은 회사에 먹구름을 몰고 왔다. 수평적이라던 사내 분위기가 험악해진 것도 이때부터다.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면 혹여 불이익을 당할까 싶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하소연에 나서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아무리 재미있고 유익하더라도 끝날 무렵 느껴질 찝찝한 감정, 이를테면 ‘저것도 조작인가’라는 감정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프로듀스 101 시즌2’에 출연했던 101명의 연습생들 (사진=뉴시스)
난데없는 재입사 논란…용서는 누가 했는가

살얼음이 꼈던 회사 분위기에 태풍이 몰아친 것은 난 데 없는 ‘재입사’ 논란이 불거진 이후다. ‘프로듀스 101’ 투표 조작에 관여하고 거액의 유흥 접대를 받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김용범 CP와 안준영 PD 재입사가 세간에 알려지면서다.

안 PD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리즈 생방송 경연에서 시청자 유료 문자 투표 결과를 조작해 특정 후보자에게 혜택을 준 혐의로 지난 2021년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에게 수천만원 상당의 유흥업소 접대를 받은 혐의도 법원에서 인정됐다. 안 PD와 같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한 김용범 CP 역시 2021년 7월 출소 후 지난해 회사로 복귀했다는 사실도 덩달아 알려졌다.

공기업이었으면 발칵 뒤집히고도 남을 일이건만, 사기업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하니 뭐라고 하는 건 한계가 있다. 그러나 최근 CJ ENM 조직개편 과정에서 두 사람의 복귀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조직개편 당사자로 지목돼 다른 부서, 급기야 회사를 떠날 수 있는 임직원들로서는 이들의 소식에 분노가 치밀 수밖에 없다.

설령 조직개편의 칼날을 벗어난 이들이라고 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엄연히 실형을 선고받고 옥살이까지 한 전 회사 직원의 복직을 군말 없이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해의 폭이 넓은 일각에서는 ‘용서를 구할 기회를 줘야한다’거나 ‘제작 역량이 탁월해 어쩔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 얘기를 들으니 마치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킨 스포츠 스타가 ‘운동으로 보답하겠다’는 말이 떠오른다. 당사자들이 본업에 충실하겠다는 게 마치 사회 정의나 국익에 도움이라도 되는 것 마냥 착각을 일으키는 언행을 듣는 것은 늘 고통스럽다.

더 큰 우려는 논란의 당사자들이 제작·지휘하는 프로그램을 같이 만들어갈 제작진(후배들)이다. 상상해 보니 문득 처연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시청자의 눈에서 그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을 얼마나 신뢰하고 재미를 느낄지에 물음표가 찍힌다. 아무리 재미있고 유익하더라도 끝날 무렵 느껴질 찝찝한 감정, 이를테면 ‘저것도 조작인가’라는 감정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CJ ENM 측은 안준영 PD의 재입사에 대해 공식 사과했지만, 안PD 거취에 대해 ‘논의 중’이라는 다소 중의적인 입장을 내놨다. 사과는 하지만 사측의 결정은 강행할 수도 있다는 여지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조직개편이라고 쓰고 구조조정으로 읽는 서늘한 분위기 속 CJ ENM가 베푼 ‘너의 죄를 사하노라’를 보며 모두가 누리고 지켜야 할 기준 내지는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 본다. 누구 말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용서가 참 쉽지 않다’던데 어느 기업에서는 어쩌면 용서가 참 쉽다는 생각이 드는 4월의 어느 날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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