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표 초라했지만, 주주 매운맛 보여준 행동주의

주주제안 안건 상정한 상장사 올해 44개사로 57% 증가
행동주의 패배 행렬…이사·감사 선임 승인율 15%로 낮아져
결과 떠나 발전 뚜렷해…기업 인식 변화·소수주주 결집 등
갈등은 선진국도 거친 당연한 과정…現시대 빠른 변화 기대
  • 등록 2023-04-04 오전 6:01:00

    수정 2023-04-04 오전 8:18:08

[이데일리 이은정 기자] “변화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주주총회 결과와 상관 없이 기업들은 많은 것을 느꼈을 겁니다.”(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

“주요 주주제안이 무산됐지만, 소수주주 결집을 이뤘습니다. 개인투자자 1400만명 시대 젊은 세대들의 참여가 늘면서 적극적인 주주활동이 투자 문화로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이원선 트러스톤자산운용 전무)

올해 주주총회 시즌 주요 주주제안을 내놓은 행동주의 펀드들은 대체로 ‘패배’ 행렬을 이어갔다. 사측의 높은 지분율,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의 표, ‘3%룰’을 적용받는 안건 상정 무산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평이다.

다만 주총 이전부터 행동주의 펀드와의 합의로 변화를 이룬 에스엠(041510), SBS(034120) 등 기업들도 다수 있었다. 아울러 소수주주들의 결집, 주총 이후 기업과 행동주의 펀드 간 보이지 않는 소통을 이뤄낸 점을 감안하면 유의미한 진전을 이뤘다고 업계는 입을 모았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3월31일 기준 이달 주총에서 주주제안을 안건으로 상정한 12월 결산법인 상장사는 44개사로 전년(28개사) 대비 57% 증가했다. 올해 안건 수가 가장 많았던 △이사, 감사, 감사위원 선임(27건)은 작년 대비 코스피에선 승인율이 낮아졌고(28.57%→15.38%), 코스닥에선 전년 12.50%에서 올해 28.57%로 높아졌다. 현금·주식 배당(25건)과 주식 취득(10건)의 승인율은 0%였다.

이제 첫발을 뗀 국내 행동주의 캠페인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저평가 기업 비중이 유독 큰 탓이다. 블룸버그와 삼성증권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기준 코스피 기업 중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미만인 기업은 67%로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 신흥국(보베스파 37%)을 비롯해 미국(S&P500 5%)·중국(상하이종합 11%) 등 대비 절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각 행동주의 펀드에 따르면 주주 관여 대상이 된 태광산업(003240)의 PBR은 0.17배, JB금융지주(175330)는 0.4배 등이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상장사와 행동주의 펀드, 소수주주 간 갈등은 미국에서도 1926년 첫 주주행동 이후 100년을 거쳐 온 당연한 과정”이라며 “과거와 비교해 자본시장의 발전과 디지털 시대 빠른 소통이 가능한 현 환경에서 더 빠른 변화가 이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한편 올해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 대상 기업이 된 기업들은 크게 2가지 유형으로 분석됐다. 우선, 수익거래 유형은 회사와 지배주주의 개인회사, 가족회사가 재화·용역에 관한 수익거래를 통해 회사 재산을 침해하는 경우다. 에스엠(041510)의 라이크기획, 태광산업의 유상증자 사례 등이다. 두 번째는 자본거래 유형으로 회사와 주주 혹은 제3자 간에 주식의 인수, 합병, 분할, 교환, 영업 양도 등 자본거래를 통해 주주의 지분율을 침해하는 경우다. 김 회장은 “행동주의 펀드가 대상으로 하는 기업은 대체로 승산이 있는 수익거래 유형이 많다”며 “자본거래 유형에 대해서도 변화를 이룰 수 있는 제도적 발판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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