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도산법 전문가 전대규 변호사는 “파산이나 회생 상담을 해오는 이들이 대부분이 금리 감당이 안 된다고 토로한다”며 “기본적으로 회생은 사업성이 있어야 가능한데 금리가 오르다보니 한계에 부딪히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파주에서 전력 IT부품을 생산하는 기하던 김 모(68) 대표도 마찬가지다. 매출 감소도 파산신청을 결심하게 된 배경이었지만 코로나19 당시 이용하던 저금리 기조가 끝나면서 이자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김 대표는 “2%대 중반의 금리로 이용하던 운전자금의 대출금리가 최근 6% 후반까지 치솟았다”고 전했다.
“파산·회생상담 대부분 고금리 부담 호소”
회생은 구조조정을 거쳤을 때 기업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아야 한다. 현재는 영업을 해도 이자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기업이 증가해 회생조차 밟지 못하고 파산으로 직행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가중평균금리상 8월 기업대출 금리는 5.21%다. 최근 3개월간 다소 금리가 떨어졌지만 코로나19 시기 유동성이 폭발하던 2020년(2.80%)에 비하면 2.41%포인트나 높은 수준이다.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같은 기간 2.64%에서 5.17%로 2.53%포인트나 더 높아진 상태다.
기업 회생 대신 파산 신청이 늘어나는 것은 긴축에 따른 유동성 위축으로 인수합병에 투자할 여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서울 대학가를 중심으로 공유주택 사업을 운영하다 지난 3월 파산을 신청한 이 모(35)대표가 대표적이다. 2013년부터 사업을 시작한 이 대표는 50곳으로 지점을 확장했다. 당시 1등 업체가 지점 100개를 운영하던 때라 사업은 잘 되는 편이었다.
코로나19 발생하고 주요 대학들이 온라인 강의로 전환하면서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이 대표는 “코로나가 터지면서 학생들이 학교를 안 다니니 운영하던 지점폐쇄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며 “좋은 사업을 만들어 보다 훌륭히 운영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매각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 파산신청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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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올해 파산신청이 급증한 데에는 금융당국의 ‘코로나 대출’ 연장 등으로 유지하던 잠재적 부실기업 가운데 소기업을 중심으로 한계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지난달부터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코로나19 대출 만기연장과 상환유예 조처가 종료돼 원리금 상환이 본격화됐다.
문제는 한계기업이 늘고 있지만 기업 재건을 원활하게 도울 구조조정 수단이 중소기업에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국내 구조조정 제도는 법원 회생절차와 채권단(은행) 중심 워크아웃제도가 있지만 중소기업계에는 큰 도움이 안된다는 지적이다. 회생절차는 모든 채권자 참여절차가 보장되지만 오랜 기간 소요되는 채권신고와 이의채권 조사확정 절차 등으로 신속성과 유연성이 떨어진다. 또 외부에 공개되면 기 낙인효과로 관련 업체와의 거래관계 단절 등의 후폭풍이 발생한다.
또 워크아웃은 벤처기업이나 소기업이 적용받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워크아웃 절차를 밟으려면 은행 대출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데 소기업에는 은행대출이 쉽지 않은 수십억원대 매출 기업도 많다”고 전했다. 더욱이 워크아웃 도입을 골자로 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적용기한이 지난 15일부로 끝나면서 중소기업에게는 선택의 폭이 더욱 줄었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워크아웃은 채권자 주도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며 “기업 성장보다 원리금 보전에 관심이 있는 채권자는 기업과 다른 방향으로 판단할 수 있어 채무자와 채권자 입장을 공정하게 고려할 수 있는 제3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