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최근 한 달간 기업들의 주주배정 및 일반공모 유상증자 규모가 2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상반기 진행된 유상증자 규모의 3분의 2 수준이다. 고금리가 이어지고 부동산 PF 부실 우려에 자금 조달 시장이 경색되자 기업들이 이자 부담이 없는 유상증자를 통해 돈을 마련하는 경우도 늘어나면서다.
|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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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많은 기업이 유상증자로 확보한 자금을 미래 사업에 대한 투자가 아닌 기업 인수에 활용하거나 차입금을 상환하는데 사용하며 개인투자자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유상증자가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아닌 부정적 이미지로 굳어지며 주가 하락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이데일리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공시를 분석한 결과에 최근 한 달간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 상장사의 주주배정 및 일반공모 방식 유상증자 규모는 2조529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이 같은 유상증자 규모는 3조399억원에 그쳤다.
시장에서는 앞으로 자금조달을 위한 주주배정 및 일반공모 방식 유상증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HMM(011200)을 인수하는
팬오션(028670)이 대규모 유상증자를 예고하고 있다. 또한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확산하며 자본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유상증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2500억원대 M&A에 성공한 의료 인공지능(AI) 기업인 루닛을 두고 투자자들 사이에서 유상증자로 인수 자금을 마련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유상증자는 이자비용이 발생하지 않으면서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장점이 있지만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가 하락하는 만큼 제3자 배정이 아니라면 대체로 주가 약세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팬오션은 유상증자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것만으로도 하루 주가가 10% 넘게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유상증자에 대한 시장의 부정적 인식이 커지고 있는 만큼 기업의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존 주주의 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이 큰 만큼 완벽한 자금 활용에 대한 명확한 계획이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증시가 회복세를 보이면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려는 기업들이 늘어날 수 있다”며 “유상증자로 주가 변동성이 커질 수 있는 만큼 투자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