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재’에는 민족의 역사와 뿌리가 담겨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있듯이 수천, 수백년을 이어져 내려온 문화재는 우리 후손들이 잘 가꾸고 보존해 나가야 할 소중한 유산이죠. 문화재는 어렵고 고루한 것이 아닙니다. 문화재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 쉽고 친근하게 배울 수 있는 문화재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주>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석가모니의 일생을 담은 팔상도가 국보가 됩니다. 최근 문화재청은 조선 후기 팔상도를 대표하는 ‘순천 송광사 영산회상도 및 팔상도’의 국보 지정을 예고했는데요. 2003년 보물로 지정된 작품으로 20여년 만에 국보로 승격되는 셈입니다. 화기를 통해 1725년이란 제작 연대와 의겸 등 제작 화승을 알 수 있는데요. 한 전각에 영산회상도와 팔상도를 일괄로 조성해 봉안한 가장 이른 시기 작품으로 확인됐어요. 현재는 송광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 중입니다.
‘팔상도’는 석가모니 생애에서 역사적 사건을 8개 주제로 표현한 불화를 말해요. 팔상 개념은 불교문화권에서 공유됐어도 이를 구성하는 각 주제, 도상, 표현 방식은 나라마다 다른데요. 그렇다면 석가모니의 역사적 사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보물 제1330호 예천 용문사 팔상도. ①‘비람강생상’과 ‘도솔래의상’ ②‘유성출가상’과 ‘사문유관상’ ③‘수하항마상’과 ‘설산수도상’ ④‘쌍림열반상’과 ‘녹원전법상’(사진=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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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조선 전기부터 팔상도가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했어요. 1446년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1450년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팔상성도를 제작했다는 문종실록의 기록이 있어요. 팔상도는 주로 월인석보(1459)를 도상적인 근거로 삼고 있어요. 이에 따르면 석가모니의 생애는 △도솔래의 △비람강생 △사문유관 △유성출가 △설산수도 △수하항마 △녹원전법 △쌍림열반으로 살펴볼 수 있죠.
먼저 ‘도솔래의상’은 도솔천에 있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인 호명보살이 마야부인의 옆구리로 들어가는 장면을 그렸어요. ‘비람강생상’에서는 부처님의 탄생을 볼 수 있는데요. 마야부인은 친정으로 향하는 길목인 룸비니의 무우수 나무에 이르러 출산을 해요. 나뭇가지를 잡고 선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나는 모습이 보여요.
‘사문유관상’은 태자로 태어난 부처가 네 성문 밖에서 늙음, 병듬, 죽음과 수행자를 목격하는 장면이에요. ‘유성출가상’은 ‘성을 넘어 출가하시다’라는 의미로 29세가 되던 음력 2월 8일, 태자가 출자를 결심하고 말을 타고 야반에 도주했던 일을 표현했어요.
‘설산수도상’은 고통스러운 수행을 계속하는 태자의 모습을 그린 장면이에요. 태자는 출가 후 여러 스승을 찾아나섰지만 결국 도를 얻지 못했어요. 결국 혼자 이루어야 할 일이라고 판단하고, 마가다국 서쪽에 있는 설산으로 들어갔죠. 태자는 모든 수행자들이 경험하지 못한 고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하루에 쌀 한 톨과 참깨 한 숟가락으로 연명했어요. 몸의 먼지를 털면 몸의 털이 말라 떨어지고, 배를 만지면 등뼈가 만져질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수하항마상’은 태자가 보리수 아래에서 마왕 파순이 이끄는 마귀의 공격을 막고 항복을 받는 장면이에요. ‘녹원전법상’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고난 뒤 녹야원(사르나트)에처 처음으로 설법을 하는 모습을 그렸어요. ‘쌍림열반상’은 열반에 든 부처님의 모습과 슬퍼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담겨 있답니다.
| 영산회상도(사진=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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