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조 규모의 토큰증권발행(STO) 시장이 열렸다며 한때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했다. 올 초 금융위원회가 STO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조각투자 사업자 제재면제를 확정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드디어 STO 시장 막이 올랐다고 다들 흥분했다. 하지만 딱 8월 정도까지였던 듯 하다. 지금 STO 시장을 둘러싼 분위기는 싸늘하다. STO 법제화를 위한 전자증권법 개정안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언제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야 정쟁에 뒷전으로 밀린 이 법안은 내년 총선 전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높다. 총선 후 22대 국회 상임위가 구성되고 법안 발의를 다시 한다고 해도 빨라야 내년 말이다. 진짜 시장이 열리는 건 후년에나 기대해볼 만한 상황이다.
법제화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 금융당국의 분위기도 바뀌었다는 게 금융투자업계 전언이다. 이달 초 ‘이데일리 글로벌 STO 써밋’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바로 “금융위원회에선 오나요?”였다. 금융위가 STO 사업에 부정적으로 돌아선 것 같다는 생각에 던지는 질문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월 가이드라인을 내놨을 때만 해도 금융위는 각종 세미나와 컨퍼런스에 연사로 나서 제도와 규제에 대해 적극 설명했고 조각투자 심사를 위한 설명회도 열면서 가이드를 제시했다. 그러나 8월 이후 STO 써밋을 준비하면서 느낀 금융위의 스탠스는 “STO 하지 말아라”에 가까웠다. 이 때문에 금융기관들도 내년 사업계획과 방향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탄했고, STO 발행을 준비하던 스타트업들은 고사 위기에 몰렸다고 하소연했다.
STO 관련 규제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깐깐할지라도, 벽이 높을지라도, 규제를 만들고 제도화를 해야 그 기준에 맞춰서라도 STO 사업을 시작할 게 아닌가.
역사적으로 자본이 실제 크게 증가했던 것은 새로운 기술과 상품이 도입됐을 때다. 주식시장이 전산화되면서, 그리고 상장지수펀드(ETF)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투자문화가 생겼다. 이제 ETF에 이어 STO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제대로 판을 깔아주고 투자자들이 검증하도록 하는 게 낫다. 올바르고 건전하게 투자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투자자 교육은 필수다. STO 써밋에서 출범한 ‘국제토큰증권협회(International Security Token Association, ISTA)’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주제도 비즈니스가 아닌 바로 토큰증권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