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사모펀드(PEF)운용사 관계자들을 설레게 하는 말 중 이보다 더한 것은 없을 것이다. 국내 기업들이 재무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PE에 비주력 계열사나 사업부를 매각하는 ‘카브아웃(carve-out) 딜’이 늘어나면서 투자은행(IB) 업계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조 단위 빅 딜 뿐 아니라 알짜배기 딜 마저 자취를 감췄던 최근 몇 년과 달리 PE를 비롯한 투자사들이 관련 딜 검토에 한창인 모습이다. 하반기에도 기업발 매물이 쏟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카브아웃 딜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여전한 대세로 자리매김할지 관심이 고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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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기업은 계열사 및 사업부 매각을 통해 규제 리스크를 덜어내는 동시 현금 유동성을 창출하려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고금리가 장기화하는 만큼, 비주력 부문을 정리함으로써 ‘선택과 집중’에 나서고 있다.
현재 사모펀드운용사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대기업은 각종 합병과 매각으로 대수술에 나선 SK그룹이다. 계열사만 219곳을 보유한 SK그룹은 계열사간 중복 사업과 비효율적인 경영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전면적인 사업 손질에 나섰다.
선택과 집중에 나선 롯데그룹도 PE들이 관심을 가지는 그룹사 중 하나다. 회사는 세븐일레븐의 현금인출기(ATM) 사업부와 롯데케미칼 자회사 LC타이탄 매각을 위해 관련 절차를 밟고 있으며, 체질 개선을 위해 추가적인 계열사 매각도 염두에 두고 있다.
대표적으로 롯데그룹은 지난 2월 세븐일레븐(코리아세븐) ATM 사업부 분리 매각을 위해 삼정KPMG를 매각 주관사로 선정하며 매각 절차를 본격화했다. 세븐일레븐은 타 편의점과 달리 ATM 사업을 직접 영위해왔다. 다만 편의점업이라는 본질에 집중할 경우 ATM사업부의 운영 효율이 떨어질 수 있어 매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진단사업부문을 매각한 LG그룹도 PE들의 물망에 오르는 대기업 중 하나다. LG그룹은 LG화학 산하의 에스테틱 사업부 분할 매각을 위해 지난해 복수의 원매자들과 매각 논의에 나섰지만, 밸류에이션 차이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에 업계에선 LG측이 연내 주관사를 선정해 매각 작업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선택과 집중’에 보다 힘을 줘야 하는 중견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으로 스마트 광학 솔루션 전문기업 아이엘사이언스는 ‘반짝조명’ 브랜드로 알려진 자회사 ‘아이엘라이팅’ 매각에 나섰다. 이번 매각을 통해 아이엘사이언스는 손실 계열사를 정리하고, 수익성을 제고해 체질개선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회사는 이를 토대로 사업 확장에도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이엘사이언스 측은 “체질 개선 후 자동차 부품과 전고체배터리, 자율주행 V2X(차량사물통신) 등 모빌리티 사업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했다.
한글과컴퓨터그룹도 미래 성장동력인 AI 사업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기 위해 비주력 계열사 매각에 한창이다. 회사는 최근 개인안전장비 업체인 ‘한컴라이프케어’ 매각을 위해 매각주관사를 물색 중이다. 한컴은 지난 2017년 컨소시엄을 꾸려 한컴라이프케어 경영권을 인수한 바 있다. 한글과컴퓨터그룹은 해당 매각을 통해 AI 사업 중심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겠단 방침이다.
이러한 기업발 계열사 및 사업부 매각은 당분간 지속될 예정이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그간 신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관련 사업체를) 사들이기 바빴던 대기업들이 체질개선이나 선택과 집중을 위해 이를 매각하고 있다”며 “고금리 여파가 커 포트폴리오 개편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는 드라이파우더(미소진자금)가 넉넉한 사모펀드운용사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변화”라며 “카브아웃 딜이 침체됐던 국내 M&A 시장 분위기를 견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